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기훈 기자>

 
 
 
 
 
 
 
 
 
 
 
 

“대부분이 갈 곳 없는 노숙자거나 용역사무실에 나가서 하루 일이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그냥 쉬고…. 그냥 하루하루 살던 사람들이지요.”

새벽 화재 사태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말하는 그의 입술은 아직까지도 부르르 떨렸다. 불탄 건물 근처에 앉아 멀뚱히 화재현장을 바라보던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살았던 김아무개씨. 23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속칭 ‘쪽방촌’에 덮친 불길은 그의 목숨도 앗아갈 수도 있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기자들이 불났다니까 떼거리로 몰려드네”하며 말을 잇는 그는 평소에는 사회적 냉대에 시달리다 이같은 사건이 벌어지자 연이어 찾아오는 기자들과 그들의 질문이 몹시도 서운하고 귀찮다는 듯 이름조차 밝히길 꺼려했다. 이날 화재는 1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5명의 중경상에 빠트렸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마음까지도 다치게 했다.

이날 새벽에 ‘쪽방촌’에 덮친 화재로 4층짜리 쪽방건물 3층이 전소됐다. 1개는 층에 남성 두 명이 누우면 가득 찰만한 1평 남짓한 방 10개가 들어차 있었다. 하루 방세 7천원. 불법 개조된 방들이긴 하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돈 없는 노숙자들과 일용직 노동자들의 묵을 수 있는 유일한 방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불법 개조된 건물인 만큼 소방장비 설치는 물론 비상구 하나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피해는 더 컸다. 18분만에 불이 진화된 것 치고는.

이날 오전 불이 나자 소방차 28대와 소방대원 106명이 출동해 18분만에 진화했다. 불은 3층 출구 계단 쪽 복도에서 시작돼 바람을 타고 차례차례 옆방을 덮쳤다고 경찰은 전했다. 바로 옆방에 묵었던 50대 한 남성은 연기에 질식해 숨졌고 맞은 편 방의 80대 노인은 전신 4도의 화상을 입었다. 그 외 3층에 살던 이들은 비상문도 없어 불길을 뚫고 계단으로 탈출하거나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전시 4도의 화상을 입은 80대 노인을 비롯한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화재는 기름보일러 파이프가 터지면서 시작된 것으로 경찰은 일단 파악했다. 그러나 화재 초기 ‘복도에서 기름 냄새를 맡았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있었던 만큼 방화 가능성을 포함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것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한편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쪽방촌을 비롯해 컨테이너하우스, 주거용 비닐하우스 등 화재에 취약한 빈민층 거주 시설은 2006년 기준으로 전국에 5천300여곳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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