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1% 부자정부’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연이어 개헌선을 훌쩍 넘긴 203석의 보수국회가 탄생했다. 2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진보를 지향하고, 서민을 대변할 의원은 채 한 줌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특권층을 위한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할 힘은 한 줌의 국회의원에게 맡겨졌다. <매일노동뉴스>는 민주노동당과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에 대한 연쇄인터뷰를 통해 18대 국회에서 이들이 펼칠 활약상을 미리 예상해 본다. <편집자>
 
 
 

민주노동당 홍희덕(59) 당선자는 이번 18대 총선에서 눈길을 모으는 이들 중 한 명이다.

우리사회 ‘밑바닥’ 인생이라는 환경미화원에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까지 오르게 된 이력 탓인지 그를 더욱 궁금하게 한다. 스스로 “난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그를 무엇이 국회로까지 오도록 했을까.

지난 17일 민주연합노조에서 홍희덕 당선자를 만났다. 민주연합노조는 오늘의 그를 있게 한 ‘터전’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을 180도 바꾼 민간위탁

“솔직히 어떨떨합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도 많은데 무거운 책임감이 듭니다. 그래도 당선 첫날보다는 많이 차분해졌어요.”

4·9 총선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일까. 첫날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지금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입을 뗐다.

홍 당선자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았다. 우유배달, 목재소 잡부, 상하차 인부 등 젊은 시절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이쪽 세계를 잘 몰랐던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당시 보수언론이나 정부가 선전하는 대로 ‘저렇게 하면 외국기업이 투자 안하는데…’,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 전쟁이 날 수도 있는데…’라고 생각했지요.”

그가 환경미화원이란 삶을 선택한 것은 지난 93년. 아이들은 커 가는데 그래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고 학자금도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해서 선택한 삶이었다.

하지만 99년 의정부시가 청소업무를 민간위탁으로 전환해버렸다.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지금이나 당시나 하청의 삶은 마찬가지였어요.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것은. 눈이 와서 일을 끝내면 우리 업무가 아닌데도 쉬지도 못하고, 제설작업에 동원되는 식이었지요.” 

동료의 죽음과 비정규직 멸시에 분노

그런데 더 기막힌 일이 발생했다. 같이 길거리 청소하러 나간 동료가 차에 치여 죽음을 당한 것이다. 시신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하지만 민간위탁이라며 시청도 위탁업체도 책임지는 이가 없었다.

비정규직이 되자 임금과 노동조건 저하, 그리고 더 한 멸시가 따라온 것이다. 너무 억울해서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갖은 탄압을 받으며 투쟁을 했다.

“왜 민주노동당을 선택했느냐구요? 투쟁할 때 국회의원, 시의원을 찾아다녔어요. 면전에서는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알맹이는 없었어요.”

2000년, 민주노동당이 출범했다.
“민주노동당을 보면서 노동자가 지지하고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을 통해 국회의원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우리 조합원들이 누구보다도 열심히 나선 이유입니다.”

당시 그는 노조탄압에 대한 파업과 민주노동당 당원가입, 지방선거 공직출마를 주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번 총선에서도 그를 비롯해 환경미화원 출신 후보가 3명이나 나서는 등 열심이었다. 

‘노동’에 초점 둔 의정활동 희망한다

홍 당선자는 850만 비정규직의 대변인이 되겠다고 말한다. 그 자신이 비정규 노동자이고 그 때문에 전략공천돼 당선에 이르렀다.

때문에 그가 희망하는 상임위원회도, 의정활동 계획도 ‘노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과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만, 환경노동위원회를 희망합니다.”

이에 따라 18대 국회에서는 당장 비정규직법 전면재개정, 특수고용직 보호입법을 우선적인 과제로 꼽았다. 등록금 상한제 등 민생의제에 주력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늘 그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5석’이란 소수의석이다.

“17대 국회를 돌아보면 많은 노동법률이 발의됐지만 거대 여야의 담합에 의해 수용되지 못했습니다. 국회 안팎에서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숫자가 적었지요.”

특히 비정규직법 개정문제는 18대 국회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정부와 재계는 기간제 사용기간 3년, 파견대상업종 전면확대 등의 일치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노동계는 이는 개악이라며 반대하는 한편, 차별시정제도 개선과 무분별한 외주화 규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 대결이 불가피해 보인다.

“포기하지 말아야지요. 5석이라도 국회의원 역할을 하라고 국민들이 마련해준 것입니다. 우리가 국회 내에서 해야 할 일을 준비하고 5명 이외에 같이 할 수 있는 이들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18대 국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미 5월 임시국회에서 한미FTA 비준안, 기업규제완화 처리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공공부문 구조조정도 시작됐다. 노동자 피해가 불을 보듯 뻔하다. 

친기업 정책, 비정규직 가랑이 찢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뿐입니까. 교육자율화는 ‘자식이 나처럼 돼선 안 된다’는 비정규 노동자의 가랑이를 찢어지게 할 겁니다. 또 부당해고에 대해 금전보상제를 도입한다지요. 비정규직 사용기간도 3년으로 늘리고요. 모든 게 상식이하입니다.” 하지만 그도 안다. 200석의 보수정당이 차지하고 있는 국회의 현실을. 사실 5석은 그나마 법률발의 요건도 안 된다.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이 발의했던 많은 법안들도 18대 국회에서는 사장된다. 다시 법안을 발의해야 하지만, 누가 그들의 편을 들어줄까.

