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8일 공무원노조 특별법이 시행됐다. 근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무원노사관계는 답보상태다. 안으로는 창구단일화 문제에 막혔고, 밖으로는 행정자치부가 노조파괴 전문가 집단이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어디서 꼬였으며, 노사 관계의 파국을 막을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가 올 한해 공무원노사관계를 되집어본다. <편집자주>

<연재순서>
1. 행정력과 조직력의 충돌
2. 현실을 제도에 끼어 맞추다 보니
3. 답답함은 위기로 되돌아온다


2006년 2월8일, 천정배 당시 법무부장관과 오영교 당시 행정자치부장관, 김대환 당시 노동부 장관이 나란히 정부종합청사 브리핑룸에 섰다. 이들 3명의 장관은 일성은 이것이었다. “법에 의해 설립신고를 하지 않고 활동하는 불법단체는 물론, 합법적으로 설립된 노조나 직장협의회라 하더라도 불법행위를 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1월28일 공무원노조특별법(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서울특별시공무원노조와 전국교육기관기능직공무원노조 등 5개 노조만 설립신고서를 낸 상태였다. 5개 노조의 조합원수는 불과 6천여명. 특별법에 따른 노조 가입 대상은 29만명 정도다. 공무원노조단체 양대 조직인 전국공무원노조(공무원노조)와 공무원노조총연맹(공무원노총)은 법내로 들어갈 뜻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법 시행 이후 불과 열흘, 관계부처 장관 3명이 모여 한 말을 추려 말하면, “들어오지 않으면, 힘으로 누르겠다”로 표현할 수 있다.

당시 담화문에서는 △법 시행 이후 노조설립신고를 하지 않고 노조활동을 하는 불법단체와의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은 일체 불허하며 △불법단체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전임자 인정, 조합비 일괄 공제, 사무실 제공 및 기타 편의제공을 일체 불허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담화문은 △불법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지도부 및 공무원은 모두 자진 탈퇴토록하고, 불법집단행위시 의법조치 할 것이며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방침을 위배하여 단체교섭을 하는 지자체에 대해선 특별교부금 삭감 등 범정부적 차원의 행·재정적 불이익 조치를 취할 것을 경고했다.

행정자치부는 8일 담화문 발표에 이어 각 시도부단체장회의를 개최, 전담조직 설치 및 이행사상 준수 점검 계획을 검토했다. 이른바, 공무원노사관계의 시작은 행정력을 총동원하겠다는 정부와 조직력으로 대항하겠다는 노조의 대결양상으로 시작된 것이다.



지침의 등장, 전면적의 시작

정부는 다음달이 3월 ‘불법단체 합법노조 전환(자진탈퇴) 추진 지침’을 전국의 지자체·기관에 내렸다. 관계부처 장관들의 ‘일성’이 구체적인 추진지침으로 내려진 것이다.

지침에서는 “간부 공무원과 불법단체 지도부간에 1대1로 ‘설득전담반’을 편성”하고, “설득책임을 부여” 한다고 적시했다. 또한 “간부 공무원이 설득대상 지도부 공무원의 개별 면담, 가정방문, 전화 등을 통해 본인 및 가족을 설득” 하도록 지시했다.

지침은 조합비 원천징수를 3월 보수 지급 시부터 금지하고, 전임자에 대한 업무복귀를 즉시 시행하라고 지시했으며, 지침을 어기는 공무원 노동자는 중징계를 추진할 방침을 밝혔다.

또한 지침은 “불법집단행위”에 대해선 지도부의 파면, 해임 등 중징계하고, 일반가입자도 징계 등 엄중징계 할 것이며, 사무실 폐쇄, 현판 철거를 집행하며, 노조가 저항할 경우 경찰에 협조를 요청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후렴구처럼 “실적이 미흡한 기관에 대해선, 해당 기관을 언론에 공개하고 행·재정적 불이익 조치를 취할 방침”을 밝혔다.

사실 대한민국 공직사회에 이 정도로 윽박지름을 하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다르게 굴러갔다.

