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정부는 우리나라를 선진 복지국가로 도약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국가 장기종합전략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노인연금 수급률은 지난해 17%에서 2030년 66%로, 육아서비스 수혜율은 47%에서 74%, 장기요양서비스 수혜율은 11%에서 100%,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5.1%에서 16%로 늘리고, 최저 주거기준 미달 가정은 현재 23%에서 0%로, 국가청렴도 지수는 40위에서 5위로,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를 지난해 56일에서 2030년엔 15일로 낮춘다는 거창한 계획이었다.

모든 언론이 이를 주요 뉴스로 다루었다. 대부분 ‘재원 조달계획이 빠진 꿈같은 얘기’라고 비난했다. 중앙일보는 8월 31일자 3면에서 <1,600조원 필요한 ‘소설같은 비전’>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5면에서 <“비전 제시는 좋은데” 실행 비전은 불투명>, 경향신문은 김용민 화백의 만평을 통해 이번 보고서를 <요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꿈같은 숫자를 들이댔고, 언론은 재원이란 숫자를 들이댔다. 둘 다 숫자의 환상에 빠져 있다.

올해 우리 정부의 사회복지·보건 예산은 올해 56조원이었다. 정부는 내년에 이보다 9.1%를 늘여 61조1천억원을 요구하고 있다. 4대 연금 지급액과 영유아 보육료, 기초생활보장급여 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비전 2030’은 꿈을 이루기 위해 2010년까지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4조원의 재원을 마련한다고 한다.

그래서 국민의 복지수준을 2020년에는 미·일의 2001년 수준, 2030년엔 서구 선진국의 2001년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고 한다. 이를 위해 추가 비용은 총 1100조원(경상가격 기준)이다. 1100조원은 범인의 상상력을 넘어선 돈이다. 물가상승분을 제거한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400조원이다.

이 정부 들어 건강보험 보장성은 다소 늘었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노인수발보험도 도입될 예정이다. 연금개혁도 한다고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의 부담을 늘려 사회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기본 원칙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은 한쪽 입으로는 사회복지 확대를 외치면서도 다른 쪽 입으론 재정확대라며 복지예산 증액을 비난하고 있다.

그 사이 국회엔 이런저런 사회복지 관련 법안들이 쌓이고 있지만 복지 서비스의 양적 확대에만 매몰돼 있다. 보육 서비스를 늘이겠다는 법안이 보육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장기요양서비스를 신설하겠다는 법안에서 그 서비스를 직접 수행할 노동자의 삶을 돌아보지 않고 있다.

사회복지 시설에 쏟아붓는 돈은 어마어마하지만 시설장은 그 돈으로 자기 집 전기세와 수도세까지 내고, 원장의 아들 손자 며느리에 처삼촌까지 직원으로 등록시켜 세금 도둑질을 하고 있다. 50년 전 들판에 판잣집 지어놓고 고아원이니 양로원이니 간판 붙이고, 미국의 원조물자나 빼돌리던 이들이 사회사업가라며 지역에서 거들먹거리고 있다. 고도성장시기엔 퇴역 군인들의 놀이터였던 복지 관련 각종 협회와 기관들이 수익성을 앞세우며 하나 둘 씩 계약직 사회복지 노동자를 양산해왔다. 친인척이 득실대는 이사회에서 복지는 싹 조차 틔울 수 없다. 원장을 제외한 모든 직원을 1년짜리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요양시설들이 늘고 있다.

한 달에 60만원 받는 노동자, 그것도 1년짜리 계약직 노동자가 우리 복지의 최일선 담당자라면 과연 그들로부터 높은 질의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는가. 정부는 여성의 사회참여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필수적인 육아서비스 수혜율을 획기적으로 높인다고 했다. ‘비전 2030’은 이를 두고 ‘건강하게 낳아 걱정없이 키운다’고 적고 있다. 한 달에 60만원 받는 보육 노동자가 갓 태어난 내 집의 셋째 아이를 돌보는 제도를 확대하는 게 이 정부가 말하는 ‘비전 2030’이다. 따라서 ‘건강하게 낳아 걱정 않고 키운다’로 고쳐야 한다. 이런 보육서비스를 확대할 바엔 수혜율을 현행 유지하더라도 그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