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기(53)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은 노동부에서 노사정책과 고용정책을 두루 섭렵하고, 차관까지 역임한 정통 노동관료다. 노동부 직원들이 능력 있는 상사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언론에게는 살갑지 않았다. 수많은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왔다. 그랬던 그가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참모시절에는 말을 아꼈는데 이사장이니 기관홍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응했다”고 했다.

최근 노민기 이사장의 관심사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오는 10일부터 시작되는 ‘글로벌 포럼’. 이사장으로 부임한 지 1주일도 안 돼 치러낸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 후속조치 격인 국제 행사다.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 처음으로 이끌어낸 ‘서울선언’을 구체화하겠다는 포부다.

또 하나는 10년 넘게 0.7%에서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는 산업재해율이다. 산업재해율 문제는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진단은 체계적이었다. 산업안전보건 제도와 사업구조, 예산 투자 패턴으로 나눠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소규모 사업장 문제, 합리적 규제정책이 아닌 무분별한 규제철폐를 거론했다.

“산업재해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전체의 재해예방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사업장에 관한 안전보건 서비스와 기술지원은 공단이나 민간 재해예방 전문기관에만 맡겨선 안 된다"며 "건설 발주기관과 원청기업뿐 아니라 지역과 업종, 시민단체가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취임하자마자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를 치렀습니다. 그동안 평가 자리가 없었는데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해주신다면.

“(부임) 일주일도 안 돼 행사를 치렀습니다. 행사는 매우 잘됐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국내에서도 그런 평가를 받았고, 공동주최했던 국제노동기구(ILO)나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이사 관계자들도 ‘훌륭하다(excellent)’, ‘완벽하다(perfect)’라는 단어를 써가며 극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행사가 매끄럽게 진행된 부분도 있지만 전체회의, 대륙별 회의, 기술세션, 심포지움 등이 80여회나 진행돼 내용상으로도 알찼습니다. 최근 각국의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여러가지 연구성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교류의 장을 넘어서 대한민국 안전보건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하면 많이 미흡하지만 121개국이 참여했거든요. 다소 사정이 나은 우리나라가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에게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행사개최 이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자고 제이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전임 이사장의 준비와 직원들의 열의가 모아져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 세계 산업안전보건 사상 처음으로 발표된 ‘서울선언’이 의미가 있는데요, 이를 어떻게 이행하시려 하십니까.

“세계안전보건 대회는 이번이 18회째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세계 각국의 경영계·정부·노동조합·전문가 대표 46인이 모여서 안전보건 대표자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작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서울선언’이라는 것을 채택했는데 ‘서울선언’은 닉네임이 아니고, 도큐먼트(서류)의 정식 명칭입니다. 노사정이 작업장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기본권이라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것이지요.

노동자들의 기본권 향상 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익에도 직결된다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환경분야에서 지난 92년 리우에서 환경선언이 있었듯이 2008년에 ‘서울선언’이 세계 산업안전보건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서울선언 이행의 일환으로 '글로벌 포럼'을 여는 것입니다. 공단 내에 기념관도 만들고, 선언에 참가했던 이들과 함께 국제위원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안전보건에 관한 백과사전이나 위키사전 같은 인터넷 백과사전에 서울선언이라는 단어를 넣으려 합니다. 서울선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리려는 것이지요.”

