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화(아웃소싱)를 막기 위해 합의한 분리직군제가 오히려 외주화를 더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무금융연맹(위원장 정용건) 여성위원회가 29일 서울 여의도 증권업협회에서 개최한 ‘분리직군제 및 무기계약직 확산 대응을 위한 워크숍’에서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과)는 “콜센터나 후선업무, 유통업의 계산업무 등 소위 주변업무로 분리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계약직들이 분리직군제로 전환되는 사례가 많다”며 “노조 교섭력 등으로 당분간은 직접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 해도 승진 등 기업 내부경력과 단절돼 오히려 외주화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분리직군제에 대해 일각에서 외주화를 막아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정규직 방안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그러나 직군제는 남녀 임금차이를 고착화하고 여성의 고용구조를 악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정규직화 방안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주희 교수가 발제를 맡고, 김영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박정옥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장, 강은영 우리투자증권 부위원장이 각각 토론자로 나섰다.

여성업무 직군제 전환 ‘간접차별’

이 교수는 분리직군제가 여성노동자의 차별을 고착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의 남녀간 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OECD 국가의 평균 남녀 임금차이는 83(남성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이지만 우리나라는 63에 그친다.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은 남성의 38에 불과하다.

그는 “분리직군제의 경우 직무·직군별로 승진이나 경력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임금격차가 계속 유지되거나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여성노동자의 직무가치가 저하될 수 있다는데 주목했다. 핵심업무와 주변업무로 나누고 있지만, 이를 나눌 근거가 명확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빠른창구 업무를 하고 있는 개인금융서비스직군(분리직군제 분리)은 우량고객을 상대로 하는 개인영업직군(정규직)과 직무상 차이가 거의 없고, 오히려 은행의 핵심 업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분리직군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핵심·주변업무를 가르는 기준이 성별에 의해 좌우된다는 설명이다. 여성업무 대부분이 주변업무로 분리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우리은행의 사례는 여성업무가 주로 직군제 전환의 대상이 됐다는 측면에서 간접차별의 혐의가 크다"고 말했다.

직군간 이동 가능성 배제도 문제

임금·노동조건의 차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분리직군제가 직군간 이동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은행 직군전환자의 경우 일정 직급 이상의 승진을 차장급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도 'C3'까지만 승진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증권업의 경우 관리업무와 영업업무의 차이가 임금격차를 정당화할 만큼 큰 것인지 설사 직무성격의 차이가 있다 해도 여성 승진이나 경력개발의 저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동일한 증권사 내부의 유사 근무 정규직과 분리직군제의 격차가 거의 2배에 이른다”며 “숙련형성과 팀 작업과 같은 다기능화가 중시되는 유연전문화 시대에 직군별로 견고한 분리의 벽을 쌓는 일은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유례 없는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산별교섭으로 차별문제 풀어야

그렇다면 이 교수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은 임금과 노동조건 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철저한 직무분석에 따라 비정규직, 혹은 분리직군으로 전환된 유사 정규직의 저임금과 임금형평성 확보를 위한 영향력 있는 결정이 내려질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임금차별과 관련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지급원칙을 확립하고 직무가치 분석 등 판결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라며 “차별시정주체 정의를 넓은 의미의 사용자·근로자·관련 단체(노동조합)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캐나다의 경우 하위사무직 여성공무원 20만명이 과거 차별적 임금지급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고, 인권재판소는 지난 98년 이를 받아들인 판결을 내렸다. 캐나다 정부와 공공서비스연맹의 조사가 함께 진행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국의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을 강제한 동등임금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75년 시행된 이 법은 같은 사업주에게 고용됐고, 남성과 같거나 유사한 직무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법 시행으로 여성노동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남성의 63%에서 75%로 상승했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남녀고용평등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집단소송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용·승진청구권 인정, 불가피할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사용자에게 부담시키는 방법도 제안했다.

또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를 여성고용지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시정하고 고용평등보고서에 고용사유, 남녀별 규모, 정규직 대비 임금수준 등을 자세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분리직군과 정규직간 수직적·수평적 이동이 허용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산별노조와 단체교섭을 통한 차별시정을 주문했다. 그는 “법·제도 개선만으로 여성 고용차별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해당 산업 내 비정규직, 적극적 조치, 동일노동 동일임금원칙 이행 등을 단체교섭을 통해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증권·보험업계 비정규직문제 해결사례
증권·보험업에서는 올해 1천680명 정도가 하위직급이나 분리직군·무기계약직 등으로 전환된 것으로 조사됐다.
 

김영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CJ투자증권의 경우 지난 6월 말 콜센터 직원 등 계약직 20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7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굿모닝신한증권도 콜센터직원 80여명을 재입사하는 방식으로 정규직화했다. 우리투자증권은 1년 이상 계약직 343명을 무기계약직으로, 현대증권의 경우 1년6개월 이상 근무한 201명을 정규직으로 각각 전환했다.
 

보험업계에서는 LIG손해보험이 분리직군 70명, 직급신설 114명 등 총 184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은 유한보상담당 사무계약직을 6급 신설을 통해 전환시켰다. 서울보증보험도 계약직 140명을 분리직군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밖에 제일화재보험·동부화재보험·삼성화재보험 등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거나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연구위원은 “현대증권노조와 CJ투자증권노조가 정규직 전환을 위해 취했던 방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현대증권노조의 경우 구조조정과정을 경험하면서 형성된 노조조직의 특성과 전략을 부각시킨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CJ투자증권노조의 경우 통상외주화 대상인 콜센터 상담원들과 영업직 직무의 공통적 특성을 찾아내 '직무이동'이라는 방법으로 사용자를 설득했다는 것도 참고해야 한다고 김 연구위원은 밝혔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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