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을 하면 정규직 반장으로부터 문책을 받았어요. 몇 시간 동안 작업지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각·월차· 생리휴가를 쓰고 싶을 때는 정규직 반장에게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29일 서울 영등포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삼성SDI 부산공장 하청업체의 해고노동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지난 16일 서울에 올라와 삼성본관 앞에서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삼성SDI와 아무런 고용관계가 없다. 삼성SDI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해고노동자들은 올해 2월 삼성SDI가 주력품목 교체와 정규직 전환배치, 이어진 사내하청업체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런 뒤 삼성측에 원직복직을 요구했다. 삼성SDI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직접 작업을 지시하고, 노무관리를 했다는 것이다. 불법파견 노동자였다는 주장이다.

◇2001년 이전에는 혼재공정=김경연(26·여)씨와 이지현(27·여)씨는 2000년 삼성SDI 부산공장 하청업체인 W전자에 입사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면접관은 W전자 인사담당자가 아니라, 삼성SDI의 인사담당자였다. 그리고 LCD생산공정에 배치됐다. 직영과 하청이 혼재된 공정이었다. 당시 삼성SDI 내에는 사내기업이 활성화돼 있었다.

그리고 같은 공정에서 7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두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소속업체는 3차례 변경됐다. W전자에서 S전자, J테크, 하이비트로 이어졌다. "어차피 삼성에서 작업관리하는 마당에 업체는 형식적이라고 생각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삼성SDI가 직영과 하청의 업무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혼재하던 작업이 나뉘어 졌다. 작업만 분리됐지 작업관행은 여전했다. "작업지시, 불량문제, 생산물량에 관한 사항 모두 삼성SDI 정규직 반장이 지시했습니다. 생산물량을 체크하는 양식까지도 삼성SDI와 똑같았습니다."

◇2004년 칸막이 설치=삼성SDI는 2004년에는 직영과 하청 공정 중간에 칸막이를 설치했다. 이때부터 삼성SDI 부산공장은 도급제라는 사실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이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을 즈음이었다. 직영 반장의 작업지시가 하청 반장을 거쳐 이들에게 전달됐다. 당시 내부 통신망을 통해 모든 작업지시가 이뤄졌다고 해고노동자들은 밝혔다. 현행법상 도급업체는 독립적으로 작업계획을 수립하고, 노무관리를 해야 한다.

"사내하청업체가 무슨 권한이 있겠습니까. 도급제 이후에는 서류양식에서 삼성SDI 로고를 화이트로 지우고 각 업체의 이름을 넣어 사용했습니다. 사소한 장갑, 마스크조차 삼성에서 지급했습니다"

김씨와 이씨는 하청업체가 삼성SDI로부터 임대해 사용하는 생산시설의 관리도 모두 삼성SDI 직영직원들이 담당했다고 주장했다.

"삼성SDI는 하이비트 해고노동자들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불법파견 노동자였습니다. 수백억원의 비자금 일부만 있으면 우리를 복직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매일노동뉴스> 2007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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