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이 종이박스 깔고 앉아서 매장 운영을 중단시킨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오죽하면 식구들 끼니까지 미뤄놓고 이러고 있겠냐고요. 지렁이도 밟으면 뭐? ‘꿈틀’하잖아요. 동료들 해고되는 꼴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우리도 지금 꿈틀 하는 중입니다.”

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 1층 계산대 앞. 홈에버와 뉴코아 소속 노동자 700여명이 나흘째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 물건을 실어 나르던 철제 카트가 매장과 로비 사이를 가르는 ‘바리케이드’ 역할을 하고, 계산대 곳곳에 ‘비정규직 차별 철폐’, ‘외주화 중단’, ‘기만적인 직무급제 반대’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이 줄줄이 매달렸다. 비정규직법 시행 사흘째를 맞은 이날, 이랜드그룹 유통계열사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리를 보호한다던 법이 결국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매장 점거라는 이랜드 노동자들의 극단적 투쟁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아울렛매장인 뉴코아는 올초부터 매장 안에 계산용 PDA단말기를 들여놓기 시작했고, 정규직 계산원들을 타 부서로 발령했다. 노조의 반발이 잇달았지만, PDA 도입 계획을 되돌리기에는 노조가 힘이 약했다.

정규직 직원들을 타 부서로 이동시킨 뉴코아는 곧이어 전체 매장 계산업무의 외주화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회사측은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사직서를 강요했고, 근로계약서의 계약기간을 ‘수정’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벌이기도 했지만, 사측에 대한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홈에버에서는 지난 5월 용역직원 65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해 한국까르푸를 인수하며 막대한 자금을 끌어온 이랜드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용역직원 수백명의 생계를 외면했다.

용역직원에 대한 인원감축 작업을 마무리한 이랜드는 홈에버에 직접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계약해지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 직원이 우선 해고 대상이 됐고, 곧 이어 계약기간이 남은 비정규직에 대한 계약해지가 잇달았다. 전국 33개 홈에버 매장 안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약 3천500여명. 노조는 이중 현재까지 몇 명이 일자리를 잃었는지 집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비조합원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홈에버 분당 야탑점에서 근무하는 김아무개(42)씨는 “열심히 일해 온 주부사원들을 줄줄이 해고 하는 회사가 ‘기독교 기업’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며 이랜드그룹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나흘째 월드컵점에서 밤샘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그는 “까르푸 시절부터 회사를 지켜온 우리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며 “경찰에 끌려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농성장을 지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홈에버가 발표한 ‘직무급제’에 대해서도 “회사가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야탑점 계산원 박아무개(43)씨는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싶어서 저임금을 감수하고 홈에버에 입사했다”며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같은 경쟁업체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정규직 방침을 내놓고 있는 것만 봐도, 이랜드가 얼마나 악질 기업인지 알 수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농성이 장기화 되는 상황이 가슴 아프다는 이도 있다. 농성 중인 월드컵몰점에서 근무하는 서아무개(44)씨는 “야채 판매 업무를 해왔는데, 하루하루 시들어 가는 야채들을 내다버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회사가 ‘모든 조합원의 고용을 보장하겠다’던 약속만 지켰어도,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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