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임원을 선출하는 한국노총 선거인단 대회에 올해부터 여성할당 30% 규정이 새롭게 도입됐다. 하지만 막상 선거인단의 두껑을 열어보니 여성할당 몫에 절반 이상 모자라는 13.4%의 여성 선거인만이 투표에 참가하게 됐다. 업종별로 성별 편차가 크고, 한국노총의 여성간부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의료산업노련은 40.74%의 여성이 참여한다. 금융노조도 31.20%를 기록했다. 반면 자동차노련·전택노련·식품산업노련·해상노련은 모두 3% 미만이다. 특히 항운노련과 광산노련은 여성 선거인이 단 한명도 없다. 이렇듯 업종에 따른 성별 불균형으로 인해 여성 할당제의 의미가 도입 첫해부터 퇴색되고 있다.

◇여성할당 13.4%의 현실=한길완 한국노총 조직국장은 조합원 중 여성비율이 30%를 넘는다고 하더라도 여성 노조 간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선거인 중 일반 조합원이 아닌 노조 전임자의 비율은 대략 60%를 넘어서는 것으로 선관위는 분석했다. 하지만 전임자 중 여성 간부가 적다보니 여성 선거인을 선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산별연맹들의 현실적 고충이 있다. 여성할당이 필요하다면 선거에 국한해서라도 할당율은 제고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나 운용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며 "다른 부분의 할당제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법적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선거에서는 제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장석춘-백헌기 후보가 단독출마했다. 법적시비의 소지가 그만큼 떨어진다. 하지만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경선이라면 패배한 측에서 여성할당 비율과 선거인 자격심사 여부를 제기할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현행 선거인 선출 방식은 각 연맹별 대의원대회를 통해 선거인을 선출해 통보하면 한국노총 조직본부가 선거인에 대한 자격을 심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자격심사에서 원천적으로 문제 선거인을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연맹에 직접 가서 선거인단의 적절성을 조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 연맹에서 통보한 인원을 바탕으로 선거인수를 조정하는 수준이다. 이러다 보니 법적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새 위원장이 선출되더라도 조직화합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 그래서 선거인 관련한 규약·규정을 강화하거나, 연맹별로 선거인 자격심사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성할당 비율은 계속돼야=선거에서의 여성할당제 의무비율이 문제가 되자 여성조합원의 비율은 최대한으로 놔둔 채 남성 조합원의 비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김혜숙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 부위원장은 "업종의 특성상 여성이 없는 경우 30% 강제할당이 아니라 여성 조합원수 대비 남성 조합원 수를 몇 %로 하자고 수정·운영하는 방식으로 여성할당의 취지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정당이나 다른 대중조직에 비해 뒤쳐진 만큼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선거에서의 여성할당제는 시작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부위원장은 이번에 시행되는 여성 부위원장직에 대해서도 "지금 거론되는 후보들이 공공과 금융에 집중되면서 여성 부위원장의 자리가 구색 맞추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고 여성 후보군의 대상을 넓힐 경우 연맹별 집단이기주의로 변질되면서 여성의 세력화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여성할당이라는 큰 틀에서 한국노총 여성 노동자의 고민이 지금부터라도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차원에서 여성 조직화가 약하다보니 여성위원회도 형식적으로 흐르고, 대의원대회와 중앙정치위원회 등 주요 의사결정구조에서 여성은 소외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주요 의사결정구조에 여성들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여성 노동자에 대한 교육과 학습의 기회를 보장하는 등 여성조직 활성화와 성평등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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