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의 끝자락, 갑작스런 국보 1호 숭례문의 화재 붕괴는 온 국민을 경악케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설마 불길을 못 잡을까. 하지만, 다 무너져서야 끝났다.

이것이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사건일까. 체포된 용의자는 98년 토지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고 2년 전 창경궁 방화를 저질렀고, 이에 대한 법원의 추징금에 또 불만을 품고 숭례문 방화까지 이어졌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이 지난 10년간 차곡차곡 쌓여 극단적 선택을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많은 국민들은 이번 사건을 비단 ‘숭례문 화재사건’으로만 보진 않는 듯하다. 현재 우리사회의 잔뜩 얽히고 설킨 문제들이 상징적으로 표출된 ‘경고’가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금 앞으로만 질주하는 무한경쟁 자본주의체제의 한 가운데 놓여있다. 부는 확대되지만 양극화 심화로 부의 분배는 날로 형평성을 잃고 있다. OECD 가입국이라지만 선진국의 잘 발달된 사회안전망에는 눈 감고 그저 시장에서 무한경쟁만 하라고 한다.

사회적 약자는 “죽겠다”고 소리 내어 보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묻힌다. 집단적 목소리 좀 내보려고 해도 ‘법과 질서’만을 강조하며 정부도, 법도 그들의 편은 아니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기름유출을 해도 적용되지 않는 그 ‘법과 질서’를 약자들에게는 잘도 들이댄다.

현재 한국사회의 대표적 약자인 비정규직의 규모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지 오래다. 비정규직법을 만드는데도 수년이 걸렸고, 만들어도 외주화 등으로 빠져나간다.

이명박 당선자는 불법파업 엄단, 법과 질서, 산업평화 등을 주장하지만, 지난 몇 년 간 대부분의 파업이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 간 더욱 가속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다시 숭례문으로 돌아오자. 지금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복원하겠다는 말보다는, 국보 1호를 불태운 그 ‘10년의 불만’을 만든 원인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하진 않을까.
이랜드와 코스콤 비정규 노동자들은 오늘도 차가운 거리를 지키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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