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제·개정된 비정규직법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제·개정된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매일노동뉴스>는 앞으로 3회에 걸쳐 비정규직법 제·개정 이후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례를 살펴본다. 또 노무컨설팅, 아웃소싱 시장의 변화를 살펴본다. 아울러, 기업단위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 사례도 살펴본다.
 
1회차: 비정규직법 따라잡기 '천태만상'
2회차: 외주화 시장만 커진다
3회차: 비정규직 정규직화 사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찾아라.” 전 사회에 내려진 '특명'이다. 최악만은 막아야 할지, 최선의 대안을 찾을 때까지 헤매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사용자들은 비용절감이라는 기회비용을 잃지 않고 계속 비정규직을 채용하려 묘안을 짜내고 있다. 반면 노조는 이를 온몸으로 막아내려 한다. 노사의 이 같은 두뇌싸움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이 배경에는 지난해 말 통과된 비정규직 법안이 있다. 해결책은 없을까. 노사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함께 고민한 사례를 살펴본다.

비정규직 많았던 '자산관리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이하 캠코)는 1997년부터 금융기관의 유동성 위기에 대비한 부실채권정리기금 관리·운영을 담당했다. 처음엔 5조원 규모에 불과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규모는 37조원으로 확대됐다. 인원충원이 필요했고, 공사는 경기은행 등 5개 퇴출은행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정부차원의 방침이기도 했다. 공사도 그들의 노하우가 필요했다. 300명 규모의 조직이 단숨에 1천700명으로 확대됐다. 문제는 정규직은 300명인데 비해 계약직 비정규직은 1천400명에 달했다는 것이다. 부실채권기금관련 업무가 한시적인 만큼 계약직의 퇴출은 불가피했다. 실제로 2002년 업무 만료시한이 다가오자 정부의 감원 압박이 시작됐다. 인력퇴출이 현실화 된 것이다. 해마다 계약직 100명 정도는 짐을 싸야했다. 일부 계약직은 고용불안에 떨어야 했고 남아있는 계약직은 저임금과 차별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었다.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도 최고조에 달했다. 특단의 처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갈등은 공멸의 지름길

2002년 1월 임명배 노조위원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임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계약직의 고용안정 방안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직원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의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임 위원장은 바로 다음날 열린 노조집행부·대의원들 수련회에서 보따리를 꺼냈다. 계약직 직원들에게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능력 있는 계약직 직원들을 정규직을 받아들이고, 승진과 연봉책정도 조직기여도를 고려해 정규직과 형평성을 맞추자는 것이다.

하지만 임 위원장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의원들은 고사하고 내부 집행부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반발이 예상보다 컸다. 우선 집행부들을 설득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제도개선에도 메스를 가했다. 1년으로 돼 있는 대의원 임기를 2년으로 늘렸다. 1년마다 대의원들이 바뀌다보니 설득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임 위원장의 판단은 이랬다. 계약직과 정규직이 한 부서에서 혼재돼 일을 하고 있는데도 처우와 고용형태가 다르다보니 직원들간 갈등이 심하다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은 업무로까지 이어졌다. 서로 협조가 되지 않으니 업무 효율성이 떨어졌다. 또 회사측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감원에 급급해 하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방치하다간 향후 늘어나는 업무는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워질 판이었다. 정규직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문제해결의 필요성을 느낀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직원들이 하루 밤낮을 꼬박세우며 터득한 업무노하우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캠코의 부실채권운영기법을 높이 평가했다. 과거 성업공사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이를 계속 확장시켜야 나가야 직원들도 살고 공사도 살 수 있다. 이 같은 노하우는 정규직만의 것이 아니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만들어 낸 것이다. 인력 구조조정이 계속될 경우 캠코의 노하우는 사장될 수밖에 없었다.
사측도 비정규직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조직적 갈등이 심해지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나름대로 임금을 맞추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이다보니 정부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었다. 고민은 있되 한계는 명확했다.

조직통합으로 해결 단초 마련

임 위원장은 정규직들을 설득해 나갔다. 1년 동안 10여 차례 이상 수련회와 직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드디어 정규직들의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이다.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2003년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계약직의 노조 가입을 추진키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위원장과 집행부의 삼고초려 끝에 맺은 결실이다.

내친김에 노조는 2003년 7월 대의원대회를 개최해 우선 5급 이하 계약직원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향후 전 계약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계획이었다. 또 규약개정을 통해 4급 이상 계약직과 채권관리역 직원들에게는 노조설립의 길을 열어줬다. 그러나 이것은 노노 갈등의 출발점이었다.

