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로드맵이라고 하는 노사정합의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다. “말도 안 돼”라고 하는 단순명확한 접근에서 어려운 법적 접근까지, “우리 사업장 문제는” 하는 좁은 접근에서 국제기준까지 동원하는 폭넓은 접근까지 많은 접근법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상식적인 질문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고자 한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오히려 차분하게 가장 상식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 본질에 더 쉽고 명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이 그다지 상식적이지 않다고 보고 시작하는 것이다.

'노사관계선진화를 위한 노사정대타협 선언문'이란 것이 나왔다. 노사정대타협이라고 한다. 내용은 잠시 접어두자. 노사정이라고 하는데 그중 한 축인 민주노총은 보이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인가?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대타협이라는데 민주노총은 '반대'를 선언하고 있다. 선진화에 반대한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지난 시기 한국 노사관계를 놓고 볼 때, 그리고 지금 돌아가고 있는 현안문제를 놓고 볼 때 노사관계 선진화라면 말할 것도 없이 복수노조 전면허용, 전임자 임금 자율결정, 산별교섭 보장, 필수공익사업장과 직권중재의 명실상부한 폐기, 공무원·교수·교사 노동3권 보장,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권 보호 문제가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복수노조는 유예되고, 전임자 임금은 금지될 예정이고, 산별교섭 보장, 공무원·교수·교사 노동3권보장,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권보호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예 논의조차 안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진화란 말인가? 우리가 이번 이른바 노사정대타협에 대해 갖는 첫 번째 상식적인 의문이다.

이른바 노사정대타협 과정이 갖는 문제점, 내용상 문제점 전반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그친다. 한두가지가 아닌데 여기에서 일일이 다 논의하다보면 정작 얘기하고 싶은 쟁점은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는 필수공익사업장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겠다.

누가 당신들에게 합의를 위임했는가

두 번째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하자. 아예 논의조차 안 된 것은 논외로 한다면 이번에 다룬 내용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이 복수노조금지, 전임자임금이고 아마도 그 다음이 필수공익사업장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필수공익사업장 문제는 일부에게만 해당되므로 꼭 관심 정도가 중요도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해당사업장으로서는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들 사업장을 놓고 볼 때 특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업장 범위가 현행 필수공익사업에 혈액공급, 항공, 폐·하수처리, 증기·온수공급업을 추가한다고 되어 있다. 현행 필수공익사업은 철도(도시철도), 수도전기가스석유정제 및 석유공급사업, 병원사업, 한국은행으로 되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현행, 추가 모두를 종합적으로 볼 때 대부분이 민주노총 사업장이다. 필수공익사업장 지정, 그에 따른 필수업무유지의무, 대체근로허용은 해당노조로서는 말 그대로 사활적인 문제이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둘러싸고 이른바 대타협을 한다면서 주체는 쏙 빼놓은 상태에서 대타협을 한다고? 도대체 이는 또 어찌 된 일인가? 비유하자면 주인은 빼놓고 객이 설치는 꼴이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93, 94년에 노경총 임금합의를 했을 때 한국노총이 비난받은 이유중 하나가 “도대체 당신들이 어떤 대표성이 있기에 여기에 합의하는가”하는 문제였다. 이번도 마찬가지이다. 상식적인 질문을 하겠다. 누가 당신들에게 이에 대한 합의를 위임했는가? 한국노총은 무슨 자격으로 이에 대한 합의를 했는가? 아직도 80년대 복수노조 금지 시절 그대로 당신들이 한국노동운동 대표선수라고 보고 있는가? 경총은 한국노총이 어떤 자격을 갖고 있다고 보기에 덜컥 이런 합의를 했는가? 아직도 90년대 초 이른바 노경총합의라는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세 번째 상식적인 질문을 하자. 필수공익사업장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중 일부는 그 업무가 특수해서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것, 필수업무유지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이에 대해 두 말 없이 찬성한다. 가까운 친지(예를 들면 아버님)가 병원 중환자실에 있는데, 파업이 일어났다고 해서 간호사가 중환자실을 비워두고 나가는 것을 보고 '투철한 노동운동가'라고 칭찬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업무는 당연히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필수업무유지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건 상식이다. 우리는 상식을 부정하는 것을 부정한다. 우리는 상식에 기초해서 그런 업무는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알아서 유지한다. 왜? 우리는 상식적인 사람이니까! 그러나 일부 몰상식한 사람(예를 들면 노사정대타협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를 부정한다. 우리가 필수업무를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묻겠다. 과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나?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만약 문제가 된다면 다른 방법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다고 보는가? 상식적인 답변은 간단하다. “모두, 아니올시다.” 그런데 이를 부정한다는 것은 다른 꼼수가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 꼼수란 필수업무유지란 명목으로 파업권을 부정하자는 것이다.


