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가 잘 풀리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노사관계가 안정된 국가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노동시장의 유연성(근로자의 해고와 직장 이동이 자유롭다는 의미)이 강한 국가일수록 실업률이 낮고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경제호황을 맞고 있는 미국과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경제 효과와 생산성 향상, 유연한 노동시장에 힘입어 미국은 최근 10년간 유례없는 경기활황을 누리고 있다. 영국도 요즘 실업률(2000년 11월 현재 3.6%)이 25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질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다.

런던대학 H M 스코비 교수는 『영국이 유럽에서 가장 많은 해외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것은 노동시장이 유연하기 때문』이라며 『노동시장의 개혁이 없었으면 영국경제가 되살아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독일 노동시장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멘스, 바스프, 폴크스바겐, 다임러 등 독일 대기업들은 최근 3~4년 사이 기업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대량해고와 사업매각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른바 「군살빼기 생산방식」(lean production)을 도입하여 인원감축, 비용절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적극 나선 것이다. 통독 후 계속 어려웠던 독일경제가 작년 하반기부터 상승국면에 들어선 것도 이 같은 구조조정에 힘입은 바 크다는 지적이다.

독일 노사관계의 안정에는 「투명한 경영」이 밑바탕이 되고 있다. 유럽 최대 화학회사인 바스프(BASF)의 쥐르겐 함브레히트 아태담당 사장은 『근로자 복지와 고용에 영향을 주는 문제는 항상 회사가 솔직하게 설명을 한다』며 『노사 신뢰가 끈끈하기 때문에 구조조정과 관련한 파업이 벌어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임금안정이 경제부흥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아일랜드와 중국의 사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아일랜드는 10년 전에는 유럽연합 국가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영국을 추월할 정도로 부유한 나라가 됐다. 비결은 간단하다. 정부와 재계, 노동계 등이 합심하여 나라경제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정부와 기업, 노조는 2년마다 「사회 파트너십」(Social Partnership)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아일랜드 경제와 사회를 이끌어나갈 국가협약이다. 아일랜드 기업통상고용부 마틴 샤나거 국장은 『정부와 노사가 함께 임금인상률과 고용개선 조건을 협의, 결정하고 있으며 결정사항은 기업과 노조가 모두 지킨다』고 말했다.

중국의 노사 법령은 노사관계를 강제적으로 규정하기보다 국가는 근로시간·최저임금 등 기본사항을 규정하고, 근로계약 등 나머지 노사관계는 기업 자율에 맡기고 있다. 한마디로 근로자의 채용과 해고가 상당히 자유롭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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