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25톤 대형화물차 운전기사 현아무개씨는 최근 운수회사(지입회사)로부터 "정부의 번호판 교체사업에 따라 교체를 해야하니 번호판을 택배로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운수회사는 또 밀린 지입료도 송금해 줄 것을 요구했다. 현씨는 아무런 의심없이 번호판과 함께 지입료를 보내줬다.

하지만 운수회사가 현씨의 번호판을 다른 차량에 장착하는 바람에 현씨는 하루아침에 계약해지 당하고 일자리를 잃었다. 게다가 계약해지 전에 이뤄진 화주업체와의 운송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바람에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까지 져야하는 상황이 됐다.

교체시기 악용, 번호판 장사에 열올려

화물자동차운송시장 수급안정을 위해 정부가 진행중인 영업용화물차 번호판 교체작업이 악용되면서 화물 지입차주들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는 화물자동차 시장 수급안정을 위해 2004년부터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꿔 시장진입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2007년 12월31일까지 신규허가를 동결했으며 부실업체 퇴출을 위해 갱신 신고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또 일명 대포차 퇴출을 위해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을 일제히 교체중에 있다.

현씨는 번호판 교체시기를 악용해 운송업체들이 번호판 장사를 위해 지입차주 몰래 다른 차주에게 바꿔 판 사례로, 유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화물연대 등 업계 설명이다.

화물운송자동차사업법에 따르면 차량 5대 이상을 소유하고 있어야 업체로 허가받을 수 있다. 때문에 차량 1대만 소유하고 있는 화물기사들은 번호판을 받기 위해 5대 이상을 소유한 운송업체에게 800만원에서 1천만원에 이르는 번호판값을 지불해야 한다. 화물기사들이 운송업체와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른바 지입차주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번호판을 빌려줄때 마다 거액의 돈을 챙기는 재미가 쏠쏠한 운송업체들이 번호판 교체시기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박상현 화물연대 법규부장은 "법적으로 번호판 값을 반드시 지불할 필요가 없는데도, 운송회사들이 계약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요구를 하면 화물노동자들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개별허가제 시행되도 차량은 운송업체 소유

이런 지입차주제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2005년부터 시행된 '1대 개별허가제도' 역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악용되고 있다.

전남에 사는 화물기사 김아무개씨는 2004년 1월20일 이전에 지입차주가 되면서 김씨는 차량 1대만 소유해도 업체 등록을 할 수 있는 개별허가제 대상자이다. 하지만 개별허가 등록을 반대하는 운송업체와 차량 소유권 분쟁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차량등록원부를 확인한 결과 자신의 차량에 3억원의 가압류가 등재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운송업체의 채권자가 채권회수를 위해 김씨 차량을 가압류한 것이다.

번호판을 빌리게 되는 위수탁계약 및 지입제에 따라 자신의 차량도 법적으로 운송업체 소유로 되면서 발생한 일로,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시행된 1대 개별허가제도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가다 차량소유권 분쟁에서 승소하더라고 현행법에 따라 가압류는 계속 김씨 몫으로 남게 된다.

박상현 화물연대 법규부장은 "현행법상 중간에 차주의 번호판이 한번 바뀌면 개별허가제 대상도 될 수 없을뿐더러, 운송업체와의 소유권 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개별허가가 이뤄지는 등 유명무실하게 됐다"고 말했다.

화물연대는 잇따르는 번호판 갈취와 차량 가압류 등 운송회사 횡포에 대해 특별대책팀을 만들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화물연대는 "대책팀이 전국을 순회하면서 악질 운송업체에 대해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11월 법제도 개선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수급동결에 표준운송원가제도 등 뒤따라야
화물운송업체들의 부당한 번호판값 요구와 일방적인 번호판 교체 등은 정부의 화물운송사업 수급조절정책 시행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수급조절정책은 지난 2003년 화물연대의 두차례 파업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화물연대 등도 지지하고 있다.
 

박상현 화물연대 법규부장은 "수급조절 정책은 화물시장을 살리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며 "악질 운송업체들의 횡포가 정부의 수급조절 정책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수급조절정책의 일환으로 시장진입을 동결하게 되면서 번호판 장사에 의존하는 화물운송업체들은 수익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일방적인 번호판 교체 등 편법적인 수단으로 번호판 장사 수익에 열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 화물운송업체와 위수탁 계약을 맺은 운전기사가 개별등록 허가를 받아 나가게 되면 기존 운송업체에 있던 번호판은 하나가 사라지기 된다. 번호판 장사에 열올리는 운송업체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가 없다. 이 때문에 운송업체는 소유권 소송을 내면서 화물기사들의 개별등록을 막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수급동결 정책 뿐 아니라 표준운송원가제도, 다단계하도급 근절 등의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 화물연대 주장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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