대체, 당신들이 이해하는 '파업'은 뭔가

네 번째 상식적인 질문을 하자. 파업이란 무엇인가?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이다. 현행 노동법에도 나와 있다. 그런데 어떤 사업장에서 '필수업무'를 유지한다고 하자. 물론 필수업무와 비필수업무를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도 의문이지만 일단 필수업무가 유지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필수업무 유지 = 업무 정상 유지”라는 방정식이 성립한다. 아니, 파업중에 업무가 정상으로 유지된다니? 그렇다면 이제 헛갈리기도 하고 동시에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하기도 한다. 업무가 정상으로 유지된다면 파업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파업을 하나마나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상식적인 추론의 결론이다. 결국 필수업무유지는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것을 저해하는 것, 즉 파업을 저해하는 것, 결국 파업을 금지시키는 것이다. 이게 꼼수의 핵심이며 전부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보자. 이른바 노사정합의에 따르면 대체근로를 허용한다고 한다. 파업을 했는데 대체근로를 허용하면 업무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업무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위와 같은 결과, 즉 파업을 금지하는 결과가 된다. 결국 필수업무유지, 대체근로허용 둘 다 표현만 다를 뿐이지 내용은 파업금지이다.

다섯 번째 상식적인 질문을 하자. 노조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노동공급을 제한하거나 할 수 있음을 무기로 삼아 사용자와 교섭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노동공급제한권 = 파업권'은 교섭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파업권을 제한한다는 얘기는 결국 교섭을 방해하는 것, 교섭권 침해가 된다. 파업권, 교섭권을 침해받는다면 단결권도 형식만 남게 된다. 결국 필수업무유지, 대체근로허용이란 결국 노동3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직권중재 폐지시키고, 또 부활시키고

여섯 번째 상식적인 질문을 하자. 합의문에서는 직권중재 제도를 폐지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필수업무유지 범위를 둘러싸고 노사간에 의견일치를 못 보면 일방 또는 쌍방의 신청으로 노동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행정관청은 노사가 체결해서 신고한 “필수유지업무 협정내용이 필수유지업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에 필수유지업무 유지 수준 등의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 요청을 받은 노동위원회는 당연히 결정을 내릴 것이고 그 결정은 “필수유지업무협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그렇다면 이름은 다르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직권중재와 무엇이 다른가? 폐지되었다는 직권중재제도는 무엇이고 살아있는 “일방 또는 행정관청의 결정요청과 노동위원회 결정”은 무엇인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이런 상식적인 접근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비상식적인 것인가? 우리는 굳이 어려운 법적 접근, 외국사례 인용을 하고자 하지 않는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으로 하고자 한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무리 생각해도 필수공익사업장 확대, 필수업무유지, 대체근로 적용은 노동3권에 대한 사실상 부정이란 것이다. 상식으로 돌아가자. 정말로 필요한, 사람의 생명안전과 관련된 업무라면 누가 뭐라고 하기 이전에 노조에서 먼저 업무를 유지한다. 그러지 않는 비상식적인 사람이 있으면 노조에서 먼저 제재를 가한다. 노동3권 보장의 상식적인 의미는 단체교섭권, 파업권 보장이다. 달리 말하면 그걸 보장하지 않으면 노동3권 보장이 아니다. 직권중재 폐지한다고 했으면 명실상부하게 폐지하라. 중재라는 단어 안 쓴다고 강제성이 사라지는 것 아니다. 자꾸 말 비비꼬지 말자. 단순하게 접근하자.

자, 그렇다면 어쩔 것인가? 파업권 없는, 따라서 단체교섭권도 심하게 제약받는 노조가 노조인가? 그런 노조가 정상적인 교섭을 할 수 있는가? 이른바 집단구걸밖에는 못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집단구걸이나 하자고 노동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결론은 섰다. 필수공익사업장 노조들의 투쟁으로 정면돌파할 것이다. 여기에서 투쟁관련 세부사항까지 거론할 것은 없지만 투쟁 수위는 그 성격상 가장 강력한 투쟁일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집단구걸로 구차하게 사느니 이번 기회에 상당한 희생을 치루는 한이 있더라도 한판 승부를 통해 정면돌파하겠다. 공공연맹과 보건의료노조는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의 선봉에 굳게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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