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은 2005년 5월 조합원 90여명 규모로 노조 설립 신고를 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조합원 명부를 갖출 것을 요구하며 설립 신고를 반려하는 한편, 위원장인 아노아르를 표적 단속해서 보호소에 가두었다. 노동부의 이 조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노조를 만들 수 있는 ‘노동자’가 아니라 단지 ‘불법 체류 외국인’일 뿐이라는 의미였다.

그로부터 1년 9개월 후인 지난 1일 서울고등법원은 이주노조의 설립 신고를 반려한 노동부의 조치는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법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노동자임을 분명히 했고, 이주노조 설립을 사실상 합법화했다. 이는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로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정부는 2004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했고, 올 해 1월에는 이주노동자 도입 제도를 일원화하며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불리던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했다. 이런 제도 변화를 통해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노동 3권이 보장된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에는 독소 조항이 있다. 고용허가제 아래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으며, 매년마다 사업주와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만약 계약 갱신에 실패하면 곧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노동자의 노동권을 가볍게 여기고, 노동조합 활동을 불온시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 조항들이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거나 사업주의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 이주노동자에게 적용될 것은 불 보듯 뻔해 보인다. 결국 고용허가제는 형식적으로만 이주노동자의 노동 3권을 보장할 뿐, 실질적으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 3권을 보장하지 않는 불완전한 제도이다.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회에 등장한지 20년이 지났으나,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노동 조건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은 9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하고 있으며, 일주일 중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은 최근 들어 올라가기는커녕,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의 조사와 단병호 의원실의 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2002년 995,816원(한국인 노동자 평균임금의 48.9%)에서, 2005년 974,996원(한국인 노동자 평균임금의 42%)으로 2만원이상 하락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그 하락폭은 더 커진다.

한편 이주노동자들은 아파도 병원조차 가기 어렵다.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병원에 갈 시간을 내지 못하거나, 병원에 가더라도 치료비 부담이 커서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한다. 그 결과 작은 병은 큰 병이 되기 일쑤이고, 심한 경우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2005년 이주노동자들의 의료기관 이용 실태를 조사한 한 연구는 78%의 이주노동자들이 진료비 부담이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설문 결과를 보여주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인간사냥, 즉 단속과 강제 추방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 22일 전남 해남에서 단속반원들에 쫓기다 사망한 중국 국적의 여풍산씨를 비롯해 지금까지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물리력을 앞세운 정부의 단속 과정에서 죽어 갔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강제 출국 당했다. 그들은 한국 사람들이 일하기를 꺼려하는 3D 업종에서 노동하며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고 있었으나,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정주화(定住化) 방지’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쫓아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3년의 사용기한을 가진 기계의 부속품으로밖에 보고 있지 않다.

90년대 중반 이주노동자들은 몸에 쇠사슬을 감은 채,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때리지 마세요’ ‘월급 주세요’라고 외치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고, 2003년에는 거리에서 ‘강제추방 반대’ ‘노동비자 쟁취’를 외치며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했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그들의 요구 사항 중 일부분을 인정한 것일 뿐,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번 판결에 대해 노동부는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부는 상고하기 보다는 이주노조가 사용자들과 교섭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정당한 노조 활동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이주노동자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동허가제를 도입하는 한편,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체류 비자를 주어야 한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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