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8일 오후 6호선 동묘역에서 갑자기 선로위에 뛰어든 사람을 치는 사고를 겪은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 김아무개씨. 사고수습을 하던 김씨는 어쩔 수 없이 열차사령지시를 어겨야 했다.

사고가 나자마자 곧바로 선로에 내려간 김씨는 사상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119에 구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사고 소식을 들은 열차 사령은 김씨에게 "사상자를 선로 옆으로 치우고 열차 운행을 재개하라"는 황당한 지시를 내린 것. 김씨는 이 지시를 무시하고 119 구조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사고수습을 한 뒤 운행을 재개했다.

"사고처리가 끝나야 운행"…기관사들은 지시 거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사고관련 규정에는 사상사고시에는 사체수습 등 모든 사고처리가 완전히 마무리된 뒤에야 열차운행을 재개토록 돼 있다. 그런데도 공사는 사상사고자 생사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선로 옆으로 사람을 치우고 운전을 재개토록 지시한 것이다.
김씨는 공사에 제출한 사고확인서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한 판단없이 사고자를 움직일 경우 위험하다고 판단해 119 대원이 조치를 취하는 것을 확인하고 열차를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승객을 태운 채 무인운전 시험을 강행해 말썽을 빚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신속한 열차운행 재개에만 급급한 나머지, 사상사고 발생시 관련 규정도 무시하면서 사고수습을 하는 사례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규정을 무시한 공사의 사고처리에 대해 김씨처럼 기관사들이 열차 사령지시를 무시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최근 사상사고를 경험한 서울도시철도기관사들이 공사에 제출한 사고경위서와 사실확인서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결과 확인됐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기관사 이아무개씨 역시 김씨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지난 2일 오후 6시50분 6호선 고려대역에서 사고가 났다고 전해들은 이씨는 월곡역에서 서행운전을 하며 고려대역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고려대역에 도착하기 직전 시신수습중인 119 대원들을 발견하고 급정거했다. 열차사령은 고려대역으로 빨리 진입시킬 것을 거듭 지시했다.

하지만 이씨는 "사체수습중이라 불가능하다"고 보고한 뒤 사령지시를 무시하고 사고수습이 완전이 끝난 뒤에 전동차를 승강장 정위치에 진입시켰다. 이씨는 공사에 제출한 사실확인서에서 "사체수습이 완전히 끝나고 본선 안전이 확보된 뒤 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사령지시를 거부했다"고 진술했다.

무리한 운행, 사고수습중인 경찰 다치기도

서울도시철도공사 규정에 따르면 앞선 열차가 사고를 당하면 일정 거리를 유지하도록 돼 있으며, 열차 사령은 이를 지시하게 돼 있다. 역시 열차사령 지시가 관련 규정을 어긴 경우다.

공사가 무리하게 열차운행 재개하다가 대형 후속사고를 낼 뻔한 사례도 있다.

고려대 사상사고 발생 일주일 뒤인 9일에는 7호선 남성역과 이수역 사이 터널에서 선로위를 걷던 신원 미상의 남자가 열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고 사고 수습반이 도착한 뒤 해당 열차는 출발했다. 하지만 후속 전동차를 운전했던 김아무개씨는 사고지점까지 서행을 하다가 작업중인 구조대원들을 발견하고 급정거를 시도했지만 정상지점보다 30미터 정도 초과해 정지했다. 이 때문에 사고수습을 하다가 전동차를 급하게 피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이 다쳐 병원 응급실에 후송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씨는 열차사령으로부터 지연된 열차시간을 빨리 회복하라는 지시만 듣고 사고수습중이라는 설명은 전해 듣지 못한 것이다.

서울도시철도노조 승무본부 관계자는 "사고시 조속한 열차운행재개는 당연한 조치이지만 다친 사람을 선로 옆으로 치우고 운행하라는 지시는 해도 너무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사상사고가 나면 승객들도 열차지연에 대해 대부분 이해하는 편"이라며 "관련 규정까지 무시하는 생명경시 풍조는 제2, 제3의 사고를 유발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홍보실 관계자는 "사고시 후속처리는 모두 관련 규정에 따라 철저히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제 관련 규정을 무시한 사례가 발생했다면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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