우선 노동3권 확보를 주장하며, 특별법 거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던 공무원노조는 “행정자치부가 노조 파괴자냐”면서, 바로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간부들을 중심으로 지침이 내려지자마자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또한 행자부가 지침 설명을 위해 추진한 시도별 교육을 몸으로 막았다. 단기적으론, 이 지침에 대한 거부감은 법외노조 상태인 공무원노조의 내부 결속을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했다.

공무원노총 역시 지난 2005년 11월, 법외노조 방침을 지키면서, 한동안 설립신고를 내길 거부해왔다. 강성 이미지가 강한 공무원노조와 달리 공무원노총은 노동3권 확보를 요구하고 있지 않았다. 공무원노총이 법외노조를 고수한 주된 이유는 단결과의 과도한 제약 때문이었다.

특별법은 6급 이하를 노조가입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시행령을 통해서 노조 가입을 직종, 직급, 직무별로 3중 제한함으로써 상당수의 6급 공무원이 노조로 들어올 수 없게 돼 있었다. 공무원노총은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내는 등 단결권 확보 이전에는 법내 진입을 유보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였다.

 


“들어갈만 해야 들어가지”

이같은 상황에서 ILO 이사회는 결사의자유위원회가 제출한 한국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권고안을 3월말 채택했다. ILO는 △5급 이상 공무원이 자신의 이해보호를 위해 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보장할 것 △공무원조직을 약화시킬 정도로 가입대상을 포괄적으로 정의하지 않을 것 △(현재 노조결성이 금지된) 소방공무원이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보장할 것 △공무원의 파업권에 대한 모든 제약을 제한할 것 등을 권고했다.

사실상, 지난 1월28일부터 시행된 공무원노조특별법의 내용을 전면 부정하고 개정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공무원노조단체들은 국제사회로부터 제도 개선투쟁의 명분을 다시 얻었다. 더구나 행자부가 추진하는 ‘지침’은 부당노동행위와 인권침해 논란에 휩싸여 있는 상태였다. 노조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행정력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2006년 법 시행 이후 두 달 안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정부의 지침은 각 일선 지자체에서 바로 집행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지침 이행을 미루거나, 서류상으로만 집행했다. 이미 2002년 이후 노조와 단체협상으로 맺고 있던 지자체가 적지 않았고, 때는 5·31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둔 상황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구청 로비에서 노조가 천막이라도 치고, 투쟁가라도 울려 퍼지는 걸 좋아할 단체장은 없었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임박하자, 지자체장들의 상당수가 선거로 뛰어들었다. 지자체장 권한의 상당부분이 부지자체장에게 넘어간 상황. 이들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임명한 사람, 즉 인사권의 통제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행자부는 이들을 집중적으로 압박했고, 몇몇 지자체에서 지침은 이행되기 시작했다.
공무원노조는 마치 ‘두더지 게임’ 하듯, ‘튀는 지자체’들에 대한 각계격파를 시도했다.
대구 북구, 전남 완도, 경남도청, 경기도청 등에서 집중집회를 열거나, 부당노동행위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진상조사단을 파견하면서 대응해 갔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공무원노조를 이탈해 설립신고를 준비하던 대구 북구에 민변 노동위원회 소속 변호사 3명을 파견해 북구청 쪽의 개입 여부를 조사했다. 실제 부당노동행위 여부를 밝힐 수 없었지만, 단체장과 법내노조를 추진하던 쪽에선 부담을 느끼도록 압박해 들어간 것이다.

부천시의 경우 지침이 이행되자, 지부장이 단식에 들어가며, 로비에 농성장을 차렸다. 시 측에서 농성장 철거를 시도하자, 노조 간부와 지역의 연대단체를 중심으로 저지투쟁에 나섰다. 부담을 느낀 부천시는 노조와 ‘비공식’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침 이행 의지가 있었던 지자체들도 대부분 더딘 움직임을 보였다.

이러는 사이, 2006년 봄을 넘기면서 조합비 원천징수는 대부분 막혔다. 노조는 조합비 원천징수 거부에 대항해, 자동이체 방식으로 조합비를 거둬들이기 시작했고, 이는 성공했다.

