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8만명이라는 비정규직 규모는, 정부 통계일 뿐 노사정 합의안 기준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를 노사정 합의안을 근거로 한 것이라고 쓰면서 학계나 언론조차도 관행적으로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정부가 집계한 비정규직 규모통계를 노사정 합의안을 기준으로 했다고 표기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002년 당시 비정규직 규모통계에 대한 논의에 노동계 대표로 참여했던 한국노총은 “노사정이 합의한 안에 따른 통계수치가 사실상 없음에도 정부가 집계한 통계가 마치 이를 근거로 한 것처럼 둔갑돼 있다”며 “이를 노사정위원회에서 재확인하고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으나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15일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에는 당시 논의에 참여했던 공익위원과 노사정위 전문위원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 5년간 이같은 표기를 써 왔다. 심지어는 OECD 등 국제단체에도 정부의 통계가 노사정이 합의한 기준에 따른 것으로 보고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재경부도 지난 2005년 공식적인 자료를 통해 비정규직 규모에 대한 혼란이 있다며 노사정이 합의한 기준을 사용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학계는 물론 언론, 심지어는 다른 노동단체들까지 이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사정과 공익위원들은 2002년 7월 노사정위원회 비정규특위에서 “비정규 근로자는 1차적으로 고용형태에 의해 정의되는 것으로 △한시적 근로자 또는 기간제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파견·용역·호출 등의 형태로 종사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해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이들을 ‘취약근로자’로 파악한다”고 정의했다.

이같은 합의를 근거로 노동부는 한시적·기간제·단시간·비전형 노동자만을 비정규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른 비정규직 규모는 지난 2005년 8월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의 36.6%.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장 등 노동계가 파악하고 있는 비정규직 규모인 56.1%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전자를 노사정 합의기준, 후자는 노동계 기준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논의에 참여했던 노진귀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은 “그 당시 합의했던 비정규 정의에 대해서는 단지 예시한 4가지 고용형태에 국한한다는 것이 아니었다”며 “특히 통계청의 조사방식이 고용형태별로 정확히 나눠지지 않는 만큼 사실상 노사정이 합의한 안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노 원장은 “‘정부의 통계’는 ‘정부의 통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당시 비정규특위 공익위원을 맡았던 어수봉 한국기술대 교수도 “합의문의 취지는 비정규직을 고용형태별로 구분하자는 것이었지 이에 따른 통계방식까지 합의한 것은 아니다”라며 “노동부가 자신들이 낸 통계를 노사정위 합의에 근거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를 거들었다. 아울러 “노동부가 발표하는 것이 마치 노사정 모두가 합의한 것처럼 굳어져서 지금 이렇게 쓰이고 있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노사정위에서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김호근 당시 비정규특위 전문위원은 “합의문 중 ‘파견·용역·호출 등’에서 ‘등’은 특수고용직 등 더 많은 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그는 “취약계층에 분류돼 있는 장기임시직의 고용형태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고 이같은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설명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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