“보수정당 누구도 우리 편은 안 듭니다. 결국 비정규직 당사자가 현장 속으로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반노동자 정책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노동자가 숨죽이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홍 당선자가 강조하는 것은 ‘원외국회’다.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제가 미약하나마 국회의원으로서 국회 안에서 충실히 역할을 할 것입니다. 밖에서는 노동자·농민·서민이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대중조직이 투쟁하고 그 투쟁에 민주노동당도 함께해야 합니다.”

이랜드·코스콤·KTX 등 산적한 노동현안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답답합니다. 사업주가 법을 어겨도 처벌이 솜방망이다보니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습니다. 비정규직 보호는 저의 문제입니다. 국회의원으로서 그들의 투쟁에 힘을 북돋아주고 대중조직과 함께 힘과 지혜를 모을 것입니다.” 


 
 제대로 혁신하면 노심(勞心) 돌아온다

홍 당선자는 늘 당의 입장을 최우선시한다는 느낌을 준다. “당의 요구에 복무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그런 그가 밖에서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특히 지난 총선에서는 진보정치에 대한 싸늘한 노심(勞心)을 확인하기도 했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이 갈라지기 전까지 활동을 잘했다고 보진 않았습니다. 노동자는 당비 내고 지원했는데 민주노동당이 실질적으로 노동자에게 해준 게 뭐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분당 뒤 저도 현장을 다녀보니 더 관심에서 멀어졌더군요.”

솔직하고 냉정한 평가다. 하지만 그는 ‘그 뒤’가 중요하다고 했다.

“선거는 목전에 닥쳤지만 결국 분열했지요. 그럼에도 노동현장은 민주노동당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습니다. 분당 전과 같진 못하지만 선거 막바지로 가면서 진보야당으로서 더 사랑해줬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나간 이들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물론 상호 제기하는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집행부의 책임이 큽니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해결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분열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홍 당선자는 이제는 분열로 인해 떠나간 노심을 돌아오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당이 혁신재창당을 잘해서 노동자에게 혁신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과거의 지적을 과감히 떨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노심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사퇴불사 책임지는 국회의원 되겠다”

홍 당선자는 지난 총선기간 기자간담회를 통해 비정규직법 통과를 막지 못한 단병호 전 의원은 당시 사퇴했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바라보는 17대 국회는 어땠을까.
전반적으로 그는 민주노동당의 17대 국회에 좋은 점수를 매겼다.

“못했다는 평가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17대 의원들이 ‘특별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비리나 구설수에 오른 이도 없고 상임위 활동도 어느 당 의원보다도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노동정책과 관련, 국회 점거나 농성을 하는 등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책임지는 모습은 부족했다는 게 홍 당선자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의 대선배에 대한 부담감에도 단병호 전 의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것.

“당시 비정규직법은 매우 중요한 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최악의 비정규직법 통과를 막지 못했지요. 환노위를 담당했던 단병호 전 의원이 차라리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노동현장으로 돌아왔다면 더 많은 노동자에게 각인됐을 것입니다.”

그는 진보정치의 ‘책임’을 이야기했다.

“민주노동당이 중요한 고비마다 책임질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국회의원이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작도 하지 않은 홍 당선자에게, 비슷한 경우가 다시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5석이라 더 어렵겠지요.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하지만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책임을 질 것입니다. 비례대표는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후보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되 한계에 부닥친다면, 의원직에 연연해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원외국회 강화 속 원내외 소통 중요”

홍 당선자는 17대 국회의 쟁쟁한 이력자들에 비해 인지도나 능력 면에서 잘 알려지지 못한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부담감도 클 듯하다.

“단병호 전 의원은 숱한 노동탄압을 받으면서 우뚝선 노동운동의 표상이지요. 반면 전 잘 알려지지도 않고 왜소한 사람이라고 솔직히 시인합니다. 밖에서 바라보는 제 모습이 그럴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일 잘하면서 그런 인식을 불식시키겠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네요.”

민주노동당은 앞으로 당대표 권한을 확대하고 원외국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도체제를 개편할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의원단 입지가 좁아지지는 않을까.

“5명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원외투쟁을 조직해야 합니다. ‘거대한 소수’ 전략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도체제 개편 논의는 잘 모릅니다. 아마도 앞으로 혁신재창당 과정에서 중앙과 지역에서 의견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원내외가 사전 논의를 통해 활동방향이나 공약관철 등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난 17대에는 원내외가 괴리돼 있어 원내외가 갈등이 있었던 게 아닌가란 생각도 합니다. 원외지도부와 원내의원 간 원활한 소통이 이뤄져야 합니다.” 

“민주노총과 긴밀히 협의해나갈 것”

비정규직 후보로 당선된 홍 당선자에게는 앞으로 민주노총과의 관계도 중요할 것이다. 그는 민주노총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가겠다고 밝혔다. 이 역시 그동안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간 괴리됐던 부분을 복원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일각에선 ‘민주노총당’이라며 부담스러워 하지만, 비정규직과 노동자 문제를 제기하고 투쟁하며 조직하는 주체는 민주노총뿐입니다. 민주노총과 정례협의회 등을 통해 긴밀히 협의하고 국회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지도부가 바뀌더라도 일관성 있게 협의해갈 것입니다.”

아직은 모든 게 조심스러운 보이는 홍 당선자. 그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당원과 노동자인 듯하다.

“당원들께서는 총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겠지만 국민들의 지지에 대한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조직의 혼란 속에서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서민의 유일한 희망임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해준 조합원에게도 감사합니다. 능력에 한계가 있지만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은 실천으로, 노동자·서민을 위한 의정활동을 성실히 해나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매일노동뉴스> 2008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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