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남쪽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정부와 언론은 일제히 북한을 비난하고 나섰고, 금방이라도 한반도와 동북아에서는 전쟁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위기이다.

만에하나 북미간에, 또는 한국정부까지 참가하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지금 남쪽 노동계에서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노사관계로맵이니, 불법파견 판정이니 하는 것들도 모두 소용없게 된다. 어느 한쪽이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하면 상대방도 반드시 핵무기로 보복하게 되는 것이 핵전쟁이다. 전쟁이 나는 순간 군인들보다 민간인들이 먼저 죽어나가는 상황을 예상해 보면 복수노조 허용을 통한 노동권 보장도,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통한 차별철폐도 전쟁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10일 민주노총이 긴급주최한 ‘북핵실험, 노동자·민중은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는 이번 북핵실험 사태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점, 이로 인한 전쟁발발시에 노동자 민중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 진보운동진영이 반전평화 운동에 주력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가 됐다. 하지만 진보진영 내에서 오래동안 논쟁이 됐던 북핵보유 자체에 대한 입장은 여전히 갈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박경순 한국진보운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반전평화야말로 노동자, 민중의 가장 절박한 투쟁과제”라고 강조했다. 박 연구원은 “북 핵실험으로 한반도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면적 대결양상으로 발전해 가면서 전쟁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전쟁이 아직 눈으로 보이기 직전의 상태인 지금이야 말로 다가오는 전쟁을 막기 위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폭로, 6.15 공동선언 고수 투쟁 등의 반전평화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를 정확히 분석해 내야 한다. 이 때문에 토론회는 북쪽이 왜 핵을 보유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를 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오래된 논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정미 금속연맹 총부부장은 “이번 사태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북한의 핵실험 이후 동북아를 비롯해 핵무기 확장이 우려된다”며 “미국 적대 정책에 대해 북한이 핵무기로 대응하면 전쟁의 위협을 오히려 가중시킨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박 부장은 “노동자와 민중은 대북제재를 반대하는 투쟁을 상위에 놓고, 핵반대 구호를 하위에 놓고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양비론 적인 입장을 지양하면서도, 북핵 반대에 대한 입장은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점규 금속노조 선전부장도 “노동자, 민중이 반전평화 투쟁에 나서야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남한 민중들도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북한에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문제와 관련해 언제나 북한의 편만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박경순 연구원은 “남한 노동계가 언제나 북쪽 입장에 동의한 적도 없고 북한에 대해서도 할 말을 하면 된다”면서도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을 붕괴시키려는가, 아닌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십년간 군사적으로 대치해 온 북미관계 역사를 정확히 이해해야지, “미국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북한도 핵으로 대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식의 일반론으로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비판해야 한다거나, 북핵보유를 이해하면서도 비판은 할 수 있다는 앞선 주장과는 달리, 북핵 보유를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도 나왔다. 이시욱 금속연맹 부위원장은 “북의 핵기술 보유는 외세 앞에서 민족과 동북아의 안전을 보장하기 때문에 지지하고 옹호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에 대한 양비론은 제국주의적 발상과 다름 아니다”고 주장했다.

북핵 보유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선행돼야 할 ‘왜’라는 질문에 대해 노동계, 진보진영에는 여전한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날 토론회는 다시 보여줬다.

김영제 민주노총 통일국장은 “오늘 토론회는 시각차이 속에서도 반전평화운동을 대중적으로 벌여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다는 점이 성과라고 본다”며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반전평화운동과 6.15선언 이행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오늘의 사태가 발생했다는 반성적인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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