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가 그렇지 않아도 시시때때로 정치권과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공공기관에 또 하나의 칼을 들이댔다. 224개 공공기관에 지난달 내려 보냈다는 ‘공공기관 경영위험요소 공시제도 시행지침’을 통해서다. 장래 재무건전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재무구조, 경영환경, 투자결정, 손익구조 등에 관계되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고 곳곳에 숨어 있었던 위험요소들을 사전에 공개하도록 해 경영진이 신중하게 의사결정하게 하고, 국민의 신뢰도 높이자는 취지다. 가령 이런 것이다. 동일인에 대한 100억원 이상의 담보제공, 채무보증, 손실보증 등은 해당행위 발생일로부터 2개월 이내에 공시한다. 시설투자, 법인출자, 사업 진출·확장, 자산취득과 관련해 체결한 양해각서, 협약, 협정 등은 서명일로부터 2개월 이내에 공시한다. 이것은 기획예산처의 기존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으로, 공공기관의 무책임하고 방만한 경영을 감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이다.

그런데 공개 대상에 직원들의 임금과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각 공공기관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과 임금협약, 약속, 이면합의 등이 포함됐다. 공공기관 직원들이 얼마의 임금을 받는지, 올해는 얼마가 올랐고, 복지혜택은 어떤 것이 있는지, 혹시 공식적인 임금 외에 또 받는 것은 없는지 모두 들춰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획예산처는 이것들도 미래의 경영위험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시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공공기관 직원들이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문제는 기획예산처의 사고 수준이다. 왜 노사 교섭을 통해 노조가 쟁취 또는 타협한 결과물이 경영위험요소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체협약은 공공기관 직원들이 먹고 사는 수준일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임금과 복지가 경영위험요소가 된다는 것은 비약하면 ‘자원봉사’ 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공공기관 직원들의 임금과 복지 수준이 과도한가.

기획예산처는 지금도 예산편성지침(또는 기준)과 임금가이드라인 2%를 통해 공공기관의 예산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혁신 평가를 통해 단체협약과 이면합의 등을 계속 점검하고 있다. 자율교섭 여지를 99% 철저히 차단하고도 남은 1%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꼴이다.

또 기획예산처는 공공기관의 노사관계와 조합원들의 노동기본권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교섭의 결과물을 경영위험요소로 낙인찍는 것은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을 불온시 하는 것이다. 그냥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획예산처 공공혁신본부 관계자는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이 주 대상도 아니고, 공시대상은 각 공공기관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이 이미 의무사항으로 만들어버렸다. 또 기획예산처가 매년 경영혁신과제의 하나로 공시 실태를 점검한다. 기획예산처가 공식적으로 철회하지 않는 한 빠져나갈 공공기관은 하나도 없다.

한국노총 공공노련 관계자는 “눈꼽만큼 남은 자율교섭까지 인정하지 못하고 위험요소로 설정한다면 차라리 기획예산처가 224개 노조와 직접 교섭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공공연맹은 “임금 및 단체협약을 경영위험요소로 설정한다면, 이는 아예 공공부문노조의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의 권리 자체를 불온시하고 제약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느니 만큼, 즉각 이 지침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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