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매일노동뉴스>는 안타깝게도 창간호부터 보관돼있지는 못하다. 90년대 역동적 노동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가치 있는 기록인데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본지에 보관돼있는 <매일노동뉴스> 중 최초의 것은 93년 8월5일자. 이때만 해도 아직은 자체적인 기사를 생산하지 못하고, 타 언론사의 기사를 스크랩하던 때다. 하지만 나름대로 머리기사를 위로 올려 편집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머리기사는 ‘노사-학계, 정부 마련 고용 관련 법안 싸고 논쟁 치열’이란 <중앙일보> 8월4일자 기사다. 이어 주요기사엔 ‘민자당, 복수노조 불인정, 산별노조체제로 대체’란 <내외경제> 8월4일자 기사 등 5개 꼭지가 게재돼있다.

스크랩 기사에서 기명기사를 내기까지
 
하지만 초창기 <매일노동뉴스>에는 타사의 스크랩 기사만 게재된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 내부와 노사정간 정보 공유를 위해 창간된 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는 노동단체의 각종 성명서, 노사 및 정부, 학계의 각종 정책자료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집 또는 기획 꼭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인 94년부터. 그 해 1월4일자 신년호에는 <신년특집>면에 당시 한국노총 박종근 위원장, 단병호 전노협 위원장의 신년사와 ‘94년 노동쟁점’이란 자체 기사와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외부 원고들을 담았다.

같은 해 5월1일 노동절을 맞아 노동절 특집도 빼놓지 않았다. 5월2일자 노동절 특별판을 통해 한국노총의 ‘노동절 기념 및 민주복지사회 건설을 위한 결의문’, 전노대의 ‘UR 국회비준 저지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결의문’, 국제자유노련(ICFTU) 메이데이 선언문 등을 담아 노동절의 의미를 되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기사는 타사 스크랩 기사였으나 간간히 본지가 생산한 간단한 기사를 같이 게재했다. 그러나 기자명이 게재된 실질적인 기사의 형식은 아니었다.

처음 기자명이 제시된 기사는 94년 10월29일자에서 발견된다. 진숙경 전 기자가 작성한 ‘한국노총, 노동계 대통합 등 발전방안 내용확정’이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다른 기자들의 이름이 게재된 기사들이 서서히 비중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99년 6월22일자부터 기존의 잡지판형을 유지하되 좀더 크기와 볼륨을 키우는 판형변화를 이뤘다. 이 때부터 타사의 스크랩 기사는 더 이상 게재하지 않고 오로지 본지의 기자들이 발로 뛰어 생산한 생생한 기사들로만 채워졌다. 

87년 노동자투쟁 10년 기록, 그리고 IMF

<매일노동뉴스>는 노사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노동법률, 산업안전 등 다양한 노동분야 주제들에 대해 기획기사들을 생산해왔다.

97년 <매일노동뉴스>는 87년 노동자투쟁 10주년을 기념해 87~97년 10년을 관통해온 10대 노동뉴스를 선정해서 노동자투쟁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특집기사를 마련했다. △87노동자대투쟁(87년) △전교조 결성과 가입교사 대량해직(89년) △골리앗 투쟁(90년) △원진레이온 직업병(91년) △문민정부 출범과 개혁의 좌초(92년) △전지협 투쟁(94년) △외국인노동자 농성(95년) △민주노총 결성(95년) △한국노총 개혁파 집행부 등장(96년) △총파업과 노동법 개정(97년) 등의 10개의 기획기사는 노동자투쟁 20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유효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 한국은 국가부도에 빠지고 IMF 관리체제로 들어간다. 게다가 문민정부는 5년의 수명을 다해가고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기였다.

<매일노동뉴스>는 IMF 추운 겨울 ‘위기의 경제와 노동’이란 특집기사를 통해 실직공포와 임금동결 속으로 내몰리는 노동자의 위치를 조명했다. 이와 함께 문민정부 5년의 노동정책을 평가하고 당시 국민승리21일 권영길 대통령 후보의 “일자리 지키기” 공약을 중심으로 한 보도도 보인다.

그리고 다음해인 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정리해고 법제화를 추진한다. 같은달 15일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하고 진통 끝에 2월6일 정리해고를 포함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90여개항에 노사정 타협을 이뤘다. 같은 달 14일자 <매일노동뉴스>에는 “대우조선 조합원 2월13일 분신사망…정리해고 반대 투쟁 동참”란 보도를 통해 당시 노동현장의 분노를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정리해고 태풍 속 노동자 풍전등화

98년 여름, 현대차에는 정리해고란 태풍이 몰아쳤다. 그해 6월30일 현대차는 모두 4천830명의 정리해고 신고를 했고 성과 없는 교섭 끝에 노조는 7월20일부터 무기한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36일만인 8월24일 노조는 정리해고 규모(277명 정리해고, 1천261명 1년6개월 무급휴직)를 최소화하며 수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이미 명예퇴직 등의 과정을 통해 1만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나간 상태였다.

<매일노동뉴스> 역시 전면파업을 벌이며 치열한 교섭을 벌였던 울산 현대차 공장에서 수십일을 상주하며 생생한 취재를 했고, 8월25일자 ‘현대차 사태, 숨막히는 36일의 기록’이란 특집기사를 통해 “현대차 노사공방은 앞으로 대기업이 본격적인 고용조정을 앞두고 벌어지는 대리전”으로 규정하며 “그 첫 시험대였던 현대차 노사공방이 12억달러의 - 회사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 비용손실을 치르며 마감됐다. 이런 손실을 재연하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득이 될 것인가”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로부터 노동현장은 정리해고의 광풍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노조는 단체교섭시 ‘고용안정협약’을 맺는 것이 하나의 추세가 돼버렸다. 반드시 단체협약에 고용안정협약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노조 임단투의 핵심이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 같은 정확한 노사관계 흐름을 보여주는데 가장 빠른 감각을 갖고 있었다.

