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회생의 사활이 걸린 금융구조조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된 4개 은행이 이번 노-정(勞政)협상으로 파업은 철회했다 하나 이들 부실은행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합의내용은 앞으로 구조조정 단계마다 큰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가 연말자금 성수기에도 국민과 고객을 볼모로 총파업을 결행, 점포마다 큰 업무차질을 빚게 하고 금융혼란과 대외신인도 하락을 가중시키는 국민-주택은행의 합병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납세자들로서는 이런 정책혼란과 왜곡, 무원칙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계속 쏟아부어야 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구조조정이 경영권에 관한 사안으로 경영진과 주주들이 결정할 문제이지 노조가 좌우할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물론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은 이번 불법파업에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천명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문제다. 결국 이번 합의 역시 '정부 주도 합병은 없다'던 지난 '7.11노정합의'에 이은 또 하나의 잘못된 선례(先例)로 남게 됐다. 노조요구에 밀려 지주회사 편입대상 은행들에 8개월 정도 자생(自生)시한을 연장해준 것부터가 구조조정원칙에 어긋난다.

2002년 6월까지 각 은행의 간판이 유지된 채 그 기능개편 시기가 대통령 선거분위기와 맞물리고 노조가 반발할 때엔 구조조정은 물건너 갈 수밖에 없다. 공적자금 낭비도 불가피하다. 그때까지 중복-과잉 인력과 점포가 정리하지 못해 결국 국민 혈세로 그것을 유지해야만 한다.

더욱이 기능재편과 인력-조직감축을 노사합의로 하기로 합의해준 것은 은행 경영진과 주주의 입지를 크게 좁혀 놓은 것으로 정부 스스로 구조개혁 발목을 붙든 형국이다.

정부가 섣불리 개입했다가 '자율합병'으로 발을 뺀 국민-주택은행간의 합병 전도(前途)도 그리 밝지 않다. 해당 은행장들이 협상권을 갖는다는 것이지만 국민은행장이 노조 감금에 굴복, '협상 잠정중단'을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런 은행장이 과연 합병을 성사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금융산업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구조개혁은 이제 부동의 국가과제요 이 점에서 공적자금은 달라면서도 구조조정은 안된다는 부실은행 노조의 일방적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지금 '연말 금융대란'을 일으키고 있는 국민-주택은행 노조도 대형화-겸업화로 수익성과 경쟁력을 높여야 비로소 생존할 수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물론 누구보다 개혁원칙을 확고하게 지켜야 할 주체는 정부다. 노조 눈치보기와 정치논리, 무소신이나 무원칙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조개혁은 끝내 좌절-실패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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