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8일 공무원노조 특별법이 시행됐다. 근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무원노사관계는 답보상태다. 안으로는 창구단일화 문제에 막혔고, 밖으로는 행정자치부가 노조파괴 전문가 집단이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어디서 꼬였으며, 노사 관계의 파국을 막을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가 올 한해 공무원노사관계를 되집어본다. <편집자주>

<연재순서>
1. 행정력과 조직력의 충돌
2. 현실을 제도에 끼어 맞추다 보니
3. 답답함은 위기로 되돌아온다

 
지난 10월 23일 대전 스파피아 호텔에는 난감한 표정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날은 행정자치부 주최로 ‘공무원노사관계 신뢰구축을 위한 노사합동워크숍‘이 열리던 날. 이날 간담회는 공무원노조들의 대정부교섭의 난맥을 풀어내기 위해 행자부가 만든 자리였다. 꼬여있던 지점은 창구단일화 문제였다.

창구단일화를 넘을 수 있을까?

행정자치부는 대정부 교섭 요구를 9월11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간 받았고, 10곳의 공무원노조단체에서 교섭요구서를 제출했다. 공무원노조특별법에 따르면, 대정부 교섭 요구를 한 곳이 복수일 경우 창구단일화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런데, 10곳의 노조들은 조직대상, 조직 규모, 교섭 요구안의 중점이 모두 달랐다. 우선 총연맹 형태의 공무원노조총연맹(공무원노총)이 있었고, 그 산하조직인 전국교육기관공무원노조연맹(교육연맹)도 따로 교섭 요구를 한 상태였다. 현재는 공무원노총 산하지만, 당시만해도 산하조직이 아닌 행정부공무원노조(행정부노조)도 교섭요구를 한 상태였다. 사실, 이들 3 노조의 교섭요구안은 직렬간의 차이 부분을 제외하면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다른 7곳은 이들 노조와 성격이 크게 달랐고, 상급단체도 제각각이었다.

우선 한국교육기관공무원노조연맹(한국교련)은 한국노총 산하 조직이었으며, 교육기관 기능직 공무원을 주요 조직대상으로 했다. 또한 전국교육기관공무원노조(기공노) 역시 교육기관 기능직이 조직대상이었지만, 따로 상급단체를 두고 있지 않았다. 한국공무원노조(한공노)의 경우는 지자체 고용직 중 기능직 공무원으로 채용된 공무원들의 조직이었다. 이들의 대정부 요구사항은 또 달랐다.

이밖에도 충청남도, 대구 북구, 서울 강서구청, 혁신서울시교육청 노조 등 지역 기반한 노조들도 대정부 교섭을 요구하고 있었다.

특별법상 노조 쪽 교섭위원은 10명 안쪽으로 하게 돼 있다. 10곳이 신청했으니, 10명을 한 명씩 쪼개서 배정하면 될 일이었을까? 설립신고 당시를 기준으로 최대 조합원을 가진 행정부노조는 조합원이 1만6천명에 달했다. 반면, 최소 노조인 혁신서울시교육청공무원노조는 조합원 수가 33명이었다. 1만6천명과 33명이 같은 대표성을 가질 순 없는 일. 다수 노조가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럼, 수에 따라 비례대표로 선임하면 될 일이었을까? 전국공무원노조 박경수 법률부팀장(공인노무사)의 분석에 따르자면, 설립신고 당시 조합원 수를 기준으로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을 때, 5곳에 노조는 아예 교섭위원 배정에서 배제된다.

행정부노조, 교육연맹이 각각 3명씩, 공무원노총이 2명, 한국교련이 1명, 기공노가 한 명씩 배정되면 10명이 다 차게 된다. 물론, 조합원 수 선정기준을 달리하면, 이 숫자는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소수 노조의 교섭권이 박탈된다는 점에서.



다 다른 10곳, 10명으로 어찌할까?

이런 상황에서 설립신고서를 낸 노조들의 초기 주장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행정부노조는 “중앙정부와 지방을 대표하는 형태로 교섭위원 선정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공노, 한국교련은 “기능직과 일반직 등 직렬 대표성을 강조해 교섭위원을 선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공노는 “총연맹 형태인 공무원노총과 기공노, 한공노가 각각 대표성을 가지고 교섭위원을 배정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일단 대표성이 큰 공무원노총은 교섭위원 선정과정에서 잡음을 바리지 않았다. 박성철 공무원노총 위원장은 초반에만 해도 “수의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타협안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교섭 요구단체가 10곳에 달하고, 교통정리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으로 꼬이자 입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당연히도 이런 말이 나오게 됐다.
 
