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0월27일 ‘(가칭)사회보험료 부과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 발의하여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학계 및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4대 사회보험의 징수권을 국세청 산하로 두는 ‘(가칭)사회보험징수공단’ 설립을 급속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 입법 취지를 살펴보면 첫째, 각 공단으로 분리되어 있는 사회보험료(국민연금, 건강, 고용 및 산재보험)의 징수업무를 통합함으로써 사회보험 관리업무의 효율성을 기하고 둘째, 민원 편의성을 제고하며 셋째, 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의 졸속적인 사회보험 징수권만의 통합은 정부에서 제시한 장밋빛 주장들과는 달리 그 내면은 현재의 관리체계보다 더 많은 사회적비용의 증가를 초래하고 가입자들의 불편과 혼란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공적연금의 사각지대 심화로 인한 전체적인 국가의 사회보장체계가 후퇴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효율성’으로 포장된 비효율적 로드맵

정부는 3개 공단이 개별적으로 처리해온 기존의 부과 및 징수방식은 중복업무로서 관리비가 과다하게 소요된다고 하였으나 새로운 징수공단 설립 시 조직운영에 대한 기본적 비용은 필연적이며, 신규로 전국에 약 150개의 지사가 새롭게 신설되어야 하며, 새로운 전산시스템 도입만으로도 약 2,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국민들의 혈세로 지불되어야 한다. 또한 기존의 3개 사회보험 공단은 4개 기관으로 기능적 분화가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이를 ‘통합’으로 칭하기 보다는 오히려 업무의 기능적 ‘분화’로 명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더군다나 정권 말기에 추진되는 신설 공단은 경제부처 관료들의 퇴직 후 안식처로 전락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과연 이것이 전체 국민들을 위한 구상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One-Stop에서 Three-Step으로

각 사회보험, 특히 국민연금의 경우 보험료 부과 및 징수와 연금급여 수급권 발생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장애연금과 유족연금의 경우 연금급여 지급결정 시 보험의 역선택 방지 등과 관련하여 수급요건 심사에 있어 가입자 자격관리와 보험료 부과 및 납부가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업무의 기능적 분리가 이루어질 경우 가입자들은 기존의 한 곳에서 처리되던 업무를 징수공단과 개별 사회보험공단을 분주하게 쫒아 다니며 해결해야 될 판이다. 또한 가입자들의 제 신고서접수 및 증명원 발급과 관련된 민원업무 처리에 있어서도 이미 각 공단은 제 신고서의 인터넷(EDI) 공통처리로 인해 점증적인 Soft-Ware적 통합 기반을 구축하고 있으며, 자동이체, 인터넷지로, CD/ATM기 납부 및 가상계좌 발급 등 편리한 납부편의 제도를 활용하고 있으므로 통합고지서 발송으로 인한 실익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사각지대 심화’로 노후소득 담보장치 상실

현 국민연금의 지역가입자 등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소득 보유자 비율은 26%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세청 산하 징수공단에서 과세자료에 의해서만 국민연금제도를 운영할 경우 과세소득 미보유자들의 제도권 이탈로 인해 연금 사각지대는 심화될 것이다. 대부분의 소득자료 미보유자들은 공단 직원들의 사회보험제도로서 지니는 국민연금의 효용성과 필요성에 대한 안내를 받고 가입하고 있으나 국세청에서 이에 대한 업무 지휘 및 감독권을 갖게 될 경우 국민연금은 조세로 인식되어 가입자들의 대거 이탈이 발생될 것이다. 이로 인해 광범위한 연금 사각지대 형성은 노후소득 담보장치로서의 국민연금의 역할을 상당히 위축시킬 것이며 이로써 미래 정부의 노인부양비 부담증가로 후세대에 대해 또 하나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다.

채무자가 채권자 인수하는 전대미문의 M&A

2001년에 통과된 ‘기금관리기본법’과 올해 10월에 통과된 ‘국가재정법’은 기획예산처 등 경제부처가 국민연기금의 상당부분을 전횡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하였다. 현재 국민연기금의 80~90%는 이미 국·공채 매입 등으로 인해 정부의 경제부처가 연기금의 최대 채무자인 상황에서 연금보험료의 징수권조차 경제부처의 손아귀에 쥐어 준다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영국과 같이 부과방식(즉, 당해 연도 징수된 보험료 총액을 그 해에 지급) 형태로 연금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국가에서는 국세청에서 보험료를 징수해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세계에서 유래 없이 적립기금이 많이 쌓인 우리나라의 경우, 최대 채무자인 경제부처가 국·공채 상환시점에서 사회보험료 징수보다 국세징수에 업무 초점을 맞출 경우 누가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정부가 아직도 국민연기금에 갚지 않고 있는 이자 차액 2조6천억원을 상기해 본다면 이러한 추측이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또 한번의 철퇴

지난 11월30일 여야의 공모로 비정규직 개악법이 전격적으로 날치기 통과되었다. 이로 인해 노동계 및 재야단체들은 현 정권의 착취적 노동관을 분쇄하기 위해 총력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이번 징수공단 설립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각 공단 노조들을 대상으로 ‘고용안정 확보’라는 당근을 내세우며 제도의 공공성 저해라는 양심을 팔고 징수공단 설립에 합의해 줄 것을 종용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정부에게 3개 공단에 근무하고 있는 수 천명의 비정규직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노동자ㆍ농민ㆍ서민들로부터 코 뭍은 돼지저금통을 모아 탄생한 현 정권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사회보험제도의 틀을 재구성해야

사회보험제도 특히 연금제도의 설계는 백년대계를 내다봐야 하는 국가적 사업이기에 여기서 조차 당리·당략을 고려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고민이 개입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이다. 현재 정부에서 긴급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징수권만의 통합은 사회의 제 여론을 등한시하고 오로지 국회에서의 법 통과만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이제는 성숙된 자세로 고령사회로의 진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더불어 복지국가로서의 틀을 제대로 구축해 나가기위해 모두가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4대 사회보험 ‘합리적 전면통합’ 제안

국민들의 복지욕구를 충족키 위해서는 현재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각 보험공단의 적용·징수업무를 졸속적으로 경제부처로 통합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하나의 ‘(가칭)사회복지보험공단’을 설립하여 4대 사회보험의 부과, 징수, 급여 및 각종 복지서비스(기초연금 및 노인수발보험 등)를 완전 통합하는 방식으로 추진하여 통합 조직의 역할을 “복지 허브 서비스기관”으로 거듭나게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합리적 대안 마련을 위해 정치권, 학계,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계 등이 모두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구성하여 21세기 복지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할 시점이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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