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헌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칠순을 맞아,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축사를 썼다. 이 전 위원장은 이 축사에서 거의 반성문에 가까운 필체로 노선배의 꾸짖음을 호소하며, 노선배가 걸어 온 길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남상헌 지도위원님, 아니 남상헌 선생님, 아니 남상헌 형님!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어울리고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뭔가 모자라는 듯한 이름입니다.

그것은 아마 지도위원님께서 무슨 역할이든지 부탁하면,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기꺼이 들어주셨고, 그 일에 온 정성을 다해 해주셨기 때문에, 언제나 그 역할의 이름이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뭔가 흡족하지 않은 것은, 지도위원님께서는 그 모든 역할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어서, 어느 역할로만 가두기에는 넘치는 분이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지도위원님의 그릇이요, 매력이요, 멋이요, 그 누구도 감히 넘보기 힘든 진짜 노동자로서의 당당함, 그것으로 살아오신 올곧은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상헌 지도위원님!

저도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총 위원장직을 스스로 사퇴하고 현업에 복귀하여, 현장 노동자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언제나 부끄러움뿐입니다. 더욱이나 후배들이 위원장 출신이라고 지도위원이란 무거운 짐을 지워주어서 감당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남상헌 지도위원님 같은 분을 따라 배우며, 그 모습을 본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 지도위원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이 우리 후배들에게는 얼마나 큰 힘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도위원님!

오늘 지도위원님의 각성한 한 노동자로서의 인간적 삶을 기리고 축하하는 이 자리가 저에게는 왜 이리도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리도 참담하고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내 동갑내기 전태일이 36년 전 스물둘의 나이에 스스로 자기 몸을 불태운 이래, 내가 그 사실과 그 의미를 깨달으며, 나같은 놈이야말로 덤의 인생을 산다 하면서도, 게으름과 자기기만과 용기의 부족으로 스스로 부끄러운 삶을 그냥 연명만 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줍쟎게 운동이네 뭐네 하면서 자기합리화나 하고 주변을 어지럽히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틈에 운동꾼이 되어 고집이나 피우고, 아니라고 하면서도 어느 패거리에 끼어 남의 험담이나 하면서 편 가르기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면서도 땀 흘리며 노동하며 최저임금이라도 받게 해 달라는 현장 노동자들이 낸 조합비로 부끄럼 없이 살아왔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그 알량한 권력을 잡기 위해 동네 개만도 못한 짝짓기를 서슴지 않았으며, 표 구걸을 위해 대기업 노조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도 창피한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조직은 갈가리 찢어지고, 병들고, 상처는 깊어만 갔습니다.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죠. 그런데도 남 탓만 하면서 실상과 진실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 틈을 신자유주의에 광분하고 있는 자본이나 국가 권력이 어찌 놓치겠습니까?

지도위원님!

얼마 전에도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어느 가장이 가족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습니다. 미쳐 날뛰는 아파트 시장은 그렇다 치고, 한달에 1~2만원이면 되는 전기료를 못내, 이 겨울을 추위와 어둠 속에 살아야 하는, 단간살이 가구가 무려 50만 가구나 된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세상입니까?

전태일 이래 자기 몸을 불태우는 행렬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아직도 감옥에는 생존권을 위해 싸우다 갇혀 있는 노동자가 수십명이나 됩니다. 생존권과 노동기본권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알량한 비정규직 직장마저 쫓겨나 오늘도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헤매고 다니는 노동자가 또 얼마입니까?

그런데도 현 정부와 자본은 비정규직을 확대시키고 노동기본권을 악화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고, 노동운동은 그 앞에서 분열되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책임 있는 교섭은 실종된 채 형식적 총파업만 ‘우리들만의 잔치’로 남발되고 있습니다.

남상헌 지도위원님!
정말 부끄럽습니다.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잔치날, 이런 푸념이나 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자신이 너무도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이 시간도 처절한 노동의 현장에서 노동운동의 지도부나 선배를 쳐다보며 묵묵히 일하고 있을 조합원들을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도위원님
이제 저부터 무릎을 꿇겠습니다.

아직도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내 마음속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그만 실천부터 겸손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편 가르는 일에는 나서지 않겠습니다. 함께 힘을 모으는 일에는 조건 없이 조그만 힘이라도 아낌없이 보태겠습니다. 그 길만이 현재의 노동운동을 살리고 나아가서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낫게 하는 것이라 믿으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지도위원님처럼 꼿꼿하게 노동자의 삶을 살아오신 분들과, 이 시간도 온 몸을 던져 일하고 있는 현장 노동자들과 노동운동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삶을 살도록 애쓰겠습니다.

지도위원님!
부디 더욱 건강하셔서 우리 앞에 그냥 그렇게 서 계셔 주십시오.

비바람 맞고 낯선 거리에 서 있는 이정표처럼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어떻게 가야 할 지를 가늠하겠습니다.

남상헌, 당신은 우리의 이정표이십니다.

지도위원님 칠순을 축하드리며
이수호 올림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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