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노조와 합의도 않고 평가기준도 없이 차등성과급제를 도입한다고 하네요. 임금 때문에 동료를 밟고 올라설 수 있나요. 상급자 눈치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부작용만 초래할 겁니다.” 차등성과급제를 놓고 노사갈등을 빚고 있는 알리안츠생명노조 조합원 남아무개(37)씨의 말이다.

지난 23일 오후 5시. 전세버스 16대에 나눠 탄 노조 산하 5개 지구협의회와 본사 소속 조합원 850여명이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충주호리조트에 속속 모여들었다. 노조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알리안츠생명보험 본사 앞에서 파업출정식을 연 뒤 오후 3시께 이곳으로 향했다.

조합원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한 조합원은 “29일째 투쟁이 지속되면서 집행부는 물론이고 조합원들도 제대로 잠을 잔 날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노조 집행부는 목이 쉰 지 오래였다.

회사는 지난 21일 직원들의 근무성과를 S, A, B, C, D 등 5단계로 나누고 최고 S등급의 경우 200%, D등급은 0%를 성과급으로 주는 방식을 노조에 제안했다. 노조는 임금인상분과 집단성과급을 함께 배분하는 차등성과급제를 두고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방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회사측이 차등성과급에 대비한 재원도 마련해놓지 않은 채 노동자들끼리 제로섬게임을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파업 열기 ‘후끈’=충주호 한 복판에 위치한 충주호리조트. 해가 떨어지자 호수를 타고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조합원들의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저마다 줄을 지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파업상황실에서는 “휴대전화 전원을 꺼달라”는 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노조 집행부는 "회사의 회유나 압력에 조합원들의 심경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합원들은 리조트 4층부터 19층까지 객실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오후 7시께 파업문화제를 시작했다. 문화제는 ‘바위처럼’이라는 노래로 시작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동료와 마주보고 손뼉을 치고 어깨와 발을 부딪히는 ‘해방춤’을 추면서 파업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한 조합원은 “성과제가 도입되고 매년 D등급 받으면 자연 도태되는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조는 차등성과급제가 도입될 경우 조합원 가운데 약 85명이 매년 D등급을 받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회사측이 구조조정의 1순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용불안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파업결집력’ 갈수록 높아져=노조의 이번 파업은 노조 설립 47년만에 하는 첫 파업. 한 조합원은 “처음하는 파업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지만 회사가 우리를 아껴왔다는 순진했던 믿음이 깨지면서 더 독이 올라 있다”고 말했다.

본사 직원들의 파업 참여가 흔하지 않은 업계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알리안츠 본사 직원 100명이 이번 파업에 동참했다. ‘생명보험회사의 생명줄’이라는 영업소 지점장 250여명도 파업기간에 집단으로 조합에 가입한 뒤 파업에 참여했다. 강구민(40) 노조 전문위원은 “본사와 지역본부 영업소 모든 업무를 멈춰 회사를 더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예정보다 1시간 반을 넘게 진행된 파업문화제는 오후 11시께 조합원들의 ‘파업가’로 마무리됐다. 노조 집행부는 다음날 파업일정을 논의하느라 24일 새벽 1시가 돼서야 회의를 마쳤다. 노조는 24일에도 투쟁위원회선포식, 지구협의회별 토의, 강연, 대동제 등 파업 이틀째 일정을 이어갔다.

◇무한경쟁 강요하는 차등성과급제=이번 파업은 노사합의 없이 차등성과급제를 일방적으로 도입하면서 비롯됐다. 회사측은 지난 21일 노사협상 진행하던 중 취업규칙을 변경, 임금인상분과 생산장려금을 배분한 성과급을 지급해 노조의 반발을 샀다. 차등성과급제 도입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은 거셌다. 지난해 11월21일 실시한 파업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95.5%가 찬성표를 던졌다.

알리안츠 직원들은 지금까지 ‘생산장려금’이라는 명목으로 개인당 매년 약 200만원의 성과급을 균등하게 받았다. 이른바 '집단성과급제'다. 개인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기준도 없고, 조직의 화합을 깨지 않기 위해서다. 현재 대부분 생명보험 회사들은 주로 집단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있다.

전대석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차등성과급제가 도입되면 노동강도가 극심해질 것”이라며 “객관적 평가시스템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차등성과급제 도입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노조는 23~25일까지 파업을 진행한 뒤 25일 서울 여의도 본사 앞에 집결해 1차 경고파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하지만 회사측이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 노조는 향후 2차파업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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