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는 지난해 '산업·업종 탐구'로 노동언론의 관심을 산업의제까지 확장한 데 이어 무자년 연중 기획으로 '현장을 가다'를 준비했습니다. 산업과 업종을 막론하고 생산·제작·운반·유통·서비스·판매 등 노동의 현장을 찾아 '현장의 땀방울'을 지면에 담아내려고 합니다. 매주 월요일자에 게재합니다.<편집자>

 
 
 
유성 리베라호텔은 대전광역시에서 유일한 특1급 호텔이다. 금장띠를 두른 무궁화 5개를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88년 만년장여관을 인수한 우성관광은 프랑스 휴양지 이름을 딴 ‘호텔리베라’를 만들었다. 회사의 부도로 2001년 주인이 바뀌어 신안그룹에 넘어갔지만, 호텔은 2004년 폐업하는 등 무려 619일 간 굳게 문을 닫고 있었다. 2006년 9월에야 노사관계 정상화를 선언하고 특2급에서 특1급으로 재개장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7일 유성 리베라호텔을 찾아 특1급호텔 서비스를 만드는 도어맨·룸메이드 노동자들을 찾아갔다.

서비스가 호텔등급을 결정해

사실 으리으리한 대리석이 깔린 로비와 번쩍번쩍한 객실 인테리어가 특1급 호텔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관광진흥법 관련규정에 따르면 종합관광호텔업등급 평가기준 1천점 만점 가운데 건축 및 설비는 100점에 불과하다. 종사원 복지와 관광사업에의 기여 등을 비롯해 9개 부문에서 세부적인 평가가 이뤄진다. 총 900점을 넘어야 특1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고급호텔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서비스'다. 도어맨이나 웨이트리스, 룸메이드 노동자들의 접객능력에 따라 호텔의 등급이 달라진다. 그래서 특급호텔의 능수능란한 총지배인도 대개 시작은 웨이터이거나 벨보이, 도어맨이다. 유성 리베라호텔의 박길수 총지배인도 25년 전에는 웨이터 실습생이었다.

대학에서 관광일어통역을 전공하고 91년 입사한 임건화(42)씨도 7년째 도어맨이지만 언젠가 지배인이 될 날을 꿈꾸고 있다. '사원-캡틴-부지배인-지배인-대리-과장' 순으로 진급하는데 임씨는 현재 캡틴이다. 2004년 회사가 폐업하기 직전에 부지배인으로 승진 발령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노조활동을 열심히 한 경력 때문인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 돌연 발령이 취소됐다. 동료들에게 승진턱만 크게 냈다. 그는 아직도 캡틴이다.

“바퀴만 봐도 고객마음 알 수 있다”

금요일 오전 11시. 평일 오전이지만 300대가 주차 가능한 리베라호텔의 주차장은 이미 차를 댈 곳이 없어 보인다. 임씨의 시선은 주차장 진입차로에 고정돼 있다. 추위가 한층 풀린 3월에도 도어데스크를 지키는 임씨의 코끝은 빨갛다. 영국 신사용모자에 밍크털목도리와 어깨견장, 반짝반짝하게 광이 나는 구두까지 갖춰 입은 임씨의 자세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도어맨은 호텔의 첫인상입니다. 고객이 없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는 없죠.” 오전 8시에 출근한 임씨는 오후 5시에 퇴근할 때까지 9시간을 오로지 서서 일한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임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날은 없다. 고객의 차문을 열어주는 것만이 도어맨의 전부는 아니다. 호텔에서는 보통 고객영접과 환송, 주차서비스로 도어맨의 직무를 표현하지만 그 안에는 호텔이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가 녹아 있다.

“호텔노동자에게 3초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고객들은 호텔 앞에 도착해 단 3초만에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거든요. 그래서 제일 처음, 그리고 제일 나중에 고객을 대하는 도어맨의 임무는 막중합니다.”

점심 때가 되자 호텔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도어맨 임씨의 손길도 빨라졌다. 바쁜 와중에도 임씨는 호텔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남성에게 다가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먼저 묻는다. 고객들은 주변 맛집 소개부터 갈 만한 관광지 안내는 물론 가까운 세탁소 추천도 임씨에게 부탁한다.

“도어맨은 그 지역의 정보통입니다. 고객들의 질문에 척척 대답해 드려야 하니까 모든 소식에 민감하지요. 추천한 식당이 문을 닫았다면 낭패잖아요.”

