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는 지난해 ‘산업∙업종 탐구’로 노동언론의 관심을 산업의제까지 확장한 데 이어 무자년 연중 기획으로 ‘현장을 가다’를 준비했습니다. 산업과 업종을 막론하고
생산∙제작∙운반∙유통∙서비스∙판매 등 노동의 현장을 찾아 ‘현장의 땀방울’을 지면에 담아내려고 합니다. 매주 월요일자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 이곳에는 약 15만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떠올리면 전시관만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유물이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보존과학자'들이다.
수천년전 유물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다시 우리 앞에 놓이려면, 손상된 유물을 복원하는 보존과학자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토기의 미세한 균열을 메우고, 깨진 조각을 붙일 때 역사는 다시 복원된다. 작은 토기 한 조각, 미세한 균열 하나를 붙이기 위해 호흡을 고르고 정신을 가다듬는 이들. 지난 20일, 전시회장 뒤에 가려진 역사복원의 현장을 <매일노동뉴스>가 다녀왔다.
역사를 되살리는 손길
수많은 이들이 우리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다. 박물관 한쪽에는 전시관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공간이 있다. 유물이 전시되기 전 거쳐야 하는 보존과학실이다. 박물관 보존과학실은 소장품의 보존처리를 위해 지난 75년 2명의 보조과학자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16명의 보존과학자가 일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외에도 대전국립문화재연구소에 14명, 삼성 리움미술관에 13명의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다. 보존과학실은 국립박물관 사무동에 위치해 있다.
보존실로 가기 위해 사무동의 긴 복도를 통과하자 커다란 철문이 앞을 가로막는다. 철문을 통과하면 보존과학실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된다. 유물 도난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보존과학실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된다. 보존과학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입증이 필요하고, 보존과학실 전체는 폐쇄회로(CCTV)로 촬영된다.
철문을 통과하면 긴 복도가 계속 이어진다. 복도 사이사이에 금속보존, 목제보존, 목칠공예품보존, 서화보존, 토기·자기보존, 석제·벽화보존, 문화재분석, 자료실 등이 있다. 유물의 재료에 따라 보존기법도 달라지기 때문에 여러 담당과로 나뉜다.
유물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일부 소실되거나 형태가 변형된다. 이러한 유물을 원형과 가장 비슷한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 '보존과학'이다. 유물은 재질별로 구분해 '수장고'에 보관하는데,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수장고에서 복원이 필요하거나 전시에 사용될 유물을 꺼내 보존과학부로 넘기는 것이다.
유물의 보존은 단순히 그 형태를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재의 산지를 추적해 당시 고대인들의 지혜와 과학기술을 파악한다. 이러한 자료들은 고대사와 미술사 연구 등 여러 학문에 도움을 준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듯
유물의 보존은 대개 재질별로 그 과정과 절차가 다르다. 금속의 경우 6단계의 절차를 거친다. 처리에 앞서 우선 유물의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유물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진촬영 및 X-선과 현미경을 이용한 조사가 실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총 3대의 X-선 기계들이 있는데 유물의 크기와 두께 등에 따라 각기 다른 X-선촬영기가 사용된다. 이곳의 기계들은 보통 병원에서 사용하는 기계보다 투과력이 높다.
X-선 촬영 후 뷰박스를 통해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한 유물의 미세한 균열을 확인한다. 마치 의사가 환자 치료에 앞서 진찰을 하듯 유물의 손상 상태를 확인해 적절한 보존법을 결정하는 것이다.
X-선 촬영실은 방사선 노출을 막기 위해 납으로 만들어져 있고, 센서가 작동돼 문이 닫히지 않으면 촬영되지 않도록 설계됐다. 불상의 경우 내부에 경이나 향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X-선 촬영을 통해 알 수 있다.
없어진 부분에 대해서는 원형을 알 수 있는 부분에 한해 복원을 진행한다. 복원이 끝나면 유물의 크기와 보존처리방법, 사용된 약품 그리고 보존을 담당한 보존과학사의 이름을 처리카드에 기록한다. 처리카드는 영구보관하고, 이후 유물의 복원이 이뤄질 때 참고자료로 사용된다. 유물 복원이 필요할 경우 처리카드에 기재된 담당 보존학예사가 보존을 진행하게 된다.
