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사의 중앙교섭이 마무리되면서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한 지부교섭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국내 최대 은행인 KB국민은행의 비정규직안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은행노사가 합의안을 도출할 경우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노사 관계자들은 올해 말까지는 대부분 은행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권 정규직·비정규직 규모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노조 조합원 숫자도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안 윤곽 드러나=우리은행을 제외하고 대형은행들은 좀처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노사가 최근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에 따르면 노사는 3년 이상 근무한 직접 고용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대상자는 대략 6천400명 정도 된다.

정규직 전환자에게는 고용보장과 복지혜택이 주어진다. 임금격차는 추후 해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을 별도 직군으로 묶을지, 아니면 하위직급에 포함시켜 승진차별을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접근을 이루지 못했다. 은행측은 별도 직군으로 분리하되 과장(L2)까지 승진을 보장하겠다는 안을 내놓고 있고, 금융노조 국민지부는 하위직급에 편입시켜 승진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현재 국민지부가 강정원 행장 연임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어 교섭이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지부위원장 선거를 감안하면 한두 달 내에는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면에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의 지부교섭은 여전히 교착상태다. 신한은행은 회사측이 직군제 도입(조건부 전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조는 선별전환이 불가피하다해도 영업점 창구직원 1천100명과 본사 일부 계약직만큼은 완전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나은행은 FM직렬 승진 책임자 공모로 촉발된 노사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교섭자체가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은행에서는 교섭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광주은행은 창구텔러 200여명에 대해 하위직급 신설을 통한 정규직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노사가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뤘다. 경남은행노사도 창구텔러 500여명에 대해 하위직급제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대구은행노사는 창구영업직원 600여명에 대해 직무분리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밖에 전북은행노조는 사무텔러 140명을 6급에 흡수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은행측에 요구하고 있다. 제주은행노사는 창구텔러 50명에 대해 하위직급제와 직군제 도입을 두고 의견차를 나타내고 있다.

◇금융권 정규직 규모 크게 늘 듯=비정규직문제의 해결은 금융권 정규직과 비정규직 규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융노조 조합원수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8월 현재 18개 은행에 8만9천900명이 근무하고 있다. 5만8천명이 정규직이고 3만2천명 정도가 비정규직으로 파악된다.

비정규직 가운데 청원경찰과 콜센터에 근무하는 파견직 7천명 정도를 제외한 2만5천명이 직접 고용계약직이다. 직접 고용계약직 중 상당수는 올해 말까지 어떤 형태로든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이며, 일부 사무계약직은 제외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앞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우리은행 비정규 노동자 3천76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외환은행 1천명, 산업은행 140명, 부산은행 606명, 기업은행 1천500명(2009년까지 단계적 전환)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총 5천700여명 규모다. 여기에 국민은행 6천400명과 한미지부 1천여명(한국씨티은행) 등 향후 정규직 전환을 고려하고 있는 인원을 포함하면, 2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들이 금융노조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조합원수는 10만명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금융노조 조합원수는 8만3천명이다.



<인터뷰> 정연갑 금융노조 정책국장
“우려 있어도 직군제 도입해 조속히 해결해야”
금융노사 공동교섭이 마무리됨에 따라 각 지부별로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사교섭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연갑 금융노조 정책국장을 만나 금융노사 합의에 대한 평가와 각 지부교섭에서 유의할 사항들을 들었다. 
 

- 금융노사의 비정규직문제와 관련한 합의에 대해 추상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올해 금융노조의 핵심 요구안 중 하나가 비정규직의 완전한 정규직 전환이었다. 그러나 금융노조 교섭과 별개로 각 지부마다 상황에 맞게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은행은 이미 지난해 12월 직군제 도입에 합의했다. 또 부산은행과 산업은행이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같은 상황은 노조의 교섭력을 상당히 약화시켰다. 불가피하게 금융노조는 정규직 전환을 원칙으로 하되 세부사항은 각 사업장에 맞게 지부노사가 정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물론 합의내용이 원론적이고 추상적이라는 비판과, 모든 공을 지부로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될 수 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처한 현실로 세밀하게 합의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음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 
 

- 비정규직 담당자로서 논의과정을 평가한다면
 

“비정규직 현황파악과 정규직 전환방식 등과 관련해 지부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지부를 방문했다. 토론회를 통해 나온 내용들을 요구안으로 정해 밀어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교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졌고, 지부별 합의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솔직히 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과 양보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현장 조합원들의 불만이 쏟아진 것도 부담이 됐다. 금융노조와 지부 간 이견도 있었지만 금융노조가 방향을 잃지 않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갈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 각 지부별로 다양한 방식의 비정규직문제 해법이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전환된 방식을 3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하위직급 신설을 통한 전환방식과 직군제 방식, 무기계약 전환 방식이다. 완전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부산은행과 같이 하위직급 신설을 통해 업무영역을 폐지하고 완전한 정규직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규모가 큰 사업장에서는 쉽지 않다.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직군제를 통한 정규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복지는 기존의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임금은 유연하게 감으로써 타협점을 찾는 방식이다. 차선책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무기계약방식은 가장 낮은 수준의 합의다. 이 방식은 현재 비정규직관련법안 그대로다. 2007년 7월1일 이후 재계약 또는 신규채용시 2년이 경과되면 무기계약으로 간주된다. 법제도에 나와 있는 것을 2년 앞당긴다는 취지로 보면 될 것이다. 
 

-지부별 논의에서 우려되는 점들은 없나.
 

일부 지부에서 무기계약직을 선택하는 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온다. 직군제가 도입될 경우 직원들이 업무가 수월한 별도직군으로 이동해 결국 모든 노동자들이 하향평준화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무기계약으로 전환할 경우 시간을 갖고 하위직급제도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직군제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올해 5월 비정규직 근로실태조사에서도 나왔듯이, 대다수 비정규직들은 임금은 차이가 나도 고용이 보장되고 복지혜택을 동일하게 보는 직군제 방식이라도 도입하길 원하고 있다. 직군제에 대해 우려하는 점들은 대부분 노동조건과 관련한 사항이다. 노동조건 변경은 단협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에 노사가 합의해야 한다. 그야말로 직군제는 차선책이다. 여건이 안 될 경우 차선책이라도 선택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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