호텔을 찾는 사람들이 내국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영어나 일어같은 외국어능력도 최소한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돼야 한다. 도어맨 경력이 10년에 달하지만 임씨는 "아직도 멀었다"고 말한다.

“도어맨의 최고 단계에 이르면 차 바퀴만 봐도 고객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고객이 남자냐, 여자냐 또는 나이가 많냐, 적냐에 따라 서비스도 차별화되는데 타이어의 생김새만으로도 최상의 고객접견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죠.”

막무가내로 호텔 정문 앞에 차를 세워놓고 들어가 버리는 고객이 불쾌하지 않게 주차장으로 안내하는 것부터 인사불성의 취객이 객실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모두 도어맨의 역할이다.

“고객 중에서는 도어맨을 ‘맨’으로 보지 않고 ‘도어’로만 보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다고 고객을 탓할 수 없는 게 서비스노동자의 처지잖아요. 실제로 스트레스나 우울증으로 속앓이하는 동료들이 많아요. 요즘 들어오는 젊은 친구들은 얼마 못 버티고 나가더라고요.”

임씨에게도 그러한 위기는 있었다. 그는 호텔노동자로서의 자부심과 종교의 힘으로 극복했다고 했다. 하지만 임씨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피로하다면 서비스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노조나 호텔 차원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씨는 도어맨에게 제일 힘든 일은 ‘고객이 없을 때’라고 귀띔한다.
“군대에서 보초 설 때 이 생각, 저 생각 들잖아요. 도어맨도 혼자 서 있으면 여러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데 생각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요. 10년 동안 하루 9시간을 서 있으면 더 이상 생각할 '거리'도 없어지죠.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이제는 도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야 하나….”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는 임씨의 말 못할 고충이다.

진짜 호텔리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다

호텔은 부자에게는 ‘안락’을, 가난한 이에는 ‘환상’을 판다. 호텔리어가 화려하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호텔 안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더 많다. 룸메이드 오후두(56)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유성 리베라호텔 6층에는 ‘하우스키핑’실이 있다. 174개 객실의 사용유무와 청소유무를 나타내는 전광판이 쉴 새 없이 깜빡인다. 오씨는 여기에 딸린 린넨실에서 침대시트와 1회용 비품 따위를 챙겨 객실로 이동한다.

객실 앞에 선 오씨는 차임벨을 3초 간 2번 누르고 ‘룸메이드입니다’라고 외친다. 고객이 객실에 없는 것을 전광판을 통해 확인했지만 객실청소의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에 생략할 수 없다.

룸메이드의 객실청소는 15단계로 나뉜다. 교체하는 종이류만 컵받이부터 팩스용지까지 무려 15가지나 된다. 전체 비품을 합치면 60가지가 훌쩍 넘는다. 거기에 세탁물 수거용 비닐팩이나 메모지 등이 담긴 서랍은 반드시 8cm 정도 열어놓아야 하며 커텐의 주름 정도나 스테인리스 광택까지도 일일이 체크한다. 전등이 제대로 켜지는지 화장실 변기에서 소리가 나지는 않는지를 점검하는 것도 룸메이드의 몫이다.

그래서 방 1개를 치우는 데 대략 30~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오씨는 “룸메이드로 한 사람 몫을 하려면 적어도 1년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재개장한 뒤 새로 채용한 룸메이드의 경우 6개월 동안 선배들을 따라 일을 배웠다. 6개월 이후 홀로 객실청소를 담당하더라도 선배들의 손이 가는 일이 많다. 연말연시같은 성수기에 174개 객실이 풀가동되면 룸메이드들이 가장 바쁘다. 프런트와 하우스키핑룸, 룸메이드 간의 손발이 맞지 않으면 여지없이 사고로 이어진다.

오씨는 그래서 룸메이드를 외주용역화하는 지금의 추세가 ‘기가 막힌다’고 했다. 롯데호텔을 비롯해 대부분의 특급호텔이 룸메이드를 용역으로 전환했지만, 르네상스호텔처럼 곳곳에서 ‘불법파견’ 시비가 일고 있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스위트룸이라고 해도 머리카락 한 올이 떨어져있으면 용서가 안 되는 것이 호텔인데 룸메이드를 너무 쉽게 생각해서 탈이야. 유성 리베라호텔도 간간이 외주용역 전환 얘기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오씨가 분주히 움직이던 손길을 멈춘 채 한마디한다.

