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로 치면 '전반전'이 끝났다. 스코어는 0:0. 보건의료 노사의 올해 산별교섭이 '파행', '파국'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후반전을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7일 보건의료노조의 쟁의조정 신청을 시작으로 후반전 개시를 알리는 휘슬이 울릴 예정이다.

"답답하다. 사용자들은 '합리성'이라는 말을 무기로 그동안 쌓아온 성과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려 한다. 산별교섭 5년의 역사를 부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왜곡된 상식을 합리성이라는 말로 합리화하는 사용자들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홍명옥(44)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올해의 교섭 양상에 대해 '의외'라고 말했다. 보수 정권의 등장과 함께 사용자의 보수화를 예상하긴 했지만, 5년을 쌓아온 산별교섭의 기틀이 흔들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돌발변수를 들고 나왔다. 노무사가 교섭 석상에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 표면적으로는 노무사의 등장이지만, 실제로는 사용자들의 의지에 문제가 있다. 노조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노무사를 교섭석상에 부른 것은 사용자들이다. 산별교섭을 무력화하거나, 교섭에 임할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홍 위원장은 "사용자들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 먹고 교섭에 성실히 임한다면 예년 교섭처럼 노사 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사용자들의 현재의 태도를 고수한다면, 노조는 예년과는 전혀 다른 총파업으로 응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사용자들은 '합리적', '일반적' 교섭을 주장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와 교섭태도가 '일방적'이라고 비판한다.

"현재 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병원 사용자 대부분은 지난 4년간 진행된 보건의료 산별교섭을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이다. 심지어 공동대표 두 분도 올해 교섭에 처음 참석했다. 그러다 보니 교섭의 '연속성'이 사라진 상태다. 사용자들은 '일반적 교섭'을 강조한다. 말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보건 산별교섭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지난해 합의사항에 따라 노사는 올해 초 산별소위원회를 구성해 원만하게 회의를 진행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사용자들이 '합의사항 이행'을 주장하는 노조의 목소리가 과도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병원의 노사관계를 파탄으로 내몰았던 노무사의 등장과 함께 벌어진 일이다. 첫 단추가 잘못 채워졌다."

- 문제가 되고 있는 노무사는 수년전 금속노조 산별교섭에도 참가한 바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용자협의회는 평의회 의결을 거쳐 해당 노무사를 선임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노무사를 선임할 당시는 사용자협의회가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된 시기였기 때문에, 해당 노무사가 병원 사용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선임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렇게 선임된 노무사가 올해 교섭판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교섭 테이블에 앉아서 말이다.

사용자들은 지금이라도 다른 노무사를 선임하거나, 해당 노무사를 교섭 테이블에 앉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협의회의 위상에 금이 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최근엔 '사용자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용자들은 노-사 안을 비교·검토해 절충안을 찾자고 주장한다.

"노조가 사용자들의 '개악안'을 언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사관계가 정상적일 때에는 사용자들이 별도의 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평범한 사용자들은 별도의 안을 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사용자협의회 부대표로 있는 노무사 같은 노조파괴 전문가들이나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요구해서 만드는 것이 단체협약이다. 별도의 사용자안을 냈다는 것은, 20년 동안 노사가 합의해서 축적해온 단협을 부정하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노사관계의 ABC도 모르거나, 그게 아니라면 다분히 의도적이다."

- 지난해 체결된 산별협약은 오는 10월17일까지 유효하다. 이를 두고 사용자들은 노조가 협약 유효기간 중 파업을 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노조가 약속을 깼다는 주장이다.
 
"노조가 파업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 없다. 지난해 산별협약의 잠정합의는 7월7일 진행됐다. 사용자들이 협약 조인을 거부해 석 달이 지나서야 조인식을 진행했다. 협약 유효기간 안에 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용자들의 주장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 노조는 올해 두자릿 수(10.2%) 임금인상안을 내놨다. 병원 사용자들은 '병원 경영이 어려운 것은 노사 모두 잘 알 고 있는 사실'이라며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10.2%는 노조 간부들이 정한 수치가 아니다. 조합원들을 설문조사 한 결과 도출된 것이다. 그간의 교섭을 되돌아보면, 병원 사용자들은 산별교섭을 통해 임금 하향평준화라는 이득을 취해온 게 사실이다. 조합원들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산별노조를 지키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양보를 해온 것뿐이다. 10.2%라는 수치에는 조합원들의 솔직한 요구가 담겼다고 본다.

