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자가 모든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를 취재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내년 1, 2월에 쓸 당의 가예산을 승인받거나, 의결기구(중앙위, 대의원대회) 선거일정을 확정하거나, 부문할당 비율을 일부 조정하기 위한 중앙위는 현장을 취재하진 않는 게 ‘정상적’이다. 당 내부의 경상적인 조정을 위한 자리이고, 이른바, ‘뉴스밸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서울 역삼동 현대해상화재보험 대강당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7차 중앙위가 그랬다. 안건으로만 보면, 굳이 중앙위 현장으로 갈 필요가 있는 중앙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날 중앙위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을 처리한 후 벌어진 첫 중앙위였다.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당헌당규상으로 중앙위원회 산하기관. 세간의 관심이 모여 있던 지난 8일 국회환경노동위원회의 법안 처리 과정에서, 당 의원들의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 중앙위에 보고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4시간30분 동안 진행된 16일 중앙위에선 아무것도 보고되지 않았다.


로드맵 처리 이후 첫 중앙위인데…

이날 중앙위 예정시간은 오후2시. 중앙위원들은 관례적으로 지각을 해 왔고, 당은 고객관계관리기법(CRM) 교육을 앞서 배치했다. 당의 당원서비스 쇄신에 대한 여러 안들이 제시됐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교육시간에 몇몇 중앙위원들은 자리에 앉아 교육을 받고 있었다.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일각의 중앙위원들은 중앙위 안건 현장발의를 위해 중앙위원들을 만나고 있었다. 현장발의 할 안건은 로드맵 처리과정에서 당의 처신을 비판하는 특별결의문이었다. △노무현 정권 퇴진투쟁 △로드맵의 환노위 통과 과정의 ‘야합’ 행위에 대한 노동자 민중에 대한 사과 △야합의 책임을 통감하고, 당 대표와 의원단이 사퇴할 것을 권고 하자는 것이었다.

이 문건을 들고, 중앙위원들을 만나던 김광수 중앙위원은 “아마도 안건발의가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현장 발의를 위해선 회순 통과 전까지 중앙위원 36명의 서명(중앙위원의 1/10)을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다.

“속 편하게 노무현 정권 퇴진하게 하자는 결의문이면 대충 서명받기가 어렵지 않은데, ‘당 대표단과 의원단 사퇴 권고’가 들어가 있으니, 중앙위원들이 신중해지죠. 더 문제는 중앙위원들이 로드맵이 환노위를 통과했다는 것 자체를 모르거나, 통과한 걸 알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몰라요. 서명이 안 받아지네요.”

결국 김광수 중앙위원은 회순 통과 이전까지 30명의 서명을 받아냈고, 안건발의에 실패했다.

“중앙위원들이 법 처리과정을 모른다?”

중앙위원회가 개회된 것은 3시경. 그러나 정족수가 차지 않아, 성원보고 없이 일단 보고사항 중 ‘대선기획단’의 활동을 보고했다.

대선기획단에서 논의되던 내용이 나열됐고, 몇몇 중앙위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제시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2002년 7월에 열렸던 한 중앙위가 떠올랐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범진보진영대선후보추진위원회’(범추) 추진을 위한 중앙위를 열었다. 당시에 발언과 거의 같은 내용들이 2006년 12월 중앙위에서 나열됐다. 어차피, 대선기획보다는 정족수가 채워질 때까지 잠시 시간을 때우는 것에 집중됐던 시간, 기자는 두번째 듣는 이야기가 지루해 잠시 졸았다.

이윽고 3시30분경 성원보고가 됐고, 중앙위가 시작됐다. 안건을 다루기에 앞서 문성현 대표는 “여러 중앙위원들이 궁금해 할 것 같고, 하실 말씀도 많을 거 같아 미리 접고 가자”며 소위 ‘일심회’ 사건에 대해 말했다.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된 두명의 당직자가 작성한 당 활동가 340명에 대한 성향 분석 보고서가 검찰 공소장에 첨부돼 있는 상황. 전날인 15일 최고위원회는 “민주노동당의 조직적 활동과 무관한 일”이며 “진상조사를 한 후, 당헌당규에 따른 상응한 조취를 취할 것”을 이미 결정한 상태였다.

문성현 대표는 “오랜 고심끝에 최고위가 내린 결정이고, 아직 사실관계가 다 파악된 상황이 아니니, 오늘 자리에선 최고위를 믿고 긴 논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몇몇 중앙위원들이 문제제기를 했지만, 이미 전날 당은 정치적, 정파적 고려를 끝낸 상황이었다.

“일단 ‘일심회’부터”

가예산 심의에서 몇가지 추궁이 있었지만, 가예산이라는 게 본예산 심의 이전까지 전년도와 비슷하게 예산운영을 하겠다는 것이니, 논란이 있을 수 없었다. 중앙위원 대의원 선출시기 역시 원안대로 쉽게 통과됐다.

네 번째 안건인 중앙위원 비율조정 건은, 장애인 할당 5%를 강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에서 부문할당 이야기가 나오면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말들이 있다.

“소수자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할당이 아니라, 노동부문의 지분 확보를 위한 할당은 잘못된 것이다.”