비정규직은 이를 계기로 독자행보를 가시화 시켰다. 정규직 노조와 별도로 2003년 4월 계약직협의회가 출범했다. 계약직협의회는 노조에 단체로 노조가입신청서를 보냈다. 하지만 5급 이하만 조합원으로 받아들여지자 반발했고, 별도의 노조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2004년 3월 '비정규직노조'가 출범한 것이다.

이 때부터 노노, 노사갈등이 첨예해 졌다. 정규직노조는 사측이 비서실 확대와 청년이사회 등 별도조직을 만들어 노조를 무력화 시키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후선배치와 퇴출프로그램 도입, 임금피크제 등의 제도를 도입하려는 사측과 갈등을 빚었다.

뿐만 아니다. 비정규직노조와 사측과의 갈등으로 고소고발이 남발됐고, 노노간의 갈등도 점차 첨예화됐다.

사측도 난처하긴 마찬가지였다. 두 개의 노조와 협상을 진행하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두 개 노조의 시각차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하루 24시간, 1년 내내 교섭이 계속되기도 했다. 인사담당자들은 노조로부터 당한 고소고발을 처리하기 위해 수시로 노동위원회와 법원을 드나들어야 했다. 물리적인 손해도 그렇지만, 조직적 갈등으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은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노조가 먼저 나섰다. '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는 통합추진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통합작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지난 2006년 7월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가 통합하게 됐다. 사측도 적극 환영하고 나섰다.

임금, 승진 차별 없앤 정규직화

동시에 노조는 단체교섭을 통해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정규직화를 회사측과 논의했다. 우선, 처우개선 문제부터 풀었다. 2002~2003년에 걸친 단체교섭의 결실이었다. 계약해지된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해 창업과 전직을 위한 교육비를 지원했다. 계약만료 통보일부터 6개월 이내에 3백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또 불합리한 계약만료를 막기 위해 재심청구제도를 도입했다. 계약만료를 철저히 심사해 최대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연봉체계 개선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했다. 정규직과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노조는 정규직들을 설득하고, 사측은 별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키로 한 것이다. 계약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노사협의체도 구성됐다.

남은 것은 '정규직화'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이었다. 노사는 이를 단계적으로 풀었다. 급한 대로 계약직 직원은 장기계약 체결과 계약기간 없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다. 또 자녀학자금보조금을 지원하고, 주택구입자금을 지원하는 등 복지 수준을 동등하게 맞췄다. 한편으로는 정규직과 계약직 전체를 대상으로 자발적 명예퇴직을 실시해 인력정원을 확보했다. 대신 기존 정규직에게만 지급되던 명예퇴직금을 계약직에게도 지급했다.

동시에 인력채용 여력이 되는대로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2004년 12명, 2005년 62명, 2006년 100명의 계약직원이 정규직이 됐다. 임금테이블은 연봉제를 적용받은 계약직과 호봉제를 적용받는 정규직의 임금수준을 비슷하게 맞췄다. 연봉제가 적용됐던 계약직의 임금수준과 동등한 금액을 받는 정규직의 호봉체계로 편입시킨 것이다. 정규직 반발을 최소화하고 계약직 피해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은 것이다. 처음에 계약직들은 근무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에는 정규직과 승진의 기회나 임금에 있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만큼 만족해하고 있다. 정규직화된 계약직을 독립직군으로 분리하고, 직무급을 적용하면서 정규직과 임금차별을 두는 방식과 전혀 다른 것이다.

이 같은 노사의 노력으로 과거 전체정원의 70% 달했던 비정규직은 현재 28%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재 전체 직원 1천400명 가운데 계약직은 약 300명 수준이다.

노조는 정원 여유가 충분해 이들 대부분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측은 정규직 승진분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동시에 전환할 수는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입장차가 크지 않다. 앞으로 시간이 있는 만큼 심사숙고해 최선의 안을 만들자는 데는 동의한 상태다.

정부통제 넘기 위해 적극 나서

공공기관의 경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의 통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은다. 캠코의 경우 부실채권정리기금 관리업무를 한시적으로 맡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결정에 따라 노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이러한 흐름을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금융감독위원회에 직접 찾아가 관리업무기간 연장의 당위성을 설득했고 결국 2007년 말까지 연장을 약속받았다. 이에 따라 인력구조조정 계획도 철회시킬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공사의 업무영역을 개발해 나갔다. 부실채권운용 노하우를 해외로 전파시켜 나갔고, 국유재산관리업무도 새롭게 맡게 됐다. 그동안 업무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다. 이로 인해 인원충원이나 정규직 전환도 가능했다.

노사양측은 쉬운 방법을 찾기보다는 고생스럽더라도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평가한다. 문제는 정규직화의 방법이다. 정규직화하더라도 차별이 지속된다면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캠코의 사례와 같이 정규직화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처우개선뿐 아니라 임금과 승진의 차별을 없애야만 진짜 정규직화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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