- 산업재해율이 감소되지 않고, 여전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에서 상위국가 수준에 들어가는 것은 멀었습니다. 각 나라 재해율 산정 기준이 달라서 평균적으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만 사고성 사망 만인률이 선진국에 비해 2배에서 15배나 높습니다. 우리와 재해율 통계가 비슷한 일본과 비교해도 우리나라가 2배 내지 3배 높은 상태입니다. 지난 10년간 재해율이 0.7% 수준에서 정체상태에 있고, 절대 재해자 수도 9만명 수준에서 머물러 있고 사망자도 2천400명 수준에서 머물러 있습니다. 약간씩 진폭이 있지만 트랜드로 보면 정체상태에 있다는 데 이의를 달지 않고 있습니다. 그간의 산업안전보건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하지않나 생각합니다. 지금의 제도와 사업구조, 예산 투자패턴이 과거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바뀌지 않으면 재해율을 빠른 시간 안에 선진국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제도, 사업구조, 예산 투자패턴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제도는 곧 규제할 수 있는데요, 한때 규제완화라는 게 전반적인 흐름이었습니다. 규제완화 물결에 따라서 안전보건에 관한 규제들이 많이 풀렸죠. 안전보건 규제가 풀린 것이 재해율 정체의 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근 몇가지 산업안전 규제가 내년 1월에 복원됩니다. 법정 직무교육이 다시 의무화된다든지, 유해위험 방지계획서가 건설업만 하게 돼 있는데 일부 제조업종까지 확대된다든지, 검사제도가 바뀐다든지 등등입니다. 또다른 규제들도 필요하다면 복원돼야겠지만 전체적으로 규제를 합리화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규제를 강화한다, 완화한다'라는 이분법적인 접근으로 하면 곤란합니다. 규제 전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산업안전보건 정책은 300인 이상 사업장, 120억원 이상의 건설공사의 경우 사업장이 자율적으로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를 두고 하도록 돼 있고, 그 밑에 중규모의 경우에는 시장에서 안전보건 서비스를 구입하라고 돼 있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이나 3억원 미만의 건설공사는 정부(공단)가 무료로 해주던지 외부에 국고지원을 통해 안전보건을 대행하라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우리나라 안전보건 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대규모 사업장은 이것이 잘 작동되는 것 같아요. 지난 10년 간 재해율을 규모별로 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재해자수라든지 재해율이 많이 줄었습니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는 재해자수가 늘었습니다. 대규모 사업장은 줄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느는 바람에 전체적으로는 정체 상태가 된 겁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성과는 어떻습니까.

“공단과 국고지원을 통한 민간 대행사업으로 해서 연간 4만여개 사업장에 기술지원 사업을 하는데, 안전보건 서비스를 제공한 거죠, 기술지원을 받은 사업장은 현저하게 재해율이 떨어집니다. 연도별로 다르긴 합니다만 2007년 실천 사업장의 경우에는 27%가량이 떨어졌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문제는 50인 미만 사업장이 대한민국 전체 사업장의 대부분입니다. 100만개가 넘거든요. 굳이 정부가 5% 정도를 기술지원 사업장으로 책정하는데 나머지 95%의 경우 간접적으로 안전보건 활동을 지원하고 있지만 효과가 적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효과가 큰 기술지원 사업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대폭 늘리려면 사람이 직접 현장을 가는 것인데요, 손발이 엄청 많이 필요한 것이죠. 지금 상황에서 공단 인력은 더 이상 늘릴 수 없지만 대신 기술지원 사업장은 늘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을 돌파하려면 우리나라 전체의 재해역량을 키우는 쪽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안전보건 서비스와 기술지원은 공단이나 민간 재해예방 전문기관에만 맡겨선 안됩니다. 건설공사 발주기관이나 원청기업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발주기관이 수주받은 건설공사 현장에 대해서 안전보건 활동을 하거나 원청기업이 하도록 해야 합니다. 제조업이 밀집된 곳은 각 공업단지 관리사무소에서 안전보건 활동을 지원할 수도 있지요. 지역단위, 업종단위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더 많은 사업장에 대해 기술지원이든 재해예방 홍보를 해야 합니다. 공단은 그 중심에서 그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주고 기술지도 요원들을 교육시키면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재해예방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공단 기술지원 인력 600명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민간 재해예방기관도 영세하기 때문이지요.

