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파업이냐"라는 강한 포화를 맞으면서 15만 금속노조는 6월 말 파업으로 달려가고 있다. 적대적이고 관조적인 비판은 넘치지만,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면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건설적 논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15만 대산별'이라는 새 땅에 들어선 조직내부를 솔직히 털어놓고 싶다. 대산별의 시작이었던 작년 산별완성 대의원대회는 두 차례 모두 꼬박 밤을 새우는 장시간 회의였다. 최근 개최된 중앙집행위원회도 매번 밤을 새웠다. 왜 그럴까? 4만4천명의 기업단위에서부터 한 두 명인 노조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기존 4만명과 새로 가입한 10만명의 경험차이 또한 작지 않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더 이상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다가 필요할 때 만나는 관계가 아니다. 1사 1조직이라는 원칙에 따라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하나의 기업이면 하나의 조직이 되어야 한다.

이제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 기업지부와 지역지부,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가끔 만나는 이웃이 아니다. 한집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를 숨김없이 보여줄 수밖에 없다. 작은 어긋남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관계다. 경험과 감각, 언어의 차이를 안고서도 통합과 조화를 위해 수많은 논의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회의 그만하자"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면서도, 회의때마다 치열하게 밤을 새우는 것이다. 15만의 통일단결을 위해, 15만 산별노조라는 '새 땅'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호 부단한 소통을 통해 학습해야 한다.

선생 없는 배움

금속노조의 새로운 학습엔 선생이 없다. 서로가 선생이고 서로가 제자일 뿐이다. 기업별 노조의 간부들이 자동적으로 산별노조의 간부로 신뢰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조직운영과 교섭형태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별 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 시대의 정파조직도 순기능을 하지 못한다.

논의과정을 잘 들여다보자. 6월 FTA 총파업을 제안하고, 주도하는 것은 특정 정파가 아니다. 현대자동차지부부가 거칠게 제기하는 '파업에 대한 조합원의 피해의식' 앞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면서 당당하게 나서는 현장조직을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 4만 금속노조를 일찍이 경험한 지역지부와 그 간부들 또한 15만 산별노조의 해법을 온전히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누군가 선생을 자처하고 나선다면 '선언과 자임'은 가능하겠지만 인정받을 순 없을 것이다. 아래로부터 노동자의 분노를 모아 민주노조를 굳건하게 만들었던 '현장주의'도 이제는 다른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쏟아지는 '배부른 귀족노조'라는 폭격이 '현장내부의 피해의식'으로 되돌아오고, 그것이 현장의 여론으로 되살아나 논쟁을 유발하는 시스템이 펼쳐지고 있다. 산별노조가 원하는 것은 산별노조에 맞는 새로운 간부다. 새로운 현장조직이다. '정파의 과잉'이 문제가 아니라 산별노조에 맞는 '정파의 부재'가 학습의 장애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낡은 패턴과 새로운 행동

낡은 요소들과 새로운 요소들이 뒤엉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일 경우 혼돈의 시대로 규정될 것이다. 반면에 새로운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추적하는 경우 새로운 세상을 열기위한 과도기로 규정할 것이다.

이제 지구상에 '현대차노조'는 없다. 그러나 어찌된 것인지 전혀 다른 두 곳에서 현대차노조의 이름을 자꾸 되살려 내고 있다. 우선 '현대차노조 때리기'에 혈안이 된 보수언론들이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그것은 단지 '현대차노조'에 대한 공격으로 그치지 않는다. 결국에는 현대차 노사 모두에 대한 공격에 이른다는 것이 올해 초 투쟁에서 나타났다.

다른 한 곳은 노조 내부다. 현대차만 두들겨 자리에 앉히면 연쇄효과를 일으켜 상당수 사용자들이 산별중앙교섭에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차의 이름이 높아질수록 현대차지부는 귀족 노조라는 소나기 공격에 우산 없이 흠뻑 젖을 뿐이다. 현대차노조라는 이름이 사라져야 현대차지부 또한 생존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별노조 안에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다. 20년 세월을 넘어서 고령화를 걱정하는 조합원과 노숙한 정규직 조합원이 늘어나는 대공장이 있고, 이제 갓 출발해 노동3권도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규 영세사업장의 지회들이 있다. 80년대 구로공단과 21세기의 도시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전투는 "전진 앞으로"라는 깃발과 명령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통합해내는 끈질긴 소통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무슨 말이 많노? 됐나 됐다 아닌교?"는 낡은 패턴이다.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말'이 많아야 한다.

