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직 보호입법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 정부가 4월말 입법예고, 6월말 국회제출을 전제로 노사정TF 구성을 제안했지만 경영계가 참여 거부로 특고입법 ‘힘 빼기’에 나서는 등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하지만 이미 국회에는 3개의 의원안이 상정돼있고 정부안 제출도 앞두고 있으니 국회에서 조속히 논의에 착수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번이 특수고용직 보호입법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까지 말한다. 그만큼 특수고용직 당사자들에게는 절박한 시기로 이들은 조속한 입법화를 촉구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앞으로 모두 3회에 걸쳐 특수고용직 입법과 관련한 논의를 살펴봤다.         편집자


1. 5년간 논의, 이젠 결실내자
2. 팽팽하게 맞선 노사정 입장
3. 특수고용직 입법방향, 이렇게 하자


지난 수년간 기다려온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 보호입법 논의가 아직도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특수고용직들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믿고 있다. 지난 2000년 처음 ‘근로자에 준하는 자’라는 개념을 신설한다는 노동법적 보호입법 논의가 나온 이래 끊임없이 정부의 입법방향이 후퇴해왔다고 보고 있다. 그나마 참여정부 하에서 입법하지 못하면 차기정권 하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쉽지도 않을뿐더러 다시 수년 동안 특고종사자들은 사회정책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그대로 방치돼야 하기 때문이다.

특수고용직들의 한숨 “우리도 노동자”

“퀵서비스 사업주는 우천시 결근하면 하루 3만원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또 3일간 무단결근할 때는 이유불문 퇴사시킵니다. 이 같은 노비문서와 같은 근로계약서를 맺고 있는데도 사용종속성이 떨어진다고요? 법원에서도 2차례 퀵서비스종사자가 노동자라는 판결도 있었습니다.”(퀵서비스노조 위원장)

“골프 쳐본 사람들은 압니다. 골프장경기보조원(캐디)의 출퇴근 시간을 말입니다. 배차시간에 따라 근무시간이 정해지는 버스기사도 근로자인데 캐디와 다른 점이 뭐란 말입니까. 근로소득세요? 우리도 내고 싶은데 안 걷어가서 못 내는 것뿐입니다.”(88CC분회 조합원)

“전 87년부터 레미콘을 받았어요. 수입이 많아서 독립한 것은 아닙니다. 물량이 감소해서 5~6년 된 차를 우리한테 준 거죠. 받지 않으면 그만 두라고 해서 받은 겁니다. 퇴직금 내고 받은 거죠. 레미콘 노동자들이 복귀시간을 자의적으로 쓴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GPS로 차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압니다. 우리들은 늘 감시당하고 있죠.”(레미콘 조합원)

“89년부터 대형트레일러를 모는 ㅅ기업에 입사했어요. 3년 정도 근무하던 어느 날 배차과장이 절 부르더니 이 차를 받으면 수입도 낫다, 퇴직금이랑 합치면 이 차를 분양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는 수 없이 도장을 찍었는데요. 그 뒤에 정규직이 대거 구조조정 당했지요. 차 가격이 1억3천360만원입니다. 한 달에 270만원씩 할부로 들어가고 있어요.”(화물연대 조합원)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다”

특수고용직들은 한숨 속에서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말 특수고용직 보호입법을 위한 노사정TF를 제안하면서 입법논의가 시작되는가 싶었으나 현재 경영계의 참여 거부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최근 특수고용직대책회의를 통해 4월 국회서 (계류된) 법안이 논의되도록 하고 6월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하는 투쟁계획을 상정하고 있다. 물론 투쟁에는 특수고용직 당사자들이 선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 이상 노사정TF 구성을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노사정TF 참여 결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칫 입법지연이라는 발목이 잡힐까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경영계가 계속 거부하는 상황에서 노사정TF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이현숙 특고대표자회의 부대표의 말이다.<인터뷰기사 참조> 이러한 얘기는 특수고용직노조의 전반적인 정서다.

“지난달 인권위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지만 간병인도 노동자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생계를 잇기 위해 일하고 있고 병원이란 작업장도 분명한데 왜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특수고용직 보호입법을 위해 저희 역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유일한 간병인 노조인 서울대병원간병인분회 정금자 분회장은 파업이 쉽지 않은 어려운 와중에서도 최대한 할 수 있는 투쟁을 고민하고 있다.