“특별법이 공무원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행자부도 속이 탔다. 당장 공무원노조단체 최대 조직인 전국공무원노조(공무원노조)가 법 밖에서 머리에 붉을 띠를 두르고 있는 마당에, 일단 들어온 사람들과 서둘러 교섭구조를 안착시킬 필요가 있었다. ‘교섭을 통해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선례는 어떤 지침, 어떤 물리력보다 공무원노조에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자부는 법을 집행하는 곳. 법에 정해진 대로 노조들이 창구단일화를 해 올 때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창구단일화는 타협안을 만들어오든, 비례대표로 하던, 노조간에 자율로 해결할 일이었다. 사용자인 행자부가 나선다면, 당장 ‘부당노동행위’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조건이었다. 그런다고, 손가락 빨며 기다릴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다. 제도의 첫 운용 단계부터 “하자 보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명분이 실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자부는 ‘사용자가 왜 나서냐’는 일각의 비판을 뒤로 한 채 노조 대표자들을 모았다. 그 자리가 10월23일 대전 스파피아 호텔에서 있었던 것이다.

이 행사의 성격은 참 모호했다. 행자부는 그저 워크숍라고 주장했고, 공무원노총은 상견례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군소 노조들은 이 자리에서 창구단일화 과정에서 자기 지분을 확인받고 싶었다.

다른 이해관계, 예정된 파행

1914년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렸기 때문에 1차 대전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전운이 감돌고 있었고, 격발점이 사라예보였을 따름이다.

행자부는 서둘러 교섭구조을 안착시키고 싶어 했고, 공무원노총 계열의 큰 노조들은 숫자만큼의 대표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교섭위원 선정을 서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때, ‘총성’이 울렸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사망했고, 이용섭 행자부 장관이 장례집행위원장으로 선임돼, 워크숍에 올수 없게 된 것이다.

공무원노총, 교육연맹, 행정부노조 대표자들이 행사장 아래층 커피숍에 모였다. 서둘러 대책회의를 했고, “사용자 대표격인 장관이 불참한 가운데 행사를 진행할 수 없다”면서 워크숍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들 노조의 대표자들은 “참석하기로 한 행자부장관이 사전 설명도 없이 불참한 것은 공무원노총을 기만하는 행위”라면서 “장관의 공식사과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낭독하고 일제히 철수했다. 행자부 쪽 관계자들은 “갑자기 장례집행위원장을 맡게 됐고, 그에 따른 사전 양해가 있었다”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이날 밤 행사일정은 ‘친교의 밤’이었다. 행자부의 의도는 ‘허리띠 풀어놓고’, ‘마음도 풀어놓고’ 서로의 처지에 대해 대화하다 보면 창구단일화 문제의 실타래가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앙꼬’가 빠져 나가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시작된 행사였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행사를 그대로 진행했다.

군소노조 대표자들은 격분했다. “아니 빠져나갈 거면 같이 논의를 해야지 자기들끼리 논의해서, 자기들끼리 나가는 게 어디있냐”며 화를 냈다. 난감한 표정이었다.

행정부노조의 한 지부 대표자는 행사장을 나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조합원 33명짜리 노조와 같이 창구단일화 하게 생겼냐. 이런 방식으로 해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33명짜리 노조’는 혁신서울시교육청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 당시 조합원 수를 의미했다.
며칠 뒤 기자는 항의전화 한통을 받았다. 혁신서울시교육청노조의 관계자였다. “우리 조합원 수가 33명이 아니다. 훨씬 많다. 33명으로 신고한 것은 ‘기미독립선언문’의 서명한 사람 숫자의 의미를 이어받자는 의미였다. 자꾸 ‘33명짜리 노조’라고 매도를 받고 있다.” 맞지 않는 옷에 몸을 맞추다 보면, 맵시가 나지 않는다. 무리해서 몸을 넣다보면 우스꽝스러워지게 마련이다. 공무원 대정부교섭의 시작은 난망한 상태다.



맞지 않는 옷을 입다보면

철거민들의 투쟁은 민중투쟁의 현장에서 가장 극렬한 모습을 보이는 곳이다. 골리앗이 세워지고,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치면 투석전화 화염병을 던지곤 한다. 가끔은 사제총이 발포되기도 한다. 내쳐지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사 가면 될 상황이면, 철거촌에서 살지 않는다. 8월30일 공무원노조 경남본부가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다르게 돌아갔다.

이미 사무실 강제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은 확정적이었다. 30일 오전부터 경찰병력이 노조 사무실이 있는 경남 공무원교육원 주변에 배치됐다. 당연히 노조도 대응에 나섰다.
경남본부 지부 대표자들이 모여서 삭발을 했다. 그런데 삭발한 장소는 노조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이 아니라, 50여미터 이상 떨어진 교육원 정문이었다. 막상 경남도 측이 사무실 철거에 나서자 저항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유근 당시 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무실을 그냥 내 줄 순 없으나, 법 집행을 방해하진 않겠다. 우리 발로는 못 나가니까, 우릴 옮겨 달라.”