‘현장탐방’이란 고정꼭지는 <매일노동뉴스>의 최장수 기획물이다. 97년부터 2005년까지 8년간 쉬지 않고 이어진 ‘현장탐방’에서는 부도의 기로에 선 기아차(97년 11월) 등 노조투쟁 사업장은 물론 경총 연수부(97년 11월) 등 노사관계 분야에서의 다양한 현장을 찾았다. 

격동의 노사분쟁 거쳐 민주노동당 제3당 부상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는 잠시, 2000년은 노사분쟁이 쏟아진 격동의 시기였다.

2000년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금융부문 제2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쳤다. 대우차는 해외매각 이후 다음해초 벌어진 대규모 정리해고를 앞두고 몸살을 앓고 있었다. 또한 롯데호텔과 사회보험노조 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됐고 양대노총은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해 노동현안에 공동대응했다. 대한항공조종사노조가 합법화를 쟁취한 뒤 사상최초의 파업을 벌였으며 주5일근무제가 노동계의 “일자리 나누기” 측면의 주요요구로 제기된 뒤 노사정 쟁점으로 부상했다.

<매일노동뉴스>는 매해 연말 이같이 한 눈에 1년의 사건을 평가할 수 있는 ‘10대 노동뉴스’를 선정해왔다. 한 해의 노동쟁점을 정리하고 평가를 하는 주요기획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기사도 주요한 흐름을 빠뜨리지 않고 담아왔다. 국민승리21부터 민주노동당의 창당,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노동자후보 조명, 각 지방 선거취재를 통해 생생한 민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8.1%의 득표로 “민주노동당은 깨어보니 제3당”으로 부상했고 2년 뒤인 2004년 4.15 총선에서 10석을 확보하고 의회 3당으로 확고히 했다. <매일노동뉴스> 기획보도를 통해 반세기만의 진보운동의 성과의 의미를 짚었다.

2004년은 또한 비정규직법안을 둘러싼 노사정 갈등 끝에 정부가 비정규직법안을 발표하면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 해다. 정부는 9월 파견 전면확대, 파견기간 3년, 기간제 3년, 차별금지 등을 뼈대로 한 법안을 발표했다. 본지는 엠바고 논란 속에서도 현장 밀착취재를 통해 법안 공식발표 전 특종기사를 써서 사전에 핵심쟁점을 노동자, 국민에게 알릴 수 있었다. 

산업 및 비정규직법·로드맵 분석기획물 쏟아져

2005년 이후부터는 더욱 심층적인 기획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매일노동뉴스>가 취약하다고 지적받아온 고용부문에 대한 기획물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매일노동뉴스>의 2005년 11~12월 ‘외줄타기 현대차 노사, 경계선에 서다’란 주제로 모두 9회의 기획연재물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잘 짜이고 치밀한 자동차산업 기사로 분류되고 있다. 또한 한국의 노사, 노정관계를 주도하는 지도자들을 인터뷰한 ‘선수 인터뷰’도 주목받는 기획물이다. 이동응 경총 전무,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 이용범 전 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하갑래 전 노동부 근로기준국장, 김영기 LG전자 부사장 등이 지면을 거쳐 갔다.

2006년은 복수노조, 전임자임금 문제를 제외한 주요 노동법·제도 제·개정이 거의 마무리되는 한 해였다. 정부법안 제출 뒤 2년6개월만에 비정규직법이 통과되고 로드맵 논의 시작 4년여만에 노사정 합의를 거쳐 마무리를 지었다.

<매일노동뉴스>는 두개의 핵심 법제도 협상과정에 대해 2개의 분석기획물을 완성했다. ‘비정규법안 공방의 진실과 거짓’은 모두 10회에 걸쳐 비정규직법 협상을 추적하며 노사정 및 정치권의 숨겨진 진실과 거짓을 보여준다. 또 ‘노사관계 로드맵, 무엇을 남겼나’는 모두 5회에 걸쳐 결국 복수노조와 전임자금지 3년 유예로 끝난 로드맵의 이중성과 협상의 진실과 거짓을 담았다.

그리고 2007년 들어서는 산별노조 시대를 맞아 전자, 자동차, 화학 등 모두 10개 업종의 현안과 정책과를 분석하고 산업·업종의 노사단체와 기업의 노사대표자를 소개하면서 산업·업종 차원의 노사관계에 접근하는 ‘산업·업종탐구’ 기획물은 생산해냈다.

<매일노동뉴스 연혁>
1992.7.18 ‘매일노동뉴스’ 1호, PC통신망을 통해 발표
1993.5.18 한국노동정책정보센터 창립(매일노동뉴스 창간기념일)
노회찬 대표(발행인) 취임
1996.4.30 매일노동뉴스 1000호 발행 기념식
1999.10.26 (주)매일노동뉴스 법인 설립 (한국노동정책정보센터 해소)
1999년 고려대 노동대학원 제1회 노동문화상(노동언론부문) 수상
2000.5.24 매일노동뉴스 2000호 발행 기념식
인터넷 매일노동뉴스(www.labornews.co.kr)
인터넷 노동방송국 (www.ltn.co.kr) 오픈
2001년 언론노조, ‘민주언론상 특별상’ 수상
2003.5.18 창립 10주년 기념일
2003.10.9 박승흡 대표이사(발행인) 취임
2004.9.15 지령 3000호 발행 기념식, 인터넷뉴스 레이버투데이(www.labortoday.co.kr) 창간
2006.3.17 황원래 대표이사(발행인) 취임
2007.5.28 창립 15주년 특집호 발행

<매일노동뉴스> 2007년 5월 28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