요즘 KBS는 그야말로 뒤숭숭하다. 과거에도 정권이 바뀌고 사장이 교체될 때마다 들썩이긴 했지만 올해만큼 평지풍파가 일지는 않았다.

지금 KBS는 후유증을 제대로 앓고 있다. ‘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치던 기자와 PD가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되거나 지방으로 밀려나는 등 ‘보복인사’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시사프로그램 '생방송 시사투나잇'과 언론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포커스' 폐지도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사원행동’ 양승동 대표와 김현석 대변인 등 5명이 KBS감사실 출석을 요구받으면서 보복징계가 우려되고 있다.

지난 24일 만난 고민정(29) 아나운서 역시 사원행동의 일원이다. 고 아나운서는 오태훈 아나운서와 함께 지난달 11일 열린 사원행동 행사에서 사회를 맡기도 했다. 사실 TV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나운서로, KBS 내부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입을 여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에게 ‘아나운서’란 무엇일까.

“사실 제가 처음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던 것은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희망도 주고 용기도 북돋을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남자친구(지금의 남편)가 권했죠. '아나운서가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전달할 수 있겠다' 싶어 선택하게 된 거죠. 그런데 아나운서가 되고 나니까 생각했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더라고요.”

가장 큰 걸림돌은 ‘고민정 아나운서’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대중이 더 많다는 것. 많은 사람들과 같은 희망을 얘기하고 꿈을 꾸고 싶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했다. 게다가 방송이 하고 싶은 말을 거르지 않은 채 모두 내뱉을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다.

“그런데 깨달은 것이 있어요. 아나운서라고 해서 ‘말’이 전부가 아닙니다. 제가 모르는 어떤 사람이 한 신부님으로부터 저의 결혼생활 얘기를 듣고 희망을 갖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 아나운서가 생각하는 아나운서란 단순명쾌했다. 아나운서는 언론인이다.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라는 신조어를 많이 쓰던데 전 그 말을 싫어해요. 일선에서 취재를 하지 않으니까 언론인으로서 아나운서의 역할은 피디와 기자들과 많이 다르죠. 하지만 아나운서의 입을 통해 보도가 전달되기 때문에 스스로 언론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고 아나운서는 KBS가 언론노조를 탈퇴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끝까지 사랑해달라고 당부했다.

“사랑받으려면 사랑받을 짓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사랑해달라고 부탁드리는 이유는 내부에서 고민도, 토론도, 싸움도 치열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모든 일이 흑과 백으로 정확히 나뉘진 않잖아요. 더디 가더라도 KBS를 저버리지 말고 지켜주세요.”
 
 
<매일노동뉴스> 2008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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