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가 취재결과 확인한 ‘기간제및단시간보호등에관한법률 시행령’(안)은 여전히 휘발성이 강했다. 문제는 ‘2년을 초과해 기간제를 사용해도 된다’는 기간제법 적용 예외조항이었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과는 달리 부처협의 과정에서 교사와 간호사가 빠지기는 했지만 해당되는 직종은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예상보다 훨씬 넓다.

포함을 두고 오류가 제기될 만한 내용도 있고,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일자리 창출 대책의 거품을 빼는 조항도 있다. 양극화를 좁히겠다고 제정했던 법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됐다. 가뜩이나 기간제법이 일본 제도에서 본 따온 것인데 일본은 예외허용 범위를 계속 넓히고, 한국도 이를 확장하는 모양새다. 애초 기간제법 취지와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푸른 빛은 쪽빛에서 나왔으나···

지난해 9월 국제노동법연구원이 노동부의 위탁을 받아 작성한 ‘기간제근로 기간제한의 예외에 관한 연구’ 최종보고서는 기간제법을 일본에서 따 왔다고 밝히고 있다. 전문직을 기간제한에서 제외하는 특례를 두고 있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드문데 바로 일본이 이런 내용의 입법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은 지난 98년 노동기준법을 개정하면서 기간제한에 대해 전문지식 등의 예외를 넣었는데 처음에는 엄격했던 예외조항이 2002년과 2003년에 대폭 확대됐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나라의 기간제법에는 일본에서 가장 최근에 확대한 내용을 인용한데다 거기에 새로운 예외조항이 더 들어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득수준을 전문적 기술의 근거로 댄 점도 똑 같다. 하지만 이번에 제출된 기간제법 시행령안은 오히려 일본기준보다 훨씬 강력하다. 정부 용역보고서에도 “(일본 노동기준법) 특례 대상이 확대됨으로써 (법의) 기능이 상당히 약화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우리의 기간제법 시행령은 이를 더 넓힌 것이다.

기간제법 예외조항인 자격증 소지자를 일본과 비교해보면 이는 확연해진다. 일본은 공인회계사, 의사 등 12개 업종을 나열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기간제법 시행령에는 무려 34개 업종이 나열돼 있다. 당연히 벌써부터 소란이 일고 있다. 항공기 조종사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시행령에 포함되는 순간 새로 뽑히는 조종사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고 이는 심각한 안전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한 관계자는 “부기장 평가제 등으로 정규직도 문제가 생겨도 바른 말을 못하는데 비정규직은 오죽하겠느냐”며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했다.

지난달 28일 배제대 조임영 교수는 한국노사관계학회 등이 연 토론회에서 “전문직 특례에 포함되려면 고용 불안정, 종속성의 심화, 근로조건의 저하, 노동3권 행사의 제약, 퇴직의 자유제한 등과 같은 남용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이 요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기간제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고 합리적 근거없는 차별로 법앞의 평등이라는 헌법 기본원리에도 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서비스 ‘나쁜’ 일자리 창출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복지정책·실업대책 등에 의하여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 기간제법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예외 조항에 대해 “취로사업·자활사업·공공근로사업 등 정부시책사업은 참여자들의 생활안정, 취업기회 제공 등이 주된 목적으로 일반적인 근로관계와 차이가 있다”며 “예산을 통해 시행되므로 사업의 성격상 사업기간에 맞추어 기간제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에 담긴 내용은 정부시책사업을 뛰어 넘는 것으로 보인다. 시행령 안에서 예외조항으로 밝히고 있는 ‘고용정책기본법’과 ‘고용보험법’에 의한 일자리 제공이나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의한 일자리는 정부의 고용대책과 맞물려 있다. 당연히 여기에 근거한 국가, 지방자치단체나 위탁자에 의한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월 사람입국 일자리위원회가 보고한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전략에서는 그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단기·저임금 위주의 지원으로 양질의 고용창출이 미흡했고 자립지향형 사업과 취약계층 지원사업이 혼재됐다”고 분석됐다. 그리고 9월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보고회’에서 정부는 “2010년까지 매년 20만개 씩 사회서비스 일자리 80만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당장 기간제법에서 제외되면 현재 사회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적어지고, 앞으로 새 일자리 창출에 따라 진입할 노동자들 역시 기간제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부처에서 사회적 일자리라며 사용한 인력은 13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공공노조 사회연대본부 관계자는 “정부의 일자리 대책 자체가 총체적인 부실 덩어리”라며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정부가 나서 축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울 좋은 ‘박사’…비정규직 수두룩

기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커녕 있던 정규직도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는 곳도 있다. 그것도 ‘박사’들이 수두룩하다는 공공연구기관에서다. 전문지식·기술 소지자라며 ‘박사학위를 갖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자’가 기간제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됐지만 허울 좋은 박사들의 처우는 ‘박사급’이 아니다.

실제 공공운수연맹 공공연구노조가 올해 초 27개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비정규직 규모를 조사했더니 2만명 가운데 9천500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열에 다섯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이 가운데 연구인력은 7천여명에 달했다. 이들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60~7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200만원 안팎의 급여를 받고 연수를 하고 있는 박사 수만 14개 기관에 641명이 있었다. 이렇게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많은 이유는 지난 96년에 연구과제중심 운영체제(PBS·project-based system)가 도입된 뒤 연구기관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썼기 때문이라고 했다.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공공노조는 이를 두고 “시행령이 적용되면 정규직 연구원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전문직으로 분류된 방과후 교사 역시 신분 불안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한 초등학교 방과후 교사가 서울시에서 서울시교육청으로 방과후 교실이 이관되면서 해고통보를 받기도 했다. 학교는 이 교사에게 공무원 복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해고할 수 있다는 각서를 쓰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7년 동안 근무했지만 이 교사는 사업이관과 함께 그동안 호봉이 인정되지 않아 월 급여로 120만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좋은 일자리 보고회’에서 방과후 서비스에 1만3천명을 더 충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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