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 내년 의정비(연봉) 조정시한인 31일 각 지자체에서 의원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131%까지 대폭적인 인상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들은 곳곳에서 과도한 의정비 인상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방의원들이 주민들에게 이로운 일을 많이 하면서 의정비를 인상하면 모를까 일은 하지 않고 연봉 올리는데 만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 규탄 이유다. 특히 올해부터 지방의원 유급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돼 지방의원이 더 이상 무보수명예직이 아니라는 점은 성과와 의정비에 대한 논란을 끊이지 않게 했다.

지방의원들은 의정비를 올려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일을 많이 했을까. 지방의원들의 주요한 임무와 권한중의 하나는 조례 제정이다. 좋은 조례를 많이 만들어 주민들의 권리와 삶의 질을 신장키켰다면 어느 정도의 의정비 인상은 감내할만 하다.

민주공무원노조(위원장 정헌재)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내놨다.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246개 전체를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해 조례 제·개정 현황을 분석한 것이다. 노조의 결론은 “지방의원은 일은 쥐똥만큼 하면서 의정비는 태산만큼 인상한다”는 것. 현 지방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된 지난 2006년 7월부터 올 9월말까지 지방의원들이 발의해 통과된 조례는 의회 운영 등과 관련된 조례를 제외하면 지방의원 1인당 0.24건에 불과했다. 문구를 수정하는 극히 미미한 수준의 개정까지 포함된 것이 이 정도니 “놀고먹는다”는 비난이 지나치지 않다.

현 지방의원들이 취임이후 1년 3개월 동안 발의해 의회를 통과한 조례는 전국적으로 2천188건이었다. 전체 지방의원 수가 3천626명이기 때문에 1인당 0.6건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서 의회 운영 등과 관련된 조례를 빼면 그나마 주민들과 관련이 있는 조례를 864건으로 의원 1인당 0.24건에 지나지 않았다. 기초의원이 1인당 0.23건, 광역의원이 1인당 0.28건으로 기초건 광역이건 극도로 저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의회 운영 등과 관련된 조례는 회의, 증인, 입법고문, 자문위원, 윤리강령, 의정회, 의정활동비 등 의회 운영을 위해서는 만들 수밖에 없는 조례를 말한다.

기초의회의 25%에 해당하는 57곳은 의원이 발의해 통과한 조례 가운데 의회 운영 등과 관련되지 않은 조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기초의회 중 의정비 수준이 상위 10위권에 드는 곳이 오히려 기초의원 평균에도 미달하는 0.19건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기초의회 의정비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서대문구 의회의 경우 16명의 의원이 의회 운영 등과 관련 없는 조례를 단 한건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도토리 키 재기이긴 하지만 의원들의 활동과 의정비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1년 3개월 동안 평균 한건도 조례를 제·개정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그 내용은 더 참담하다. 먼저 의원들이 발의해 통과한 조례의 대부분은 제정안이 아니라 몇몇 문구를 바꾸는 수준의 일부 개정안이었다. 또 제정안이라 하더라도 재향군인 예우 및 지원, 국가보훈대장자 예우 및 지원, 참전 유공자 예우 및 지원 등 모범안이 나와 있는 것이 20%를 차지했다.

민주공무원노조는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판단해 보면 전체적으로 조례 제·개정 성과가 미미한 가운데서도 지방의원들은 주민 관련 조례보다 의회 관련 조례 등 자신들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의회 본연의 기능인 주민복지를 위한 자치법규 제정 노력은 뒷전이었다”고 밝혔다.

민주공무원노조는 원인을 지방의원들의 능력 부재와 노력 부족에서 찾았다. 이번 작업을 총괄한 이지문 연구원은 “먼저 지방의원들이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조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고, 두 번째는 개인 보좌관이 없다는 핑계만 대고 있을 뿐 전문위원들과 공무원들을 활용해 해보려는 노력조차 안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연구원은 “지금 단계에서는 청주시의 정보공개조례나 학교급식조례처럼 지역의 주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지방의윈들을 압박하는 조례제정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대안으로 지방의원 해외출장시 조례 정보 수집, 지방의회간 벤치마킹, 지역주민단체의 조례제정운동 등을 제안했다. 노조는 이번 조사결과를 자료집으로 묶어 전국 246개 지방의회에 발송해 각성을 촉구하고, 시민사회단체, 지방의회협의회 등과 함께 조례 제정 활성화 방안을 찾기 위한 토론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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