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안과 특수고용직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 개정을 둘러싸고 노동계의 의견이 나눠져 있는 지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노사관계 역사를 잠깐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노동자와 관련된 법률, 행정 등 모든 정책 결정에 참여를 요구해 왔다. 노동자들의 이러한 요구는 자유당 이래 상당기간 거부 당했다. 하지만,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 이후 성장한 노동자의 힘을 바탕으로 노조는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의 한국노총의 국민경제사회협의회(경사협)를 통한 노사합의, 1997년 경제 위기 직후의 노사정 합의는 노조의 정책참여의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정책결정 참여는 노동자의 요구, 그러나…

그런데, 이러한 참여 후 여기에 관련된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모두 내부로부터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다. 한국노총은 90년대 경사협에 참여한 후 정부의 ‘임금억제정책’에 동참하였다는 노동계의 비판을 받았고, 그후 많은 소속 노동조합이 한국노총에서 탈퇴하는 뼈아픈 결과를 얻었다.

민주노총은 경제 위기 직후의 노사정 합의를 한 후 내부의 강력한 비판에 의해서 조직 집행부 모두가 사퇴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기 위해 지도부가 노력했으나 내부의 갈등에 의해서 정책 참여의 장으로 돌아오는데 실패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요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와 대화와 타협을 통한 결정은 노조가, 노동계가 오랫동안 요구하고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조가 법과 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노조와 노동자 일반의 이익을 확대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참여를 요구해 왔던 것이다. 노동자는 정치권이나 학계, 재계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역할을 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노동계 일각의 움직임은 이런 스스로의 요구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협상의 과정에 내내 참여하고 많은 부분에서 합의까지 하였다가 마지막 순간에 애매한 태도로 불참하고 이를 빌미로 타협의 모든 결과를 무효로 돌리려 한다면 과연 협상의 상대자인 정부와 경영계는 앞으로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인지 우려스럽다.

희생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와 관련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결정 과정에 참여가 결코 아무런 희생 없이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이다. 노조가 주요 법,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 법과 정책의 결과에 노조도 일정하게 책임을 지어야 한다. 또한 어떤 합의도 상대편의 완전한 양보, 항복을 받아낼 수 없기 때문에 노동계가 얻는 만큼 상대편에게 주는 것이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합의의 전체 그림을 보지 않고 합의 내용에서 노동자에게 불리한 몇가지만 지적을 한다면 그것은 매우 부당할 것이다.

문제는 노조 집행부가 협상의 결과를 노조 구성원들에 설명하고 예상되는 소수의 반대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이다. 왜냐하면 협상의 결과는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고 이 변화는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만, 특정 조직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조합 내부의 이견을 조율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협상의 능력을 갖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번 노사가 참여한 가운데 만들어진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심각한 문제가 예상된다. 이미 실추된 노동조합의 타협 능력에 대한 회의는 노사정 합의에 의한 노동의제 해결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다. 타협의 마지막 단계에 불참하거나 합의된 결과를 노조 지도부가 자신의 조합원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없다면, 노사정 합의 방식의 효용성에 대한 심각한 의심이 지속적으로 제기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권과 사용자들이 의사결정과정에서 노조를 배제할 경우, 이에 이의를 제기하기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노동운동이 어렵게 쌓아 온 국가정책과정에 노조의 참여 공간의 확대가 아니라 오히려 좁히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합의안마저 통과되지 못하면 상황은 더 어려워져

과거 노조가 노사 현안의 해결에 참여했지만, 결국 타협에 실패하고 결과적으로 정부의 일방적 결정에 끌려 가버린 과거 사건에 대한 한 노동부 관료의 관찰은 노동자에게 뼈아픈 성찰을 요구한다.

“예전에 근로시간제도를 개편할 때를 보자. 노사정위에서 진지하게 논의했지만 결국 합의 안 됐다. 결국 국회에서 또 논의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결국 정부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런데 그뒤 노동계에선 아무런 얘기가 없다. 더이상 파업도 없고."<매일노동뉴스 2005년 9월29일자>”

노동계 현안을 다루는 과정에 참여하여 타협할 능력이 없는 노동조합, 노동운동이 앞으로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가.

이번 타협안은 절대적으로 선도, 악도 아닐 것이다. 판단은 각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몇년간 다뤄온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논의과정에 참여했지만 마지막 결정의 순간에 사실상 자발적으로 참여를 철회한 노동운동의 한 축 때문에 합의를 무효화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타협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에서 그다지 좋은 의미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번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관련 노사정 당사자는 조직내부의 반발을 설득하고 인내심을 갖고 합의를 지켜나가면서 필요하다면 앞으로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합의를 해나가는 것만이 우리나라 노사정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한편으로 노동자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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