특수고용직노조 “갈라치기는 안 된다”

정부안 방향에 대해 특수고용직 당사자들의 가장 큰 우려는 특수고용직을 직군별로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특수고용직 입법투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현숙 부대표는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특수고용직 논의돼온 것을 보면 준근로자에서 유사근로자로, 그리고 또 준근로자로 이야기하면서, 일부는 노동자로 인정되지만 나머지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식으로 지금도 부분적으로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동안 입법논의 속에서 선발주자(보험설계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레미콘기사, 학습지교사)와 후발주자(화물, 덤프, 기타 직군)간 갈라치기도 심각하다는 주장이다.

한 산별연맹 관계자는 “정부가 보호제도의 틀도 직군별로 일부는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대다수는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분리해오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고용형태가 느슨하다고 여기는 일부 직군의 경우 열심히 싸워도 종국에는 노동자로 인정 못 받을 것을 우려하는 정서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정부가 ‘노동자로 간주’하겠다는 골프장경기보조원의 경우 미묘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여성노조 88CC분회 김은숙 부분회장은 “정부는 캐디에 대해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입법방향을 밝히고 있어 우리로서는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며 “그러나 전체가 함께 해왔던 특수고용직 투쟁이 단체 2권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우린 정부안을 지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특수고용직 보호입법 6월 총력투쟁

민주노총은 오는 22일 4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본격적인 특수고용직 입법투쟁에 나선다.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부가 말하는 노조법 적용을 배제한 채 단체2권을 보장하는 특별법 형식의 방향은 일련의 입법논의의 일관성이 없다”며 “이미 3개의 의원입법안이 상정돼있는 상태에서 총연맹과 각 산별연맹, 특수고용직노조는 여러 형태의 대국회 압박투쟁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정부와 국회가 입법의지가 없음을 지적하면서 노동3권 보장을 위한 4~6월 강력한 총력투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직접 환경노동위 위원들을 찾아가 적극적인 입법활동을 촉구하는 한편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등에 나서기도 할 예정이다.

이에 맞춰 특수고용직노조들도 각 단위에 맞는 투쟁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 특고대표자회의로 조직화된 단위는 보험설계사, 레미콘, 화물, 덤프, 애니메이션, 학습지교사, 퀵서비스, 간병인, 골프장경기보조원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동력은 1만2천 조직의 화물과 1만4천 조직의 덤프, 800 조직의 레미콘. 결국 이 단위들이 움직여야 특수고용직 입법투쟁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오랫동안 특수고용직 투쟁을 해온 단위들도 6월 총력투쟁에 적극적인 결합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노동기본권과 생존권 투쟁 병행

현재 관건은 화물연대. 가장 위력적인 조직력과 영향력을 자랑하는 화물연대가 이번 특수고용직 입법투쟁에서 파업 돌입 여부 등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화물연대는 9일 임원선거가 갓 끝난 상태로 당선확정공고가 되는 오는 15일 이후에야 특수고용직 투쟁계획이 구체적으로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물연대는 그동안 ‘노동3권 보장’이란 기존 입장을 갖고 온 상태에서 4월말5월초께 정기대의원대회를 열어 파업 여부를 포함한 구체적 투쟁계획을 결정한다. 현재로선 총파업 돌입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예년과 같은 파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

심상진 화물연대 사무국장은 “사실 6월을 넘기면 특수고용직 보호입법이 힘들어질 것이란 전망을 하고 있다”며 “지난해 12월 파업에 이어 현재 2단계 투쟁계획도 마련된 상태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투쟁 시기와 방법, 강도, 기간 등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화물연대는 현재 국회 건설교통위에 계류돼있는 표준요율제와 주선료상한제를 골자로 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 역시 표류하고 있다며 “노동기본권과 운수사업법 투쟁을 결합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덤프연대는 이미 조합원의 투쟁결의를 모은 상태다. 김금철 덤프연대 의장은 “우리는 지난해 하반기 대의원대회에서 이미 투쟁을 결의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도 이를 확인했다”며 “이미 5~6년 동안 특수고용직 투쟁이 진행됐고 이미 의원입법도 발의된 상태고 정부도 입법을 준비 중이니 상반기 투쟁에 올인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이현숙 특수고용대표자회의 부대표
“4월 국회에서 입법논의 시작해야”
그동안 민주노총에서 특수고용직 논의는 당사자 모임인 특수고용대표자회의에서 주도해왔다. 그러나 박대규 대표(건설노조 건설기계지부장)가 지난해 교섭과정서 노사충돌로 최근 구속됨에 따라 이현숙 부대표(학습지노조 위원장)가 특수고용대표자회의를 이끌고 있다.
앞으로 특수고용직 보호입법을 위한 특수고용대표자회의의 계획을 들어봤다.
 


