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의결기구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에만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가 줄줄이 유회되고 있다. 네 번째 상정됐다 논의조차 하지 못한 안건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 구성하려는 ‘혁신위원회’ 조차 안건으로 상정됐다가 논의되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만하면 ‘식물 대의원대회’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24일 서울 등촌동 88체육관에서는 민주노총 최고 의결기관인 정기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대의원대회는 국가기구로 치자면 국회에 해당되는 기관으로 대회는 1년에 한 차례만 열린다. 그런데 정기 대의원대회가 7시간 동안 5개 안건 가운데 하나만 처리하고 유회돼 버렸다. 재정혁신방안을 힘겹게 통과시키고 하나 둘 빠져나가는 대의원이 생기더니 두 번째 안건인 2007년 사업평가를 진행하는 도중 성원을 확인해 보니 반보다 62명 적은 431명만 남아 있었다.

지난해 1년 동안 벌인 사업을 평가하고 이에 따라 사업계획을 심의하는 안건도, 살림살이를 어떻게 했는지 또 어떻게 할 건지 결정도 하지 못한 셈이다. ‘한국진보연대 가입 건’은 지난 2006년 임시대의원대회부터 무려 네 번째 올라갔지만 처리되지 못했다. 의사결정기구가 계속 유회되는 문제 등을 해결하자며 ‘노동운동혁신위원회 설치 건’도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문제는 대의원대회가 번번히 유회되거나 무산되고 있다는 것. 조준호 전 위원장 시절인 지난 2006년 대의원대회는 대부분 유회되거나 무산됐고, 이는 이석행 위원장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석행 위원장은 선출되던 날인 1월26일 대의원대회 조차 유회되는 수난을 겪었다. 지난해 8월 ‘이랜드-뉴코아 향후 투쟁계획’만을 단일 안건으로 연 임시대의원대회를 제외하고 모든 대대가 무산되거나 유회됐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총 대의원의 의식 변화만 촉구할 게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며 “미리 안건을 심의하는 사전심의제를 도입해 대의원대회에서는 표결만하는 방법도 고려할만하다”고 말했다. 이석행 위원장 역시 최근 “직선제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간선제 때 했던대로 대의원 숫자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개선방안을 제시했었다.

한편 민주노총은 조만간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24일 처리되지 못한 안건을 다시 심의할 계획이다. 대의원대회를 한 차례 여는데 드는 비용은 3천만원에 달한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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