예산구조도 바꿨으면 합니다. 지금 예산구조는 시설과 장비에 대해 지원하는 시스템입니다. 대표적인 게 클린사업이라고 해서 연간 1천억원 가량 지원하고 있습니다. 시설 산업안전에 관한 시설 장비 융자사업도 1천억원 가까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산재예방 및 보상기금의 8%를 예방에 지원하도록 돼있는데요, 약 3천500억원 정도입니다. 클린사업 그 자체로는 엄청난 효과가 있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몇 천만원씩 무상으로 지원해 시설장비 고쳐주고 있습니다. 1대1로 개인지도 해서 기술서비스 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 사업장은 엄청난 성과가 있습니다. 1년에 1만개의 사업장이 혜택을 받습니다. 하지만 전체 재해율을 낮추는 데는 부족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 서서 일하는 노동자 문제를 노동계에서 제기한 적 있습니다. 서비스 산업의 경우도 공백이 커 보이는데요.

“서비스 산업의 경우도 재해가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재해예방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워낙 대상 사업장이 많고 제조업 같으면 공단지역에 밀집이라도 돼 있는데 서비스업은 펼쳐 있어서 포착하기 쉽지 않은 난점이 있습니다. 서비스 산업 중에서 3대 다발재해가 일어나는 5개 업종이 잡혀 있습니다. 건물시설물 관리사업, 보건사회복지 사업, 보육서비스업, 경마장 골프장 운영업 등인데 위험성 평가모델을 활용해서 내년에 기술지원을 늘리려 합니다. 올해 4만여개였던 기술지원 사업장을 내년에는 9만개로 늘릴 생각인데 거기에 상당수 포함시킬 생각입니다.”

- 민간 산업안전보건 대행기관의 허점이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질이 문제입니다. 외국의 경우는 공공부문에서 안전보건 투자를 강하게 하지 않더라도 민간 산업안전보건 서비스 시장이 잘 발달 돼 있어서 그 시장에서 서비스를 많이 구매합니다. 예컨대 우리가 변호사한테 법률 서비스를 받고 기업들이 회계 서비스를 받고 경영컨설팅을 받듯이 안전보건컨설팅을 받습니다. 기업입장에서는 안전보건 컨설팅 비용으로 비싼 비용을 치룰 의사가 없어요. 안전사고가 나더라도 산재보험에서 처리하면 되고, 근로감독관이 감독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약한 벌금, 그것도 회사 돈 아닙니까. 그래서 안전보건서비스에 관한 민간 시장이 활발하게 육성되지 못하는 맹점이 있습니다. 방법은 외국처럼 사고가 가져오는 마이너스 효과가 크다는 것을 사업주에게 인식시키는 겁니다. 그러려면 사업주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육 시스템을 정치하게 개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업주 교육이 중요합니다. 안전이 회사의 경영이념 중 으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다 됩니다. 세계 일류 기업들의 공통점은 안전을 경영의 핵심가치로 삼고 있어요. 그러려면 사업주들의 인식을 바꿔야 하는데 사업주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교육장에 안 나오거든요. 사업주를 포착해서 교육하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일례로 사고가 많이 나는 사업주에 대해서는 교육명령을 벌금 대신에 내리면 어떨까 아이디어로 가지고 있습니다.”

- 비정규직이나 사내하청을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먼 얘기처럼 들립니다. 현실에서는 사고가 계속 늘고 있는데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노동행정 서비스는 사업주를 매개로 해서 노동자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규제도 그렇고 서비스도 그렇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일단 사업주가 직업훈련과 안전교육을 시키도록 돼 있습니다. 정규직에 대해서는 자기하고 오래 근무할 사람이기 때문에 직업능력도 개발시키고 안전보건에 관한 투자도 할 의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한번 쓰고 버리는 사고가 있기 때문에 교육투자를 안 하는 거죠. 결국 비정규직은 업종 단위, 지역단위, 국가차원 등 초기업단위에서 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외국인 같은 경우는 외국인 취업교육기관을 통해 하고 있고, 그런 방법으로 공단이 비정규직을 포착해서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방식들로 개발을 해나가고 있는데 유효한 수단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시민단체 라든지, 비정규직에 우호적인 단체들을 활용해서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하는데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할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일각에서는 건설일용근로자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도록 하고 받은 사람은 카드제 같은 거를 도입해서 이력관리를 해주자는 얘기도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리스트가 돼서 취업을 제한하는 요소가 있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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