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 은행의 파업을 막지 못한 노사정위 합의문은 22일 새벽 2시경 11시간여의 마라톤 협상 끝에 나왔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대한 골격을 바꾸진 않되, 노조가 다소간의 실익을 얻도록 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노조의 세가지 요구사항 중 1인당 영업이익 기준문제는 이미 협상 전에 금감위가 시정조치를 내렸다. 따라서 남은 문제는 금융지주회사와 합병문제로 압축됐고, 합병문제가 난항을 겪으면서 해당은행인 국민, 주택지부가 파업에 들어간 것.

우선 한빛 등 4개 은행에 대해서는 정부주도 금융지주회사에 자회사 방식으로 편입하되, 2002년 3월말에 나오는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6월말 이내에 기능재편 등을 마치기로 했다.

당초 정부 계획이 내년 9월말까지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8개월정도 여유가 생긴 것. 이 기간동안은 경영전략, 점포중복 등 통상적인 범위내에서 각 은행이 경영권을 가질 수 있다. 즉 인력과 조직을 해당기간만큼 유지시킬 수 있게 된 셈.

애초 노조가 최소한 2002년말까지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해달라는 요구엔 못 미치지만, 6개월정도 차이여서 해당지부들이 파업을 철회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인력감축 문제는 노사간 자율적 협의에 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국민·주택은행 합병문제에 대해서는 '7.11 노정합의 정신'을 존중해 노사간 자율적 협의에 맡기기로 했다. '강제합병이냐', '자율합병이냐'를 놓고 노정간 대립이 계속돼오자, 아예 노사 자율협상 테이블로 공을 넘겨버린 것. 표면적으로는 정부쪽은 기존과 같이 은행간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공식화시켰고 노조에서는 향후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은 은행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은행장들이 협상에 응하지 않은데다 22일 국민과 주택은행장이 전격 합병발표를 하면서 사태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 노조의 파업중에 벌어진 이같은 은행측의 태도에는 애초부터 두 은행의 합병문제를 되돌리고 싶지 않았던 정부측의 의도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합병문제에 대한 재량권을 줬지만 사실상 행장들이 단독으로 이를 결정할 수 있냐는 것. 21일 진념 장관이 비공개 협상과정에서 "경영진과 대주주가 (합병을) 원하는 이상 추진되지 않겠냐"고 언급한 것이나,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원하니까 두 은행이 움직이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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