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조업에 비해 고용흡수력이 높은 서비스업종의 규제를 완화해 일자리를 늘린다는 내용의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21개 정부부처는 14일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 제조업에 비해 소외돼 온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 세제 및 금융지원 확대를 통해 ‘고용 없는 성장’의 늪에 빠진 경제를 활성화 하겠다고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5년까지 제조업에서는 일자리가 연평균 4만개씩 줄어들어 모두 67만개가 사라졌지만, 서비스업에서는 연평균 42만개씩 총 640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고용 중 서비스업의 비중은 65.5%로, 미국(78.3%)이나 프랑스(73.0%)보다 낮은 상태다. 그나마도 현재 서비스업종 일자리 네 개 중 한개는 부가가치가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에 집중돼 있다. 서비스업을 고도화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이같은 배경에서 출발한다.

14일 발표된 대책안에 따르면, 서비스산업에 적용되는 종합부동산세가 경감되고 전력요금도 제조업 수준으로 조정된다. 또, 병원이나 의사가 영리회사격인 ‘병원경영지원회사(MSO)’를 통해 의료·휴양 관광·보험 등 다양한 수익사업을 벌일 수 있게 된다. 그런가 하면 오는 2001년에는 제주도에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영어전용타운(가칭)’을 세워, 해외 유학생들의 국내 취업을 유인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 8월부터 주요 경제단체와 관련업계, 지방자치단체 및 소관부처로부터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건의를 다각적으로 수렴, 관계부처 간 협의를 거쳐 총 159개 과제를 이번 대책으로 내놨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 대해 “골프장 지어 경기 부양하겠다는 발상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세 감면 등의 방안이 일정 규모 이상의 업체에 부담을 줄일지는 몰라도, 현재 취업자가 과도하게 집중돼 있는 영세 도·소매, 숙박업의 고용 문제를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의료, 교육 등 공공적 성격이 강한 영역에 대한 산업적 접근에 대해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할 정부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서비스 규제 완화 = 정부가 14일 밝힌 대책안의 핵심은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그간 제조업에 비해 소외됐던 서비스산업에 세제와 금융지원을 늘리고 발을 묶던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최근 들어 진행된 부동산 세제 강화로 늘어난 서비스업종의 세부담을 줄이고, 전기요금을 제조업 수준으로 내려주기로 했다.

정부는 일단 토지보유세를 줄여준다는 방침. 제조업의 경우 읍면지역·산업단지·공업지역 내 공장 토지에 대해 종부세를 면제받아 왔으나, 유통단지, 놀이동산, 스키장, 관광호텔 등 업종의 성격상 대규모 토지를 필요로 하는 서비스업의 경우, 서비스업용 부속토지가 공시가격이 4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0.6~1.6%에 달하는 종부세를 납부해 왔다. 이에 정부는 종부세 과세기준금액을 현행 40억원 초과에서 200억원 초과로 상향조정하고, 200억원 초과분에 대해선 0.8%의 단일세율을 3년간 한시적으로 적용키로 결정했다.

정부는 제조업에 비해 원가대비 26% 높은 비용이 부과했던 서비스산업 전력요금도 2010년까지 한시적으로 산업용 전력요금을 적용키로 했다.

또, 연극, 오페라, 전시회 등 공연 관람권 구입에 지출한 문화 접대비는 총 접대비 한도액의 10%까지 손비로 인정, 문화산업에 대한 수요 기반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담보력이 부족한 서비스산업에 대한 무담보 신용대출도 올해보다 두배 가량 늘어난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은 내년에 지식기반·사회서비스산업에 대해 1000억원, 기업은행은 유망서비스업에 대해 400억원을 각각 신용대출 지원액으로 조성해 놓은 상태다.

그런가하면 정부는 디지털방송·모바일·해양레저스포츠·선박검사 등 21개 유망 서비스업종을 발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규제완화와 세제 지원을 통한 서비스업 일자리 창출 계획에 대해 노동계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 서비스업 고용의 특징은, 개인서비스 종사자 비율은 지나치게 높고 사회서비스 종사자 비율은 OECD 평균치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라며 “영세한 도·소매, 숙박업에 인력이 과도하게 몰려있는 현 상황을 감안할 때,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고용 창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고용문제를 연구하는 한 전문가도 “재경부가 늘 하는 얘기 아니냐”며 “코멘트를 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의료도 규제완화? =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병원이나 의사가 자금을 대서 MSO(병원경영지원회사)를 설립하도록 하는 안을 신설했다. 그동안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이 할 수 없는 다양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MSO는 주주인 병원들의 인력관리, 마케팅, 의료장비 구입, 진료비 청구, 법률회계 컨설팅 등 경영지원을 하는 것은 물론, 임상연구대행, 건강보조식품, 간병인 등 의료산업 인력학원 등의 연계사업뿐 아니라 호텔, 관광, 음식, 금융서비스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MSO는 이같은 서비스의 대가로 병의원의 매출액이나 이익의 일부를 받는 형태로 운영된다. 일종의 사업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또한 정부는 의료법에 비영리 의료기관의 구체적인 인수합병(M&A) 근거를 마련하고 공급과잉 상태인 소규모 병상(30병상 이하) 의료기관에 대한 시설·인력 등의 관리기준을 강화해 자율구조조정을 유도하기로 했다.

아울러 MSO 네트워크 병·의원간 의료 장비 공동이용 활성화를 위해 이동가능한 의료장비 사용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MSO에 가입된 의료기관들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광고도 허용하기로 해 MSO 설립여건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방안은 사실상 영리병원으로 가는 전초단계로 풀이할 수 있다.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기획실장은 “이번 정부 대책은 의료산업화 정책의 종합결정판”이라며 “이번 대책이 시행되면 껍데기는 비영리병원이지만 내용은 실질적인 병원주식회사 형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정부의 ‘고용창출 효과’에 대해서도 “국제 수준과 비교해 턱없는 병상 당 간호인력 구조 개편 없이 병원의 이익을 보장해준다고 해서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날 리 만무하다”며 “병원은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끊임없이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외주용역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교육 역시 규제완화… = 한편 정부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연수 및 유학 비용을 국내에 묶어두고, 외국 유학생의 국내 취업을 유인하기 위해 2010년까지 제주도에 ‘영어전용타운(가칭)’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교육 관련 국제 수지를 개선하고, 영어로 수업 가능한 교사를 양성·채용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정부는 영어전용타운 내 영어교육센터, 초중고 및 대학, 민간학원 등 다양한 교육시설을 유치하고, 외국인교사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영어전용타운의 시너지 효과를 활용해 다양한 수익모델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정부 계획에 대해 교육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철호 전교조 임시 대변인은 “일단 초중등 공교육을 서비스산업 방안에 언급한 것 자체가 정부의 의식 수준을 보여준다”며 “한마디로 영어타운 세워 유학의 전초기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인데, 유학비용이 줄어들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영어타운을 이용하는 데 들어가는 연간 학비가 1인당 최소 2천만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서민의 자녀가 이곳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소수 기득권 계층을 위한 귀족학교를 만들면서, ‘고용 창출’을 끌어다 붙이는 정부의 발상을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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