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봄이 아닌 이 봄날, 미친 봄바람만이 노동자의 가슴에 휩쓸고 가는 이 무심한 계절에 작은 희망의 빛에 흔들려 이 글을 쓴다.

지난 4.5. 대구고등법원(형사 1부)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 의미있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 판결에서 해당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하고 특히 단체교섭 당사자로서 사용자 지위가 있다고 하였다.

이 사건은 노조의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 등에 따라 전임비 수령 등을 공갈죄로 기소하여 크게 언론에 보도된 대구경북건설노동조합에 관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노조의 교섭, 협약, 그리고 그에 따른 전임비 수령 등을 공갈죄로 처벌한다는 것인가.

대구지역 건설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로 조직된 대구경북건설노동조합이 대구·경북 지역에서 아파트를 신축하는 롯데건설(주) 등 37개 건설현장의 원청업체 및 전문건설업체 현장소장들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단체협약에 따라 노조는 2003. 1.부터 2005. 12.경까지 건설현장의 규모에 따라 책정된 전임비 총액 218,400,000원(매월 25만원에서 90만원 가량) 지급받아 건물임대료를 비롯한 노동조합 운영비, 전임자 임금 등으로 사용하였다. 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단체협약이 정한 바에 따라 전임비 등을 받은 것이다.

단체협약상 전임자 급여지급규정을 두는 것은 어느 노조에나 있는 것인데 그럼에도 대구지검 공안부는 원청업체는 건설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의 직접 고용자가 아니므로 단체교섭의 상대방이 아닌데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여 단체협약 체결하고 이에 따라 원청업체로부터 전임비를 지급받은 것은 공갈죄에 해당한다고 수사하여 노동조합 위원장 등을 기소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구지방법원(1심)은 공갈죄 부분에 대하여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 사건을 담당한 금속노조 법률원(담당변호사 정기호)은 원청업체의 사용자지위를 주장하며 무죄를 다투었다.

항소심인 대구고등법원은 지난 4.5. 원청업체에 대하여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라 함)상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당사자로 인정하고 대구지방법원 판결을 파기하고 공갈죄에 대하여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날 판결에서 대구고등법원은, 근로기준법상 순차 도급사업에서 직상수급인의 귀책사유로 하수급인의 임금 미지급시 직상수급인의 연대 책임 규정(제43조 제1항), 재해보상에서 원수급인의 사용자 간주 규정(제93조 제1항),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원청)업체 근로자와 수급(하청)업체 근로자가 동일한 장소에서 작업할 때 도급업체 사업주의 안전·보건관리 등의 조치의무 규정(제29조) 등과 노조법상 근로자의 단결권 보호 등을 위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개념보다 확대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나아가 단체교섭 당사자로서 사용자는 근로계약관계의 사용자가 아니라도 교섭대상의 근로조건에 구체적·실질적 영향력 내지 지배력을 미치는 자도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고 하였다.

대구고등법원은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형식적인 근로계약을 맺지 아니한 원청업체들도 일용근로자들과 사이에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를 맺고 있는 당사자로서 전문건설업체 등 하수급업체와 중첩적으로 사용자로서의 지위에 있다고 인정된다고 하였다.

특히 법률상 원청업체의 책임이 인정되는 임금지급에 대한 연대책임, 산업안전·보건관리에 관한 조치의무와 산재보험의 적용 등에 대한 부분과 원청업체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최소한 원청업체에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번 판결은 직접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원청업체가 실질적·구체적 영향력 내지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하청업체와 중첩적으로 사용자로서의 지위에 있고, 원청업체가 최소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원청업체에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것이다.

특히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원청업체의 책임규정을 근거로 하여 그 부분에 대한 단체교섭의 사용자로 인정한 것은 지금까지 어떠한 판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노조법상 근로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보다 확대한 개념으로 법원이 판시하면서 단순히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사용자 인정을 넘어 단체교섭의 사용자, 노조법상 사용자로 판결로 인정한 것은 획기적인 것이다.

원청업체라도 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 즉 노무 제공의 모습, 작업 환경, 근무시간 배정 등에 대해 구체적·실질적 영향력 내지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우 그 부분에 있어서는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당사자로서 지위를 인정한 것은 이 판결을 지금까지 비정규직과 관련하여 선고된 판결 중 가장 중요한 위치로 부여하고 말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미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사용자로 원청업체도 해당한다고 인정한 일부 하급심판결이 나온 바 있었다(현대중공업 부당노동행위사건). 가처분사건에서는 근로관계의 실질을 주목하여 원청업체의 사용자 지위를 인정하여 단체교섭의 사용자 지위를 인정한 하급심판결도 있었다(KMI 가처분결정). 그렇지만 이번 사안은 법원의 판결로 원청업체에 대해 노조법상 사용자지위, 특히 단체교섭 당사자로 사용자지위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번 판결을 바로 모든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조법상 사용자지위를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건설일용직 하청노동자의 특성도 일부 고려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번 판결의 의미가 축소될 수 없다.

이번 판결에서 원청업체에 대해 단체교섭의 사용자로 인정한 근거들은 다른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얼마든지 해당할 수 있다. 법상 원청업체의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의무 내지 책임 규정에 근거한 것은 원청업체에 하청업체 노동자의 근로관계에 관한 일정한 의무가 있는 경우 그 부분에 대한 단체교섭의 사용자로서 지위가 인정될 수 있다는 데까지 확장될 수 있다.

즉 원청업체 노조가 단체협약을 통해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관한 일정한 의무를 지우고 있다면 이를 근거로 하청업체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관한 단체교섭의 사용자로서 지위가 있다는 것으로 얼마든지 그 법리를 전개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사내하청업체 등에 있어서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의 근로조건, 즉 노무 제공의 모습, 작업 환경, 근무시간 배정 등에 대해 구체적·실질적 영향력 내지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판결대로라면 이 부분에 대하여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와 함께 중첩적으로 단체교섭 당사자로서 단체교섭에 응하여야 한다. 임금, 근로시간, 휴가·휴게 시간 등에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원청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판결이라고 할 것이다. 노동자를 이용하여 실질적으로 사업을 하면서도 근로관계상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탈법적으로 근로계약이 아닌 형식으로 도주한 자본에게는 이번 판결은 두렵고 저주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근로를 제공하면서도 근로관계상의 권리, 즉 노동법상 각종 보호로부터 배제되었던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이번 판결은 새로운 희망과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의 법리가 대법원에서 유지될 것인지, 이를 통해 이번 판결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에 있어서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직까지는 우리의 소망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망을 벼리는 일은 노동자와 함께 하는 길 위에 선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등 법률활동가에게 주어진 것이다. 노동의 봄이 오는 그날까지 시지프스의 노동이지만 가야할 길이기에.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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