부서질까 "조심 또 조심"
유물 복원이 이뤄지는 보존과학실은 연구소 실험실과 비슷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에서 금속을 담당하고 있는 박학수(39) 연구원. 마침 그는 청동그릇 복원에 한창이었다. 넓은 책상에 붓과 연필·칼·망치 등 여러 도구가 눈에 띈다. 청동그릇의 바닥과 측면을 촬영한 사진과 청동그릇에 대한 정보를 담은 처리카드도 있다.
박 연구원은 "청동그릇을 복원하려면 상태를 조사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처리카드에 청동그릇에 대한 정보를 기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리카드에는 처리보존의 시작과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담긴다. 보존과학자가 유물의 도면을 직접 그리고, 보존처리 전후 유물의 상태와 어떤 약품이 사용됐는지 등을 꼼꼼히 기록한다. 외과용 수술도구들도 있는데, 유물 표면의 이물질을 제거할 때 사용된다. 조그맣고 약한 조각을 다룰 때는 집게를 이용한다.
또 다른 쪽에서는 고려시대 동전을 복원하고 있다. 동전 주조시 납이 첨가되는데 납의 동위원소가 산지마다 비율이 달라, 납성분을 분석해 산지를 밝혀내는 작업이다. 육안으로 관찰하기 힘든 것은 입체현미경을 통해 살펴본다.
그림이나 족자·액자 등은 서화보존실에서 담당한다. 족자나 두루마리로 제작된 그림은 말려들어간 축에 가로로 꺾임현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결실된 부분은 같은 재질의 재료를 이용해 보강해준다. 서화실의 장연희(30) 연구원은 "족자와 병풍은 각각 처리하는 과정이 달라 손상에 따라 보존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목제실에서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빗에 대한 보존처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돋보기를 쓰고 목제 빗의 먼지를 제거한다. 빗은 붓으로 건드려도 당장 바스라질 정도로 약하다. 유물 스스로 유지되지 못할 정도로 약하면 약품을 사용해 강화처리에 들어간다. 목제 불상의 경우 겉면에 입힌 금박이 떨어지거나 충해를 입어 내부가 손상되기도 한다. 이럴 때는 합성수지를 사용, 강화처리를 통해 빈공간을 채운다. 유물의 상태와 재질에 따라 복원 과정은 몇년에 걸쳐 이뤄지기도 한다. 보존과학자들의 보존처리와 조사연구 성과는 매년 전문잡지('박물관 보존과학')를 통해 발표된다.
턱없이 부족한 보존과학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는 보존과학자는 16명이다. 이외에도 문화재 보존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 4명, 일반계약직 5명이 있다. 문화재는 보관장소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발굴량이 많지만, 국립과 민간단체 보존과학자수는 겨우 100명 남짓하다. 김경수(37) 연구원은 "여타 산업 중 예술에 대한 지원이 가장 적고 그 중에서도 역사분야는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보존과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비정규직인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사설기관이 더 심하다. 역사를 복원하는 전문적이고 중요한 분야조차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보존과학자들은 작업의 성격상 고도의 정신집중으로 요하기 때문에 정신피로도가 높은 편이다. 다루는 물건이 유물이다보니 작은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국보급 유물도 많고 손상 정도가 심한 유물의 경우 약간의 충격에도 부서질 수 있다. 작업 손길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들은 작업 중 발생할 수 있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일정부분 변상을 지원해주는 보험에 가입하기도 한다. 청소도 자신의 작업공간에 있는 휴지통을 비우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각자가 하고 있다. 일의 중요도가 높기에 입사하자마자 문화재 복원작업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도면그리기와 자료조사부터 시작한다. 정식으로 보존과학자로 채용되기 위해서는 경력이 필요하다.
또한 보존처리에 다양한 약품을 사용하기에 독극약물에 노출되기도 한다. 20년 넘게 보존과학자로 일하다 지난 98년 간암으로 숨진 연구원의 경우 공무상재해로 인정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일한 연구원들은 "한참 약품처리를 하다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존과학자들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남다르다.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손으로 역사를 복원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보존과학자들은 입버릇처럼 "작은 도자기 하나도 집에 두지 말라"고 말한다. 유물에 대한 사리사욕을 경계하는 것이다.
김경수 연구원은 "이 일을 하다보면 국보급뿐만 아니라 모든 유물이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며 "직업의 특성상 어쩌다 휴일에 다른 박물관에 가더라도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보존처리기법에 눈길이 간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제가 보존처리한 물건이 전시되거나 몇 년이 지나도 손상되지 않았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박학수 연구원도 "오랜 시간 공들여 복원한 유물로 인해 새로운 연구주제가 생길 때가 가장 큰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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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2008년 6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