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를 비롯해 은행의 대형화․겸업화, 금융허브 정책, 자본시장통합법 등은 금융산업의 중심을 은행업에서 자본시장 비즈니스로 옮기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전통적 은행업의 일자리 축소가 예상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금융경제연구소는 23일 '한미FTA가 금융산업 및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내부 보고서에서 "여수신 업무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은행업 부문의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FTA 체결로 금융장벽이 무너질 경우, 금융투자 및 보험 상품까지 감당해야 되는 은행원들의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이와 같이 지적했다.

연구소가 한미FTA 체결 이후 '은행노동자 위기'를 예상한 것은, 정보통신 기술이 노동력을 계속해 대체하고 있는 상황과 국내금융시장이 이미 포화에 이르렀다는 지적과 함께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 선택 폭이 좁다 = 연구소는 금융권 구조조정 이후 국내은행이 대형화됐으나, 대형화된 국내은행의 덩치에 비해 은행업만 영위하기에는 국내시장이 너무 좁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은행 간 경쟁은 과열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전통적 은행업인 여수신업을 가지고 국내은행이 해외시장에 진출하기에는, 영업력 측면에서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내은행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국내 소매시장을 놓고 피터지게 싸우면서 자본시장 비즈니스를 개척해 나가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현재 은행권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이 심각한 수위에 이르러, 현장에서 퇴근시간 정상화, 근무시간 정상화를 금융노조에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연구소는 진단했다.

◇ 은행원 수, 계속 줄어들 것이다 = 연구소는 또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업은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중시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동화로 노동력을 대체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이런 능력까지 박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자본에 열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ATM기가 창구 텔러를 내쫓고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은행원의 대출심사 기능을 대체하고 있는 추세가 더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자본주의의 역사는 노동자들의 숙련을 자본 측이 박탈해 온 과정이었으나, 금융업은 특정기업이나 개인에 대해 대출여부를 심사하고 판단하는 등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이 있었다"며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본지점에서 행하던 은행의 후선지원 기능이 공간적으로 떨어진 해외에서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설명했다.

◇ 무자비한 인력구조조정도 예상돼 = 그럼에도 은행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이 현재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은행이 2000년대 이후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으로 연구소는 분석했다. 그러나 현재 은행들의 수익구조가 이자수익, 임대료, 유가증권처분이익 등 영업외 수익이 지나치게 많은 불안한 구조라고 연구소는 진단했다. 연구소는 만약 한미FTA, 자본시장통합법 등 금융산업 변동과 금융장벽이 해체되는 과정 속에서 국내 은행이 명확한 수익원을 찾지 못하거나, 특정 은행들이 경쟁에서 밀려나 불안한 경쟁 균형이 무너질 경우, 무자비한 인력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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