희생자 구제기금을 포함해 3만원이 넘는 조합비가 노조의 통장으로 갹출되 들어왔다. 자동이체 전환 초반의 누수율은 10% 안팎. 8만명에 가까운 조합원의 대부분이 법외노조에, 정부에 표현에 따르자면 “불법단체”에 조합비를 납부한 것이다.

 

 
“안 걷어주면, 우리가 걷는다”

공무원노조가 자체조직력을 버틸 준비를 하는 사이, 공무원노총은 법내진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005년 11월, 법외노조 방침을 정했던 공무원노총은 2006년 5월 대의원대회를 통해 “9월 ILO 아시아태평양 총회 이후 공무원노조 특별법에 따른 설립신고를 낼 것”을 결정했다. “단결권의 과도한 제약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까지 설립신고를 유보한다”는 결정이 6개월만에 뒤집어진 것이다.

5월 대의원대회에서 공무원노총은 설립신고 유보를 유지할지 말지를 두고 2시간이 넘는 격론을 벌였다. 행자부의 3월 지침 이후 계속된 압박은 공무원노총의 결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공무원노총의 2005년 11월 대의원대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공무원노총 소속 노조들이 설립신고서를 낸 상태였다.

공무원노총의 중요한 한 축인 중앙부처 공무원노조들이 ‘합법화’를 전제로 ‘행정부공무원노조설립 준비위원회’를 꾸린 상태였다. 교육기관 공무원노조들도, 설립신고서 제출이 임박한 상황이었다. 5월 대의원대회 과정에서 “노조가 와해될 위기에 놓였는데 계속 유보하고 있을 수 없다”는 발언들이 다수 나왔다. “어떤 진전도 없었는데, 유보 방침을 바꿀 수 없다”는 의견이 일부 제시됐으나 소수였다.

당시에 박성철 공무원노총 위원장은 “특별법에 허점이 많은 만큼 제도 개선을 주요한 요구사항을 걸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무원노총이 5월 대의원대회의 결정대로, 9월5일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공무원노총의 5월 대의원대회의 결정은, 법내외 법외로 공무원노조단체가 양분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정부는 법내와 법외로 공무원노조단체를 나눠서, 채찍과 당근을 나눠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했다.

6월초 행자부가 주최한 시도 공무원단체 담당자 워크숍에서 공무원노조와 공무원노총에 대한 차별화 된 대응이 필요하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당시 워크숍에서 행자부는 “합법노조 전환을 준비 중인 공무원노총과 합법노조 전환 자체가 불가능한 공무원노조를 불법단체로 동일하게 취급합으로써, 공무원노총의 합법전환 설득에 애로가 있으며, 설립 이후 노조가 강성 성향을 보일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공무원노총에 대한 지속적인 대화 및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결론냈다.

또한 9월까지를 공무원노총의 설립신고 준비를 위한 이행기로 보고 ‘지침’ 이행을 유보하자고 결론내렸다.

한달 뒤인 7월 5일 이용섭 행자부장관은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감담회 자리에서 “합법적인 노조활동이 가능해짐에 따라 합법노조 전환이 가속화되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단체교섭이 요구될 전망”이라면서 “합법노조와는 상생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정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 장관은 “합법노조 전환 거부 시, 당초 방침대로 지도부 징계 등 엄정 대처할 것”과 “불법 집단행동에 대해서도 주동자 배제징계 등 강력 조치”를 할 것이며, “자치단체장이 불법단체와의 단체교섭을 하거나 인정서약서를 작성하는 등 불법적 노사관행을 적극 방지”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장관은 “이를 어기는 지자체에 대해선 특별교부세 지원 중단, 정부 포상 배제 등 범정부 차원의 행정·재정적 불이익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노총과 공무원노조에 대한 차별대응 방침이 공식 천명된 것이다.

