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에틸렌은 석유화학 ‘쌀’로 비유된다. 석유화학산업의 주원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틸렌의 국내 최대 생산업체, 여천NCC가 파업을 선언하고 나섬에 따라 석유화학업체가 집중되어 있는 여수산단에 비상이 걸렸다. 여천NCC노조의 파업에 대한 여수산단 사업장의 관심은 단순히 에틸렌 생산량 증감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5년간 여수산단 사업주들이 철통같이 지켜온 ‘임금 카르텔’이 깨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천NCC노조 파업 선언, 왜?

여천NCC노조(위원장 천중근)는 지난달 28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 97.8% 투표율에 찬성률 85.6%로 가결시켰다. 여천NCC노조는 9일 간부·상집위원 부분파업을 시작으로 투쟁수위를 고조시켜 간다는 계획이다. 10일까지도 회사측의 전향적인 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11일 전면파업에 돌입할 방침이다.

여천NCC노조가 파업이라는 배수진의 진을 치고 주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사항은 ‘공정분배’. 회사가 지난해 1조원의 순이익을 내고 이중 절반인 5,000억원이 여천NCC의 양대주주인 대림과 한화에 현금배당됐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주어진 성과급은 본봉의 250%. 전체를 다 합쳐봐야 57억여원이다. 주주들에게 돌아간 몫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때문에 여천NCC노조는 올 초 성과급 반납투쟁을 벌이고 조합원 97%가 이에 동참했다.

월급통장으로 들어온 성과급을 다시 반납하는 투쟁은 그리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여천NCC 조합원들 대부분이 이에 동참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천NCC가 지금의 위용을 갖추기까지의 지난날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여천NCC는 석유화학산업의 기초원료인 에틸렌을 비롯해 프로필렌, 벤젠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연간 생산량은 아시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천NCC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여천NCC는 지난 1999년 대림산업과 한화석유화학 간의 NCC부문 통합하여 출범한 회사이다. 대림과 한화는 여천NCC를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은 지주회사로 설립하고, 공동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대림과 한화의 빅딜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개입 없이 최초로 이루어진 기업 간 ‘자율 빅딜’ 사례로 기록되며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여천NCC의 첫 출발은 ‘적자’부터 시작했다. 여천NCC노조는 “지난 1999년 출범 이후 회사가 줄줄이 적자를 기록할 때 상여금을 반납하고 위기극복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왔다”고 말한다. 올초 상여금 반납투쟁에 조합원들이 적극 동참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던 여천NCC는 노동자들의 희생과 이를 통한 몸집불리기에 매진해 지난 2003년에는 매출액 2조2,000억원을, 2005년에는 3조3,000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여수산단의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하지만 여천NCC노조는 회사의 이 같은 흑자행진에도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전한다. 그 이유는 여수산단의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때문. 화섬연맹에 따르면 여수산단 사업주들은 지난 2001년부터 공장장협의회, 대표자협의회 등을 통해 매해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이를 철저히 지킨다. 여수산단의 석유화학업체 간의 임금 카르텔인 셈이다. 올해 여수산단의 임금가이드라인은 기본급의 2.1%.

여천NCC노조는 “실질적인 임금인상을 위해 기본급 6.67% 및 호봉개선 0.8% 인상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는 “최근 연이은 흑자를 달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석유산업 특성상 성장사이클이 10년에 불과하고 이 틀 내에서도 증감변화가 심하므로 단기간의 흑자를 이유로 즉각적인 임금인상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사측은 “여수공단 내 동일업종의 임금수준인 기본급 2.1% 인상 외엔 절대 수용불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여천NCC노조는 지난 2004년 여수산단 공동파업의 실패로 더욱 강해진 ‘임금카르텔’이라는 올가미를 올해에는 반드시 깨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천NCC를 제외한 대부분의 여수산단 석유화학업체 임단협이 마무리된 가운데 펼쳐지고 있는 여천NCC노조의 파업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