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법적·제도적으로 안착시키는 데 주력하면서 금융정책의 기본방향을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정부정책의 핵심에는 금융기관의 겸업화, 대형화를 유도하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놓여 있다는 게 금융권 노동자들의 지적이다.

자통법은 기본적으로 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해 자본시장 중심으로 금융산업을 재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전통적 은행업을 쇠퇴시키고 중소형 증권사들의 인수합병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 진행된 정부주도의 강제적인 금융구조조정과는 다른 형태로 금융권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첨예하게 대두될 것으로 예상되며, 노조 역시 고용문제와 씨름하면서 투쟁과 대안마련에 분주할 것으로 전망된다.

◇ “자통법이 일으킬 파장” = 자통법은 2008년 이후 6월 이후 시행예정이다. 그러나 대형 투자은행을 지향하는 증권사들은 올해부터 자산 확충을 위한 인수합병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박진희 증권노조 정책국장은 “최근 하나증권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금융기관들은 단기적으로 고용불안이 없을 것처럼 선전하고, 법망을 피하기 위해 영업양수도 등 신종 기법까지 동원해 가면서 인수합병 전에 적극 뛰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자통법이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의 국내적 사전정지 작업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한진 사무금융연맹 정책국장은 “자통법은 한미FTA 금융서비스 협상과 관련해 미국 금융자본의 핵심적 요구사항들을 포괄하고 있으며, 정부가 추진 중인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의 핵심동력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미FTA 금융분과 협상의 진행 과정을 보면, 상당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신금융서비스가 여론의 저항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도 정부가 협상 개시선언과 더불어 관련 국내법(자통법)의 자발적인 제개정 등 나름대로의 우회전술을 구사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자통법과 더불어 겸업주의, 포괄주의라는 참여정부의 기본 정책방향은 보험업법 개정, 생명보험사 상장, 협동조합의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 등의 추진으로 구체화 될 것이며, 이는 은행, 증권, 보험이라는 금융의 주된 3개 영역의 구분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한진 국장은 “경쟁력 제고라는 차원에서 진행되는 협동조합의 금융지주회사화는 상호부조라는 기본적 정체성을 부정함으로써 국가의 기초산업인 농축수산업은 물론, 협동조합 노동자의 기본권적 생존권마저 크게 위협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현재 진행 중인 한미FTA도 관심사다. 이승민 금융노조 정책실장은 “금융서비스가 개방되면 농협의 신경분리, 보증보험시장개방, 국책은행 민영화 및 구조개편 등의 논의가 형성되면서 이에 대한 강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 “지주회사 설립 확대될 것” = 이와 함께 자산규모 확충이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금융지주회사 설립이 확대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강종면 증권노조 위원장은 “외국자본도 국내에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법개정이 거의 완성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지주회사의 확대에 주목해야 되는 것은 지주회사가 노동자들의 고용 및 근로조건의 수준을 결정하면서 자회사 경영 및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강 위원장은 “자회사들은 지주회사의 사업을 ‘집행하는 단위’로서의 역할만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지주회사들이 노동법상 사용자로 해석될 수 있도록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자통법과 금융허브기본법 등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산업 재편은 금융지주회사와 자회사간에 불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금융지주회사들은 자본시장 관련 수익원 개발에 골몰할 것이기 때문에 전통적 은행업의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다른 한편 하나금융지주와 자회사인 대투증권 등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불화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금융노동자들 갈 곳 없다” = 자통법은 중소형 증권사의 인수합병을 유도해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것은 대리점을 통한 판매망 확충으로 특수고용노동자를 양산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11월 하나금융그룹 상품전담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하나GMG를 설립해 대한투자증권의 펀드, 하나은행의 대출 상품 등의 판매에 돌입했다. 박진희 국장은 “증권업종에서는 이미 간접투자법에 의해 판매권유자 제도가 도입된 바 있으며, 다른 금융지주회사들도 상품판매 전담 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대리점 방식의 판매가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보험업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김필모 손해보험노조 사무국장은 “장기적으로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구조조정, 인수합병 등의 문제가 발생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은행권에서 보험사를 직접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추세가 확산되고 방카슈랑스에서도 은행의 주도권이 강화되면서 보험사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관측했다. 이와 함께 보험업법 개정 또는 민영의료보험법이 정부안대로 추진될 경우 건강보험상품시장의 축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손해보험사의 매출이 대폭 축소될 것이며, 이는 중소형사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야기할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실제 흥국쌍용화재의 구조조정에 이어 지난해 12월부터 그린화재, 신동아화재에서 희망퇴직이 진행되고 있다.

은행권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자동화의 진전과 자본시장 중심의 재편으로 심각한 고용불안을 경험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은행권은 인사적체와 임금피크제의 시행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과잉 인력 상황이기 때문에 고용불안의 체감은 훨씬 높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은행 간 과당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종태 연구원은 “소매금융시장을 둘러싸고 은행 간에 새로운 상품개발과 이자율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며 “은행들은 현재 예대 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 외에는 안정적인 수익원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가계대출 등 과도한 주택담보대출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 때문에, 올해 과당경쟁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은행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관측이다.

◇ “노동집약적으로 은행업무 바꿔내야” = 이 연구위원은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동집약적으로 은행업무를 바꿔낼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향후 금융산업이 자본시장 중심으로 재편될 경우 노동자가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라며 “하나는 개별화된 노동자가 각개약진 식으로 자본시장 관련 기능을 익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전체 노동자가 머리를 맞대고 은행업무를 노동집약적으로 바꿔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자와 관련해 대출심사와 대출 대상자와의 긴밀한 관계 형성을 위한 방안 등 노동집약적으로 바꿔내는 것이 시급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아울러 고용안정을 위해 인수합병 인가 요건, 신규회사 설립요건, 공시 등에 고용유지(고용승계, 적정인력 확보)를 의무 사항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고용과 관련된 제반 법률 개정 투쟁도 올해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박 국장은 “증권산업 내 고용안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사 및 유관기관이 기금을 출연해 관련된 고용안정사업이 전개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사회적 책임투자’와 관련된 의제를 확산시켜 ‘사회적 공시’가 이루어지는 등 금융공공성 강화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올해 임금인상보다는 고용안정에 더욱 더 많은 비중을 둬야 할 것이라는 주당도 제기됐다. 이종태 연구원은 “은행간 소매금융시장을 중심으로 경쟁이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강도로 진행될 것”이라며 “이에 따라 각 기업별 노조 간에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향후 기업별 노조 의식에 집착하지 않고 전체 금융노동자, 국민경제, 전체 금융노동자 등을 염두에 두고 판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고용을 지켜내는 길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1월 3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