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경제팀의 서투르고 미숙한 정책 운용이 우리 경제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사려깊지 못한 발언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는가 하면 성과를 의식한 조급한 ‘한건주의’로 무리수를 남발,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스스로 실추시키고 있다.

최근 잇따른 졸속·미숙 행정의 대표적 사례는 무엇보다 은행 합병건이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7일 우량은행간 합병 가능성을 시사한데 이어 12일 “국민과 주택은행이 합병논의를 진행중”임을 공식 시인했다. 그 때까지 국민주택 두 은행의 은행장은 합병설을 부인하는 상황이었다.

이 위원장의 「앞서 가는」 발언으로 국민은행 노조가 곧바로 합병반대 농성에 돌입했고 조합원의 자해행위 등으로 사태가 악화되면서 결국 합병 논의를 중단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진념 재경부 장관은 13일 “우량은행 간 합병에 정부가 관여하지 않겠다”며 뒤늦게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이근영 위원장은 12일 이용득 금융노련 위원장과 만나 “우량은행 간 합병을 추진하더라도 대량 해고는 없을 것”이라며 정부의 ‘관여’를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을 해 시장으로부터 ‘정부의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샀다.

한빛·외환은행 간의 지주회사 통합 문제도 마찬가지. 경제팀 간의 의견 대립과 설익은 내용을 공개하는 경솔한 대응으로 일을 그르친 사례다.

재정경제부는 정부 주도의 금융지주회사를 당초대로 한빛은행과 지방은행들만 합치자고 주장한 반면, 금감위는 국제금융이 강한 외환은행을 금융지주회사에 포함시키자고 맞서 논란을 벌였다. 이같은 부처간 이견에도 불구하고 금감위는 “대주주인 독일 코메르츠은행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외환은행의 지주회사 참여를 기정사실화했으나, 13일 코메르츠측이 참여를 유보키로 결정함으로써 통합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는 “은행 합병이나 지주회사 방식의 통합의 시너지 효과는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라면서 “정부가 당장 연말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의식해 너무 조급해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근 연쇄 예금인출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신용금고 문제도 정부 당국자의 경솔한 실언에서 촉발됐다.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2일“신용금고 사고가 1~2곳 더 있을 것”이라고 언급, 가뜩이나 불안한 금고업계를 충격에 몰아넣었으며, 연쇄적인 영업정지 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들이다.

또한 이후에 나온 신용금고 대책도 재경부, 금감위·금감원, 예금보험공사(예보)가 서로 손발이 안맞아 실효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일 금감원이 1차 금고대책을 발표한데 이어 이틀 만에 재경부가 다시 비슷한 내용의 대책을 발표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재경부는 “금고가 문을 닫으면 재산실사를 거쳐 15일을 전후해 최고 2000만원까지 가지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정작 집행기관인 예보측에선 “재산실사에 최소한 2~3개월이 걸린다”고 반발해 서민 고객들의 애를 태웠다.

한양대 김대식 교수는 “최근 경제팀의 정책운용이 일관성이 없고 시장에서 신뢰를 받지 못해 국민 불안심리를 더욱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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