사용자도 함께 학습해야 한다 !

과거 2만을 포괄하는 금속사용자협의회가 확장해 금속노조에 대응하는 사용자단체가 새롭게 탄생하고 정착하기까지 사용자들 또한 규모, 경험, 문화, 언어의 차이를 안고 통합을 위한 소통의 과정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금속사용자들은 이 새로운 학습을 거부하고 있다. 상당수의 사용자들은 기업의 틀 안에서 조합원을 유혹하여 기업 내 노사담합을 추진한다. 금속노조의 출생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다.

몇몇 사용자들은 드물게 "기업 내 담합유지"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성공할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금속노조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 못한다면 일시적이고 달콤한 기업 내 담합구조는 조만간에 다시 공격받을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울산에서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를 극명하게 대비하면서 현대자동차를 두들겨 팬다. 그러나 조선산업의 노동과정과 일괄생산라인인 자동차산업의 노동과정은 다르다. 한 달 파업해도 다음달 두 배의 인력을 투입해 생산을 만회할 수 있는 조선산업과 한 두군데의 라인만 공격해도 전체에 영향을 받는 현대자동차를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어불성설이다.

자동차 산업은 몇 가지 부품을 덩어리로 생산해 조립하는 모듈화를 도입하고 있다. 부품결함이 생기면 미세한 부품 하나를 갈아치워 될 일이 아니다. 통째로 부품 덩어리를 손봐야 한다. 노사관계도 그와 비슷하다. 노사관계는 결국 덩어리로 나가야 하고 그것이 바로 산별노조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아직도 노동3권을 보장한 헌법을 무시하는 무노조 재벌사들이 노조 죽이기, 산별노조 거부하기를 선동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감지한다. 무리한 대응은 '노조 죽이기'가 아니라 한국의 중요한 산업 자체를 죽이는 꼴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래의 노사관계는 산별노사관계에 달려 있음을 빨리 인지하고 산별노사관계를 위한 대장정, 학습의 과정에 참여하기를 권고할 뿐이다.

학습과정에 폭탄을 던지지 말라.

선생도 없고 교과서도 없는 학습이 약간 혼동스럽다고 해서 여기에 폭탄을 던지는 테러를 자행한다면 학습은 중단될 것이며 미래를 위한 전진은 사라질 것이다.

가장 치열한 첫 번째 학습의 장이 6월 말 FTA,반대 총파업을 둘러싼 시기라고 생각한다. 20년 전 민주항쟁,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민주노조운동의 탄생과 생존방식을 결정했다면, 산별노조가 어떻게 생존가능하고 어떤 방법으로 나가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복합적인 노조내부논의, 6월 말의 행동, 결과에 대한 평가로 시작될 것이다.

이미 보수언론, 강경우익들의 테러적인 공격들이 시작되고 있다. 노조 자체를 말살하려는 기세로 달려들어 폭탄을 던진다면 뻔한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보수언론과 사측, 시민사회, 국가 모두가 폭탄을 던지는 테러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테러를 통해 파생하는 것은 또 다른 반테러일 뿐이다. 테러가 아닌 학습이 필요하고 그것만이 20년 전의 민주화를 21세기의 오늘에 맞게 실천하는 길이 될 것이다.

공동의 학습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가 다가올 것이다. 불균등하고 우연적인 노사관계에서 더 규범적이고 예측 가능한 노사관계가 열릴 것이다. 내부의 이권만 챙기는 것이 아닌 노동조합의 외부를 향한 대화가 열릴 것이다. 교섭비용을 트집잡는 시대를 넘어 파업의 양보다 효율을 추구하는 행동이 시작될 것이다. 단위기업의 비용증대가 아니라 사회적 비용분담의 시대가 올 것이다. 세계화로 극히 불안정한 개별기업의 조건에 좌우되는 노동자들의 삶이 사회적 방어망을 통해 해결되는 세계가 열릴 것이다. 산업의 양극화로 인한 노동의 양극화 시대가 아닌 균형을 향해 나가는 것을 꿈꾼다면 우리의 학습은 그것을 반드시 가져올 것이라 확신한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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