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코아-이랜드일반노조 공동투쟁본부의 공동 파업투쟁이 이랜드그룹과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거대한 자본에 맞서서 여성 조합 간부들이 구속까지 결의하고 감행한 홈에버 상암월드컵몰점 농성이 이랜드그룹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민주노총까지 발벗고 나서 유례없는 ‘이랜드자본에 대한 무자비한 투쟁’을 선포한 지금까지도 이랜드그룹은 조합원들의 절박한 요구에 대해 별다른 진전된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성수 회장, 직원을 가족처럼 아낀다?

정말 안타깝다. 2천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무노동무임금을 감수하면서 장마철 불볕더위를 무릅쓰고 하루 하루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도 아직 박성수 회장을 위시한 경영진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최소한 직원들을 가족처럼 아낀다는 박성수 회장의 평소 지론대로라면 응당 지금이라도 농성장에 나와 마음을 열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번 공동 파업은 사전에 회사가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이고 교섭을 통해 실마리를 풀었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 만일 이랜드그룹이 문제투성이이긴 하지만 애초 ‘기간제법’ 취지에 맞게 ‘2년 이상 정규직화’나 ‘차별 시정’과 관련한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았다면 상황은 지금과 사뭇 다르게 진행됐을 것이다.

용역깡패까지 동원한 우격다짐으로 대량해고와 외주화를 강행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노사 간 전면전 양상으로 비화될 것을 잘 알 법한 이랜드그룹이 왜 이렇게 졸속적으로 중차대한 비정규직 문제를 홀대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홈에버 직무급제는 '평생비정규직 방안'

특히 정규직화 방안이랍시고 홈에버가 내놓은 ‘직무급제’에 이르면 할 말을 잃는다. 직무급제는 한 마디로 ‘평생비정규직 고착화 방안’이며 7월1일부터 시행된 ‘기간제법’의 차별시정제도를 피하기 위해 고안된 자본의 교묘한 술책이다. 이를 두고 정규직화 방안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우선 직무급제로 전환될 경우 임금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홈에버는 밝히지 않고 있다. 단지 관리자들만 볼 수 있는 이메일 공지에만 ‘직무에 따른 급여제도’로 별도 급여 테이블이 적용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직무급제가 정규직 전환을 의미한다면 별도의 급여 테이블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 정규직의 호봉을 그대로 적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직무급제로 전환될 경우 임금인상이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른 '직무급제'로 비정규 노동자를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더라도, 노동부는 그러한 무기계약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간주하여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차별시정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 임금을 그대로 유지하고 후생복지를 정규직과 동등하게 올려주지 않고도 직무급제로 전환하게 되면 손쉽게 차별시정을 피해갈 수 있다. 차별시정을 가장 핵심적인 입법 취지로 제정한 법을 악용해서 오히려 차별을 고착화하는 기막힌 일이 21세기 선진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체협약보다 못한 직무급제

게다가 홈에버는 비정규직 전원을 직무급제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근속 2년 이상 비정규직 1천100여명에 대해서만 직무급제 전환 자격을 주었다. 근속 2년 미만인 2천여여명의 계약직 노동자들은 생사여탈권을 쥔 회사의 선처만을 바랄 뿐 당장이라도 해고될 위험에 놓이게 된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홈에버에서만 400여명의 계약직 노동자들이 쫓겨났다. 근속 2년 이상인 경우에도 팀장과 지점장의 추천을 거쳐 전형 절차를 밟아야만 ‘직무급제’가 될 수 있다. 공동투쟁본부의 파업으로 이 문제가 쟁점화되자 회사가 뒤늦게 직무급제 전환자 수를 늘리긴 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썩은 동아줄을 내려 살릴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은 홈에버가 유통업체 최초의 정규직화 방안이라고 떠들썩하게 언론을 통해 홍보한 ‘직무급제’가 노조의 단체협약에도 한참 못 미치는 후진적인 방안이라는 사실이다.

이랜드일반노조의 단협에는 18개월 이상일 경우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해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노조에 가입하면 2년이 아니라 1년 6개월만 지나면 최소한 ‘직무급제’ 수준의 고용안정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미 단협에 명시되어 있는 비정규직 고용보장 조항보다 더 후퇴한 안을 가지고 대단한 정규직화 방안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이랜드그룹은 철면피 사기꾼이다.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자본부'장관

기만적인 홈에버의 ‘직무급제’ 수준의 고용안정 방안을 2006년에 이미 단협으로 쟁취한 이랜드일반노동조합의 올해 요구는 "회사가 오리발 내밀지 말고 제대로 차별 시정과 정규직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비정규직을 일시에 정규직화하는 것이 회사에 부담이 된다면 우선 2년 이상 비정규직부터 정규직화하고, 3개월 이상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고용보장 후 2년이 지나면 정규직화하라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상수 '노동부'장관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시정을 기만적으로 후퇴시킨 홈에버 직무급제와 같은 무기계약 방안을 변칙이지만 인정해야 한다고 얘기한 이상수 장관은 ‘자본부’장관이다.

그는 841만 비정규직, 그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569만 기간제 노동자수가 모자라서 더 늘리려고 혈안이 된 사람 같다. 적어도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외주화를 선택한 이랜드그룹의 기만적인 ‘직무급제’에 대해선 단호하게 질타해야 옳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공약하고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노무현 대통령의 전철을 밟으려 하는가. 이상수 장관은 지금 노동부 대국민 홍보용 책자 속에만 갇혀 있는 ‘2년 이상 정규직화’와 ‘차별시정’을 해방시켜 비정규 노동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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