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여수지역 비정규직의 직업병이 크게 늘고 있지만 오히려 비정규직들은 ‘역학조사를 피하고 싶다’고 말한다. ‘병’보다 ‘실직’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역학조사의 주 대상이 되는 전남동부·경남서부건설노조와 여수건설노조 조합원 내에서는 역학조사 실시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다. 이들 건설노조에 따르면 직업병 유소견이 나올 경우, 여수나 광양에서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산재가 발생할 경우 불이익을 받는 건설사업장에서 이들의 취업을 철저히 제한한다.

“죽으면 죽었지, 일당 포기하고 ‘쥐꼬리’만한 산재 보상금 받아서 어떻게 애들 가르치고 살겄소. 산재 요양기간 끝나면 치료받을 돈도 없는데…” 여수건설노조 관계자의 말이다. 아픈 곳이 1~2군데는 꼭 있다는 건설노동자들은 이번 역학조사가 자칫 ‘긁어 부스럼’이 될까 걱정부터 앞선다. 실제로 현장에서 유일하게 채용건강진단을 받는 용접공의 경우, 절반 가까이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취업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는 ‘역학조사로 개인질병정보유출이 되지 않는다’고 상당기간에 걸쳐 이들 건설노동자들을 설득해야 했다. “작업환경 측정이 암을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있는 발암성 물질을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질병자를 끄집어내기 내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고 설명해도 비정규직들은 여전히 역학조사를 반신반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비정규직을 주 대상으로 광범위한 역학조사를 실시하는 만큼 역학조사 실시기관에서 이들의 우려를 불식시킬만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지적처럼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노사단체가 참여하는 대책기구를 구성하여 사전에 계획을 가져야만 한다. 연구소 김신범 연구원은 "주요 사망원인에 대한 조사, 주요 상병과 사고에 대한 조사, 주요 위험작업 및 위험요인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향후 여수 및 광양지역 노동자 건강관리에 무엇이 필요한지 체계적 정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정책적 의지를 갖고, 역학조사를 일회성 사업으로 배치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노사단체가 정부와 함께 공동 대책기구를 마련하여 실천적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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