- 정부가 제안한 노사정TF가 경영계의 참여 거부로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노사정TF 참여 결정은 쉽지 않았다. 노동계는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는 반면 경영계는 노동3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정부는 중간입장에서 준근로자 개념을 도입한다는 것으로 의견일치가 쉽지 않다고 봤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정TF가 자칫 (입법지연이란)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노동부가 4월말 입법예고, 6월말 국회제출을 약속해서 참여를 결정했으나 경영계의 거부로 노사정TF가 구성되지 못했다. (이제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본다.”
 


- 정부는 준근로자 개념 도입과 특별법 형태로 단체2권 보장, 간주노동자 규정을 두는 방향으로 입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정부안을 수용할 수 없다. 그동안 정부의 입법방향은 계속 후퇴해온 것이 사실이다. 임시방편일 뿐 특수고용직 보호대책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온전한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단체로 규정하는 방식은 맞지 않다. 또한 직군별로 갈라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 그렇다면 노사정TF 구성과 상관없이 입법투쟁에 나서겠다는 것인가.
 

“그렇다. 현재 중요한 것은 국회에서 법안이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국회에는 특수고용직 보호법안이 3개나 제출돼있는 상황이다.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나 정부안을 내야 논의할 수 있다고 정부와 국회가 서로 책임을 넘기고 있다. 이제 4월 국회에서 입법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인 우리의 목표다.”
 


-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가.
 

“오는 6월을 넘기면 특수고용직 입법논의는 사장될 수 있다. 지난 수년을 기다려왔다. 절박하다. 다음주 민주노총 차원에서 특수고용직 보호입법 투쟁계획을 선포하는 한편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을 포함해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을 면담, ‘법안을 사장시키지 말고 적극 논의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또한 정부의 의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입법투쟁의 근간은 결국 노동진영의 투쟁력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일차적으로 특수고용직 당사자들의 투쟁이 중요하다. 올해는 대통령선거, 한미FTA 등의 굵직한 정치상황으로 국회 일정이 유명무실화될 수 있다. 게다가 자본의 입장이 워낙 강경해서 뚫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고용직 단위노조가 어떻게 투쟁할거냐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6월 총파업을 목표로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과거 화물이나 덤프노조 파업처럼 위력을 발휘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내부 분위기는 이번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입장만은 확고하다.”

 
숱한 실태조사 결론은 “노조법 적용”
그동안 특고종사자의 실태조사는 수차례 치러졌다. 모두 특고종사자의 보호입법을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실태조사의 결과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크게는 노조법상 노동자 인정에는 인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 치러진 것은 지난달 30일 인권위 실태조사. 학습지교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레미콘기사, 텔레마케터, 애니메이터, 덤프기사, 화물운송기사, 택배기사, 퀵서비스배달원, 간병인 등 10개 직종이 그 대상. 이번 실태조사를 맡은 김영두 노동사회연구연구소 연구위원은 “10개 직종 종사자 모두 근로자에 가까운 사용종속성을 지난다는 점을 확인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며 “상대적으로 근로자성이 낮게 평가될 수 있는 운송·배송 직종의 경우도 시간적 자율성이나 간접적 지시, 감독, 규정 등 통제수단을 대신하는 강한 징계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특수고용직을 노동자와 자영자 중간지대로 간주하기보다 집단적 권리보호를 위해 노조법을 통한 보호가 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해 9월 노동기본권실현 국회의원 연구모임에서 내놓은 실태조사 결과 역시 비슷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건설기계(레미콘·덤프), 학습지, 캐디, 화물, 보험, 애니메이터, 퀵서비스, 간병인 이외에도 방송작가, 대리운전, 학원차량, 가전제품A/S기사 등 모두 13개 직종에 대해 조사했다.
 

기존에 실태조사 해오던 직종은 모두 사용종속성 및 경제의존성이 강하다고 보았으며 나머지 직종 중에서도 방송작가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사용종속성이 강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방송작가 역시 경제의존성이 강해 노동3권에서 배제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성희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노동자로 판단되는 직군에는 노동자성을 적용해야 한다”며 “유사직군이라고 해서 노동3권 적용을 배제해선 안 되며 노동정책을 확장해서 근기법상 노동자의 권리를 일부 적용하는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2005년 10월 노사정위원회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위(특고특위) 공익위원 검토의견은 노조법 적용에 그다지 후하지는 않았다. 모두 3개의 복수안이 제출된 가운데 근기법 적용과 노조법 적용, 별도의 개별적·집단적 보호방안 마련 등으로 분류됐다.
 

이에 따르면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레미콘기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등 4개 직군만을 상대로 할 때 근기법과 노조법 적용은 골프장 경기보조원만 해당됐으며 나머지 직군은 특별법 형태로 개별적·집단적 보호방안 마련 등의 안을 내놓은 바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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