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안과 특수고용직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 개정안이 오는 정기국회에서 다뤄진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 법안이 발의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찬반 의견이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노사관계 로드맵, 특수고용직 보호법안과 함께 노사정위에서 논의 중인 산재보험법개정안에 대한 노동운동가, 학자, 변호사 등의 의견을 연재한다. 이 기고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측으로부터 모두 받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사용자에 의해 자영업자처럼 위장되어 있으나 사실상 사용종속관계에서 노동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는 학습지교사, 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 레미콘운송차주, 화물차 기사, 덤프 기사, 애니메이터, 간병인, 철도매점 노동자, 학원차량 기사, AS기사, 방송사 구성작가… 등 2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보니 ‘사장’이 되어 있었다!”

무슨 낭만적인 영화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회사의 맘이 바뀌어, 정확히 말하면 회사의 이윤 창출을 드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회사매출의 절대적 기여를 하고 있는 대다수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끽 소리도 못하는 무권리 상태의 사장으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일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는 자본의 착취가 시작된 것이다.

업무의 성격은 변함이 없으나 노동자로서의 권리만 빼앗긴 채 10여년…. 자영업자로 덧칠해졌음에도 그 법적 무권리 상태를 극복하고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던 힘은, 위장된 고용관계에서 발생하는 부당함의 연속, 그리고 분노였다.

학습지교사의 피땀으로 굴지의 100대 주식부자로 성장한 학습지회사는 영업이익을 교사들의 몫으로 환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체되어가는 학습지시장의 바람막이로 교사들을 내몰며, 가짜회원과 대납 등의 부당영업을 강요해 왔다. 134과목의 가짜회원과 1,500만원의 빚을 남긴 채 스물여덟 생을 마친 이정연 선생님…. 그렇다. 사람이 죽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학습지업계의 부당영업이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며 일어선 화물노동자. 하루 16시간 이상을 고속도로 위에서 보내며 한달 평균 20일은 차안이나 한뎃잠을 잔다. 그렇게 일하는 데도 치솟는 기름값에 떨어지는 운송료는 화물노동자를 삶의 벼랑으로 내몰아 급기야 2005년 김동윤 열사가 온몸을 태워 절규하기에 이르렀다. 교통사고,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의 위험 속에서 일해도 기름값, 차량 수리비. 지입료, 할부금. 보험료, 각종 공과금 납부도 아득하다.

정년단축으로 인한 고용불안, 갈수록 높아만가는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경기보조원.

건설경기에 민감해 수급조절이 어려운데다 낮은 운반단가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레미콘 노동자.

수입의 50%에 육박하는 기름값에다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어지는 중간착취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덤프노동자.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관리자의 지휘감독을 받고 업무지시 위반의 경우 그에 대한 징계성으로 급여를 삭감당하는 등 불안정한 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40만 보험모집인.

대부분 유료 소개소에 소속되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임금을 받고 매일 12시간~24시간 일하는 50~60대 간병인 노동자.

연평균 소득이 1,100여만원, 그마저도 체불되어 기초생활의 위협을 받고 있는 애니메이션 노동자.

하루 16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가족까지 동원하여 일해도 한달 급여가 100여만원, 게다가 매장관리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철도매점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실태가 이러할진대, 정부는 어떻게 산재보험적용과 경제법적용으로 근본적 문제해결을 하겠단 말인가. 노무현 정부는 산재보험 적용으로 200만 특수고용노동자의 안전한 노동과 건강한 노동의 삶을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정부는 10·25 특수고용대책에서도 산재보험 적용의 기저에 ‘사용종속성’을 인정하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특례적용이라는 방식으로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개인사업자성을 공식화 하려는 기만책을 쓰고 있다. 또한 사용자성과 노동자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정부의 잘못된 문제의식은, 노동자에게 비용의 1/2을 전가하는 모순의 극치로 적나라하게 반영되어 있다.

7년간 외쳐온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은 철저히 등돌리고 산재보험 특례적용이니 경제법적용으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을 바꾸겠다는 반노동자 정부, 노무현 정부는 200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을 더이상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국제적 노동기준에서도 당연한 노동자

ILO(국제노동기구)의 권고에 따르면 종속성, 의존성 등 노동자성이 인정될 수 있는 준거를 갖고 있는 한국의 특수고용노동자는 위장된 고용이므로, 고용관계를 인정하는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제사회의 권고에는 귀를 닫고 자본의 요구에 충실한 노무현 정부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는 자본의 노조탄압에 가장 커다란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1999년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이 30여일의 파업투쟁 끝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임단협을 쟁취함으로써 지펴 올려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 정부로부터 끊임없이 노동자로서의 존재를 부정당하며 자본으로부터는 부당해고와 손배가압류로 생존의 위협받아 왔다.

특수고용노동자를 향한 자본의 대응력과 교묘한 노조탄압은 더욱 악랄해지고 있다. 부당해고를 대놓고 하고, 이에 항의하는 여성조합원을 용역깡패를 동원해 폭행하고, 노동조합의 대표자를 구속하고, 갓난아기의 분유값마저 월급100% 가압류로 빼앗아가는 게 정부와 자본의 법이 되었다. 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만든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서 정부가 자본의 끊임없는 학대로부터 특수고용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란 과연 있는가.

약관법, 공정거래법으로 개별보호 한다지만 실제로 특수고용노동자 개인이 거대한 자본을 상대로 법적 싸움을 시작하는 것조차 어려울 뿐더러 실질적 보호는 요원한 것이다. 즉, 노동조합이 가지는 집단적 노사관계가 힘의 균형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보호의 장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정한 보호대책은 노동관계법 적용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부당한 계약해지를 금지하는 방안, 부정영업·대납강요·불법상품 판매강요·불공정한 계약관행을 없애는 것은 물론 절실한 요구이다. 그러나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 경제법을 적용하는 것은 전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대납강요·불공정계약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불법행위를 자행하려는 사업주에 맞서 저항하고 반대할 힘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실제 보호방법인 것이다.

결국 특수고용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조법을 적용하여 집단적 노사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보호대책은 노동관계법 적용이다. 그러지 않고서 사업주가 정하고 판단하는 경영상의 이유라는, 해고도 아닌 민법상 재계약거부를 어떻게 막을 수 있다는 것인가?

과거에도 노동자였고 현재도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이제 와서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이중 잣대에 의해 우리 200만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이 거세될 수 없고, 오히려 노무현 정부는 11월 총파업으로 돌이킬 수 없는 투쟁에 직면하여 민중의 심판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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