때문에 병원 경영이 어려우니 임금을 올려줄 수 없다는 사용자들의 주장은 모순이다. 노동자들이 몇 년에 걸쳐 임금을 양보했는데도 병원 경영은 정상화되지 못했다. 임금부담이 경영난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병원 경영난은 병원 간 출혈경쟁에서 비롯됐다. 이것이야 말로 사용자와 노동자가 머리를 맞댈 부분이다. 노사가 정책적 대안을 도출해 정부에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 올해 노조가 제시한 요구안 중 가장 핵심은 인력충원이다.
 
"서울의 대학병원이 간호사 채용 공고를 내면 지방 중소병원 간호사들이 벌떼같이 몰려든다. 그러나 이중 대부분이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해 제 발로 병원을 떠난다. 이같은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병원 서비스의 질은 의료진을 비롯한 인력의 수준에 좌우된다. 제 발로 병원을 떠나는 직원이 늘면서, 병원은 저숙련 인력으로 채워지고 있다. 의료사고는 이같은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병원들은 재정 부담 때문에 인력을 늘리기 어렵다고 하소연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인건비를 100이라 할 때, 이중 50은 의사에게 지출된다. 모순적인 임금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병원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면 정부에 정책적 해결이라도 요구해야 한다. '인력충원=비용상승=불가'라는 인식은 사용자, 노동자, 환자 그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

- 환자식에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병원이 48곳에 달한다. 이 문제가 산별교섭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사용자들은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성이 과학적으로 중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업도 아닌 병원산업 사용자들이 말이다. 백번 양보해, '과학적으로 안정성이 입증될 때까지 미 쇠고기를 쓰지 않겠다'는 선언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미 쇠고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병원마다 현판식을 진행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정말로 좋아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전국민이 반발하는 쇠고기 문제마저 이토록 경직되게 판단하는 병원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을 정상화하자는 노조의 주장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 이명박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에 대한 비판을 빼놓을 수 없다. 노조가 우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검토했던 정부다.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공언하기도 했다. 지금은 국민들의 저항에 발목이 잡혔지만, 언제든 재추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주목할 부분은 제주도의 국내 영리병원 허용 움직임이다. 제주도를 필두로 7개 경제특구로 영리병원 설립이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다. 7개 특구가 거점이 돼, 영리병원이 전국화 될 날도 머지 않았다. 영리병원들은 민간보험 가입 환자만 골라 받을 수 있다. 당연지정제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설사 국립대병원을 비롯한 공공병원들이 건강보험 체계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 치더라도, 이 같은 의지와 무관하게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도미노식으로 무너질 것이다."

- 7일 쟁의조정신청, 23일 파업 돌입을 공식화 했다. 노조의 조정 신청과 함께, 지방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한 각 병원(지부)의 필수유지업무 결정신청이 폭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다음주부터 지노위로 필수유지업무 결정신청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사용자·노동부·노동위 모두 노동자의 파업권을 보호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필수유지업무제도의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지 오래다.

현재 각 지부별로 필수유지업무 교섭이 진행 중이다. 노조가 사용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산별중앙교섭이 아닌 대각선 교섭으로 진행키로 한 것이다. 그런데 각 지부마다 사용자들이 거의 동일한 요구안을 내놓고 있다. '사용자협의회안'이다. 사용자들은 법에 정해진 병원 필수유지업무의 유지비율을 100% 가까이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산별교섭 후반전을 앞두고 있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올해 보건의료노조가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업그레이드'된 산별 노사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 사용자들에게 지면을 빌어 당부하고 싶다. 잘못 채워진 첫단추를 다시 채우자. 원위치를 찾을 것인지, 파국으로 갈 것인지는 사용자들의 판단에 달렸다. 지난 4년의 교섭은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용자들이 현재의 상태를 고수한다면 노조도 어쩔 수 없다. 노조의 유일한 무기는 파업 아닌가. 올해의 파업은 예년과는 다를 것이다. 파업을 가로막던 직권중재도 사라졌다. 끝까지, 질기게 싸울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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