“한쪽은 채찍만, 한쪽은 당근만”

2006년 여름이 되고, 정부는 노사정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고, ILO 아태총회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된다. 정부는 대 노동계 유화 국면을 조성된다. 이 사이, 행자부를 중심의 ‘엄정대처’ 위주의 방침과 노동부 위주의 ‘유화 조치’ 위주의 방침이 엇박자를 보이게 된다.

7월 초,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공무원·교사·교수의 노동기본권 의제’를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다룰 것을 결정한다.

민주노총 산하 조직인 공무원노조는 “탄압 중지가 대화의 전제”라면서 국면 전환을 시도한다. 또한 2004년 총선 국면 이후 단 한번도 실현되지 않은 대정부 대화 국면을 시도한다.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공무원 노동기본권 문제를 다룰 때, 실질적인 사용자인 행자부가 대화 테이블에 나오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노조는 이 대화 국면을 준비하기 위해 입법요구안을 마련했다. 이 요구안은 현재 특별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공무원 노사관계를 일반법 즉, 일반 노동관계법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원칙적으로 노동3권을 인정하되, 현재 필수공익사업장이 받는 수준의 단체행동권의 제약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방침은 엇박자의 연속이었다. 노동부는 노사정대표자 회의 대화 테이블에 행자부의 참여를 끌어내지 못했다. 또한 행자부는 8월 초, 전국에 공무원노조 사무실에 대한 강제페쇄 방침을 내렸다.

8월 중순 이후 공무원노조는 노사정 대화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민주노총에 대해 “대화 참여를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8월30일 ILO 아태총회가 한창이던 기간에 경남도는 공무원노조 경남본부 사무실에 대한 강제폐쇄를 전격 단행했다. 대화는 시작도 못했고, 파국은 예정되로 진행됐다.

9월22일 정부는 전국의 공무원노조 사무실에 대한 강제폐쇄를 노조의 극렬한 저항 속에서 강행했다.

대화국면은 없었다

이렇게 공무원노사관계가 파국으로 가는 동안, 사용자들이 이 국면을 이용 노조를 탄압하는 사례는 당연히 나오게 된다. 우선 손에 꼽히는게 농촌진흥청과 경남도청의 사례다.
공무원노조와 농촌진흥청은 극렬히 대립했다. 5월 25일 집회의 경우 100명의 연행자가 나왔고, 7명이 징계됐으며, 수십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농촌진흥청 사태의 불법단체에 대한 합법노조 전환문제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었을까. 김인식 농진청장은 2004년 노조와 청이 추진하고 있던 단일직급제를 핵심으로 한 인사제도 전환 추진안을 폐기했다. 김인식 청장은 노조의 극열한 반대 속에 ‘다면평가’를 추진했고, 이에 저항하는 노조를 경찰력을 통해 다스렸다. 김 청장은 노조 저항을 불법단체를 다스리기 위해 행자부가 정해준 지침에 따라 탄압했다. 결국 5월25일 수십명의 부상자가 나오는 참극이 벌어졌다. 참극은, 노조가 불법단체 혹은 법외노조여서 벌어진 일이었을까?

ILO 아태총회가 한창이던 시기, 8월30일에 경남도는 공무원노조 경남본부 사무실에 대한 강제폐쇄 조치를 진행했다. 차로 한시간 반 거리인 부산 해운대에선 아태 총회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손님 모셔두고, 시범을 보인 셈. ILO는 아태총회 자리에서 공무원노조 탄압과 관련한 제소장을 받아갔다.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도와 시군간의 인사교류협약을 지키지 않았다. 이 협약은 2004년 보궐선거 이후 김태호 도지사가 손수 서명한 것이었다. 김 도지사는 5·31 지방선거 이후, 정실인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자신의 선거캠프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면서 위법한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에 대해 항의했고, 저항했다. 김 도지사는 행자부가 불법단체 없앨 때 쓰라고 지침 준 방식대로 노조 사무실을 폐쇄했다. 8월30일 무리한 사무실 폐쇄는 정말 노조가 불법단체 혹은 법외노조 때문이었을까.
 
 
<매일노동뉴스> 2006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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