‘정의감에 불타는’ 여러 중앙위원들의 이야기가 한참 나오면, 민주노총의 주요간부(주로 정치위원장이나 사무총장이 나선다)가 발언권을 신청해 “정말 오늘은 발언을 안 하길 바랬다”면서 이런 말을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당원비율에 비춰보면, 할당이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당의 노동자 중심성을 지키기 위해 할당 비율을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할당돼 오는 사람들은 모두 민주노총의 주요 간부들이다. 이 분들이 오셔야, 당의 결정한 사항을 민주노총에서 힘있게 집행할 것 아니냐.”(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그럼 중앙위 의장인 당대표가 나서서 이렇게 말한다.

“일단 당직선거가 눈앞에 있으니, 이번 안건은 처리하자. 오늘 안건 처리를 못하면 선거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다. 그리고 지금 말씀하시는 문제는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제도개선 논의를 통해 다음에 다시 논의하자.”

한 두마디 덧붙여진 후에, 안건은 처리된다. 16일 중앙위원회도 ‘후렴 원칙’에 맞게 처리됐다. 이날 결정에 의하면 향후 민주노동당 의결기관에 장애인이 5%씩 배정되면, 배정 방식은 각 시도당의 중앙위원 및 대의원 정수의 5%를 기준으로 배정하게 된다. 안건처리를 마친 시간은 6시30분경. 이제 보고만 남았다.

후렴의 원칙

보고안건 7번째에는 “비정규직 날치기 통과 저지투쟁 및 노사관계 로드맵 개악저지 투쟁보고”가 있었다. 몇몇 ‘선수’들이 칼을 갈며 이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가지 보고는 서면으로 대체됐고, 각 보고 항목은 5분 내외로 짧게 처리됐다. 보고가 막힌 것은 여섯번째 보고 사항이었던, ‘민생특위 보고’였다.

민생특위가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사회연대’ 방안을 보고하자 몇몇 중앙위원들이 “노동자의 양보를 통한 ‘사각지대 해소안’은 기존 당의 원칙을 후퇴시킨 방안”이라며 문제제기를 했다. 한 중앙위원은 “보고가 아닌 안건으로 처리해야 할 사항”이라고 주장했고, “연금에 대한 당의 기본입장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앙위원도 있었다. 문성현 당대표는 “최고위가 토론회를 열겠다”면서 “안건이 아니니, 일단 토론은 중단하자”고 말했다.

드디어 로드맵 처리에 대한 보고가 시작될 참이었다. 보고된 문서에는 8일 국회 환노위 상황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체근로, 정리해고 통보기한, 부당해고 처벌조항에 대한 쟁점사항에 대한 입장차가 큰 가운데 환노위 의사일정이 통보됐음 △당 의원들은 일방적 강행처리를 막기 위해 환노위 법안심사 소위장을 점거함 △홍준표 환노위원장이 질저유지권을 발동한 가운데, 오후7시까지 법안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정부안대로 강행처리 한다고 밝혔음 △당은 대체근로를 파업참여자의 50% 이내로 제한하고, 정리해고 사전통보기한을 50일로 수정하는 안을 홍준표 위원장이 제안해 심의한다면 소위 점거를 풀고, 반대표결을 한다는 방침을 정했음 △단병호 의원이 반대표결을 한 가운데 법안이 처리됐음.

환노위 점거를 풀던 과정이 ‘야합’이라고 반대하던 중앙위원들이 있었다. 야합이 있었을까? 당이, 중앙위원회가 판단할 문제였다. 또한 점거를 풀던 과정에서 당을 지지하는 대중조직인 민주노총과는 어떤 교감과 합의점이 있었을까? 이것은 보고 사항이었다. 다시 말해, 보고서만으로는 중앙위원들은 이 사태를 파악할 수 없었다.

“로드맵 보고는 서면 대체”

그러나 문성현 당대표는 7번째 안건, 로드맵 처리 과정에 대한 보고를 문서로 대체하고 넘겼다. 중앙위원 누구도 이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다. 뒤이어 집권전략위원회, 기관지위원회, 예결산 위원회의 보고가 이어졌다. 광주시당 선거비용 문제에 대한 예결산위 특별감사 결과를 두고 광주시당쪽 대의원들의 항의가 길게 이어졌다. 회의는 7시30분에 끝났다.

이날 중앙위원에 집중적으로 토론됐던 문제는, 예산안과 부문할당 비율조정, 예결산 감사에 대한 사항들이었다. 또한 일심회 사건에서 당의 활동가들에 대한 정보가 넘어갔는지 말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당내 문제였다.

당이 세상에 선언하고, 집중하는 문제들, 예컨대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문제는 토론될 기회가 없었다. 비정규법 처리과정과 로드맵 처리과정에 대한 평가도 없었다. 당 의원단은 당 중앙위원회의 산하 기관이다. 중앙위는 대국민정치를 수행하며, 타당과 경쟁하고 투쟁하는 의원단의 활동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회의를 마친 후, 중앙위원들의 저녁식사로 준비된 김밥이 회의를 마치고 퇴장하는 중앙위원들의 손에 쥐어졌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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