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갈 데가 있나요. 이 건물에서 먹고 자고 해야죠."

정갑득 전국금속노조 위원장은 요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영등포 대영빌딩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잠은 물론 하루 세 끼 식사도 건물 안에서 해결한다. 벌써 두 달에 가까운 수배자 생활이다. 정 위원장은 지난 6월 말 금속노조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파업을 주도해 업무방해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식사를 먹기 위해 빌딩 5층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지하 1층 식당가로 내려갔던 것이 그가 최근에 가장 멀리 이동한 거리다.

정 위원장은 주로 금속노조 간부들이 가져다주는 밥을 사무실에서 먹는다. 샤워는 별도 시설이 없어 화장실에서 해결한다. 위원장실은 밤에는 침실로 용도가 변경된다. 그의 주변에는 경찰의 불시체포에 대비하기 위해 꾸려진 '사수조'가 항상 숙식을 함께 하고 있다.

정 위원장이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달 10일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 규탄집회에 이어 12일에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진행된 현대차지부 임금·단체협상에 교섭위원으로 자격으로 참가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수배자에 포함되지 않은 오상룡 부위원장이 위원장의 대외업무를 대리하고 있다. "수배자가 공식석상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언론의 공격 때문이었다.

금속노조 간부 2명이 잇따라 구속된 것도 사무실 칩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달 권재현 광주전남지부 지부장직무대행과 염창훈 인천지부장은 각각 차량으로 이동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다만, 정 위원장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금속노사 산별중앙교섭은 민주노총에 열려 참석할 수 있었다.

정 위원장과 함께 수배 중인 나머지 금속노조 간부들의 생활도 이와 비슷하다. 금속노조 수배자는 무려 31명에 달한다. 금속노조 집행부 임원 대다수와 지부장 19명에게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수배자들이 각 지부 또는 사업장을 벗어나지 않은 채 지부교섭 등 일상 업무를 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8월 20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