대집행을 나온 공무원들은 노조 사무실 문 앞에 있는 본부장은 가마 태우듯 들어서, 10여미터 옮겼다. 본부장은 돌부처처럼 조용히 눈을 감고 가마타고 나가 듯, 10여미터 옆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경남도는 폐쇄절차에 들어갔다. 취재 나온 기자들이 “짜고 하는 게 너무 눈에 보여 민망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 경남본부는 며칠 후에 경남 창원에서 열린 공무원노동자 결의대회를 잘 치르기 위해선, 주요 간부들이 연행 되면 안되기 때문에 조용히 내 주는 것을 방침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가마타 듯 들려 나갔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볼 때도, 되짚어 생각해도, 경남본부 지도부들은 사무실 폐쇄에 저항할 뜻이 없었다. 사무실 폐쇄 이후 정유근 본부장은 법외노조의 시대를 끝내고, 설립신고를 내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경남 내 시도지부의 절반 가량이 합법노조 전환을 추진했고,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공무원노조는 11월25일 대의원대회에서 정유근 본부장을 제명했다. 이날 대의원대회에서 공무원노조는 법외에 남을 것이냐, 법내로 들어갈 것인가를 두고 투표를 했다. 그 결과 딱 8표 차이로, 법내로 들어가자는 안(172명 찬성)이 부결됐다.

권승복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조직의 절반이 법내로 가자는 뜻을 보인 게 맞다”면서 “지도부가 나서서 조직을 추스릴 것”이라고 밝혔다. 공무원노조의 집행력과 조직력은 약해지고 있다.

사실, 행정력과 조직력의 싸움은 답이 나와 있는 싸움이다. 올해 2월 3개 부처 장관이 “불법단체” 엄단을 일갈한데 이어, 3월 ‘불법단체 합법노조 전환(자진탈퇴) 추진 지침’이 내려졌다. 이후 공무원노조가 하는 모든 집회에 대해, “참석자 중징계” 방침이 내려졌다.
9월에는 지자체를 전쟁터로 만들면서까지 노조 사무실에 대한 강제폐쇄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인권침해, 강제폐쇄의 위법성, 과잉징계 논란이 끊이질 않았으나 행자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조와 행자부 사이에 어떤 협상도 없었고, 단 한차례의 만남도 없었다.

노조가 만든 제도개선안이 국제노동기구(ILO)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됐고,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표자회의 국면에서 제시됐지만, 행자부는 한가지 원칙에만 주목했다. “불법단체와 대화는 없다.”

행자부 지침에 의한 사무실 강제폐쇄의 첫 시작이었던 경남본부 사무실 폐쇄에서 벌어진 상황은, 일련의 탄압국면에서 나온 촌극이었다. 힘으로 깨려는 상대 앞에서,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명분으로 보면 강제폐쇄는 부당하다고 생각했기에, 정유근 본부장은 자기발로 걸어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맞서 싸우면서 벌어질 여러 고난을 피하기 위해 가마 탄 듯 실려 나갔다.

권승복 위원장은 공무원노조단체 최대조직의 대표자다. 그러나 권 위원장은 한번도 사용자 대표와 의견을 나눈 적이 없다. 그가 위원장이 되고 정부 청사 건물로 처음 들어간 것은 지난 8일. 대통령 직속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한 ‘대한민국 인권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다. 권 위원장은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국민연대’를 대표해서 정부종합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상을 받아왔다.

맞지 않는 옷에 몸을 맞추다 보면, 맵시가 나지 않는다. 무리해서 몸을 넣다보면 우스꽝스러워지게 마련이다. 공무원노조의 대정부투쟁은, 행자부의 공무원노조 탄압은 국면을 달리하며,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작동되지 않는 시스템

지난 9일, 공무원노총을 위시한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연금 개악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 회’는 광화문에서 8천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의 일방적인 개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서다.
“대화와 타협”을 주요 활동방식으로 삼는 공무원노총은 이날, “준법투쟁”을 거쳐 “총파업”과 “정권 퇴진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연금 문제를 논의하자면 단체교섭을 통해서 하자”는 게 공무원노총의 주장이다. 특수직역 연금의 핵심 이해당사자인 공무원노조단체가 “연금제도를 손을 볼꺼면 우리와 교섭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

행자부도 답답한 상황이다. “아니, 창구단일화 해서, 교섭을 시작해야지 논의를 해도 할 것 아니냐” 볼벤 소리를 하고 있다. 행자부 관계자는 “창구단일화는 안하고, 밖에서만 주장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 밖에서 꼬이고, 법 안에서 한번 더 꼬인 공무원노사관계.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게 마련이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2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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