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길 오
노사관계를 잘 알든 모르든 노사관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누구나 얘기한다. 입장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노사 상생의 노사관계, 협력적 노사관계가 사회적 요구로 등장한지 오래다. 십여 년 전부터 노사협력 캠페인이 전개되고, 기업 및 지역단위에서 무파업선언, 노사평화선언 등이 쏟아졌지만 모두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발전재단은 노사가 공동사업을 통해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대립과 갈등에서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로 변화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출범했다. 노사관계 의제를 분배 중심에서 고용·인적자원개발·복지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액션플랜을 제시하고 있다. 노사가 주도하는 실질적인 변화를 도모하려는 자율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노사관계 변화의 공방이 지루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노사가 스스로 공동의 조직을 설립해 노사관계 변화를 추진하는 것은 분명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노사발전재단 폄하 기도에 대한 의구심

그러나 노사발전재단이 출범했지만, 노사의 노력을 지원하기보다는 자신의 이해와 결부돼 재단을 폄하하려는 기도들이 감지되고 있다. 며칠 전 한 경제지의 왜곡보도도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시각은 이러하다.

먼저, 노동부·노동교육원 등 기존 기관과 재단의 업무가 중복돼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노사관계는 자율적이어야 한다. 당초 노사는 재단 설립을 추진하면서 정부 주도의 노사관계를 노사에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정부가 이 점에 동의한다면 기존에 노동부나 노동교육원에서 하고 있던 노사관계 사업을 재단으로 이관해야 한다. 재단 설립을 위한 노사정 합의에서도 사업이관이 명시돼 있다. 업무중복은 바로 정부가 사업을 이관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일 뿐이다. 또한 노사관계를 효율성의 측면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노사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그 효과를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노사당사자가 합의해 설립한 재단이 수행하는 사업은 노사의 자발적 참여를 가져와 노사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재단의 1년 예산은 고작 22억원이다. 흔히 노사관계 문제가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발목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언론은 노사관계 문제로 인한 손실액이 수조원에 달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이처럼 노사관계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탄생한 재단 지원예산 22억원이 예산낭비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가재정 규모가 약 500조원인데도 말이다.

이와 함께 사업실적이 없다고 비난한다. 얼마 전 한 토론회에서 경영계의 한 관계자는 재단이 만들어진 이후 노동계를 겨냥한 성명서 발표가 조심스럽다는 고충(?)을 얘기한 적이 있다. 이처럼 대립과 갈등만 빚던 노사관계에서 노사 간 상시적인 대화와 파트너십을 형성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바로 성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일부 대기업 노사관계를 제외하고, 중앙단위 노사관계가 더욱 대립적인 우리나라의 경우 노사 상급단체의 이러한 노력은 향후 노사관계 변화에 큰 디딤돌이 될 것이다.

재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노사파트너십 실천기구인 ‘지역노사발전협의회’를 설립해 노사파트너십을 실천하고 있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협의회를 통해 노사공동훈련, 노사파트너십 재정지원사업, 노사공동교육, 노사공동 복지사업, 고용안정 및 인적자원개발사업, 노사문화우수기업 및 대상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노사관계는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노사관계 패러다임 변화 원한다면…

전문성에 대한 지적도 있다. 재단의 기본 주축은 한국노총·한국경총·대한상의다. 노사단체와의 긴밀한 협의 속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재단에게 전문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노사단체가 노사관계에 대해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과 다를 바 없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에서 노사 당사자의 대화와 타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나아가 노사선언 같은 말이 아니라 실천적인 노사관계가 중요하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 노사민정협의체도 그 기본은 노사일 수밖에 없다. 지역 노사민정 대타협이 성공하려면 실질적인 노사파트너십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노사발전재단은 ‘노사 주도적 파트너십의 핵심 추진기구’라는 비전을 갖고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노사관계 패러다임의 변화를 원한다면 정부가 개입하거나 주도하려고 하지 말고, 노사가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한다. 노사정을 둘러싼 주변에서도 혹여 자신들의 이해와 결부시켜 비판적 입장을 갖거나 조급해하면 노사관계 변화는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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