김환일(43)씨는 시설과 소속으로 기관실 담당이다. 호텔을 지은지 20년이 다 돼다보니 여기저기 잔고장이 많다. 이날도 김씨는 한식 객실에서 소리가 요란한 냉난방기를 교체하고 있었다.

“우리 호텔에 기술자만 26명입니다. 전공은 다 달라요. 전기·기계·음향·방재·염선 등 못 하는 게 없죠. 정화조도 담당하고 있어요. 우리 손으로 오물 안 치우면 화장실에 광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3교대 근무는 시설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손님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근무시간은 더 들쭉날쭉이다.

“사우나는 밤 11시에 끝나니까 야간근무를 해야 하고 객실은 주로 밤에 몰리니까 주간근무도 해야 하고, 호텔은 주말에 더 바빠요. 친척 결혼식도 제대로 못 간답니다.” 시설과 직원들은 연회장이 바쁠 때는 서빙업무도 도맡아 한다. 호텔에서 제일 바쁜 업무 중 하나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우아한 음악이 흐르는 연회장 뒤편 주방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1천명을 수용하는 연회장의 음식을 만들어내려면 눈코 뜰 새 없지만 주방에서는 아무도 뛰어다니는 사람이 없다. 물과 기름 때문에 하루 두 번씩 주방의 바닥을 닦아도 매우 미끄럽다. 게다가 칼 같은 조리용구를 다룬다. 급하다고 뛰다간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주방에는 조리팀 외에도 기물관리와 주방보조를 맡는 팀이 따로 있다. 여기에서는 하루종일 접시만 닦는 사람, 재떨이만 닦는 사람 등 업무가 더욱 세분화된다. 김원범 호텔리베라노조 위원장은 “보일러수리공부터 마케팅·판촉직원까지 호텔에는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가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다”며 “화려한 이면에는 여러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있다”고 말했다.

2006년 재개장 이후 유성 리베라호텔은 최근 '잘나가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02년 월드컵 특수보다 요즘이 더 장사가 잘된다”고 말했다. 오랜 폐업 후 재개장했다는 언론의 보도와 입소문으로 오히려 ‘폐업마케팅’ 덕을 봤다는 김 위원장은 그래도 마음이 무겁다. 영업은 정상화됐지만 노사관계는 아직 정상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호텔측이 100% 비정규직으로만 신규채용을 하고 일손이 딸리는데도 인력충원을 하지 않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호텔도 노동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노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서비스일자리 줄어드는 이유 있다
유성 리베라호텔은 2006년 재개장 당시 173명이던 직원이 106명으로 줄었다. 현재는 236명으로 늘었지만 정규직은 130명에 불과하다. 90여명이 1년계약 비정규직이고 나머지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다. 특히 벨맨이나 도어맨으로 들어오는 계약직 비정규직들은 반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호텔을 떠나고 있다. 예전에는 4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2명이 하고 있다.
 

365일 24시간 불이 켜진 호텔의 특성상 호텔노동자들은 3교대로 근무한다. 도어맨의 경우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각각 1명씩 근무하고 벨맨은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2명이 일한다. 그래서 낮에는 호텔에서 벨맨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프런트에서 벨맨의 역할을 대신한다.
 

호텔측은 그동안 2명의 벨맨을 새로 고용했지만 1명은 3개월, 다른 1명은 6개월만에 그만뒀다. 정규직보다 처우를 좋게 해도 ‘지배인’의 꿈을 꿀 수 없는 비정규직들이 고된 노동을 감내하기는 버거웠던 탓이다. 이같은 현상은 숙련 서비스일자리 감소추세와 일맥상통한다. 황수경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기계나 컴퓨터에 의해 가장 대체되기 어려운 능력’을 현대적 의미의 ‘숙련’이라고 정의했다. 비일상적인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대처능력이나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하는 쌍방향 작업능력과 같은 인지적 숙련, 상호적 숙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2002~2006년 서비스일자리의 변화를 분석해보면, 전체적으로는 119만개 늘었지만 오히려 인지적 숙련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탈숙련화 경향’으로 부르는 황 연구위원은 “상당수 서비스업종에서 저숙련 노동을 선호하고 그 결과는 저생산성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저생산은 다시 저임금·저숙련 의존성 증대의 악순환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도어맨에서 출발해 수십년 간 솜씨를 갈고닦은 후에야 지배인 배지를 달게 되는, '오랜 전통'의 이유를 특급호텔들이 되새겨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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