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정규연대회의’의 ‘서울지점’격인 ‘서울지역비정규노조연대회의’가 마련한 문화한마당 수련회에 가겠노라 약속했지만, 막상 9월2일 출발하려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자그마치 아이가 셋인지라 다 끌고 가자니 괜스레 눈치가(*.*) 보이는 데다, 막둥이는 기관지염을 앓고 난 뒤끝이어서 맘을 놓을 수 없었다.

출발부터 복병을 만나다

그러나 장장 1년전쯤 장염이 걸린 큰 딸내미를, 그것도 11월인 추운 어느날 지리산 반야봉 정상까지 데리고 가서 텐트 치고 1박까지 한 ‘무식, 용감한’ 부모가 아니던가.

그런데 복병은 다른 데서 생겼다. 하루 전날, “우리 계곡 있는 곳으로 놀러 갈테니 짐 챙겨라”라고 일러뒀고, 불만없이 가겠다고 했던 큰애가 그만 말을 뒤집었다(둘째, 셋째놈한텐 상의가 필요없다. 놀러간다고 하면 만사 OK).

“월요일 말하기, 듣기 시험 본단 말야. 시험 공부해야 해.” 큰놈은 입을 내밀었다. 어휴, 공부하겠다는 애를 혼내줄 수도 없고. “응, 공부는 오가며 차 안에서 하면 돼. 그리고 일요일은 일도, 공부도 다 쉬는 날이야. 그러니까 놀아도 돼.” 이렇게 우기는 부모, 부모 맞아?(하여간 학교가 아이들을 잡아요.)

간신히 설득한 뒤 1시쯤 출발해서 경기도 가평에 있는 대보수련원에 도착했다. 청평 검문소에서 현리 방향으로 계곡 따라 들어가는 길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소나무가 울창한 산과 넓은 냇가, 마당이 어우러진 수련원(옛 분교터)은, 즐거운 추억이 담뿍 담긴 ‘국민학교’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물 속에 풍덩!

행사는 이미 한창 진행 중이었다. 서울경인공공서비스, 서울경인사무서비스, 학습지, 화물통준위 등 비정규조합원과 단체회원 등 150여명이 냇가에 모여 ‘물풍선 터트리기’, ‘물통 채우기’, ‘다슬기 잡기’, ‘물수제비 뜨기’ 등 조별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냇가 가운데 마련해 놓은 드럼통보다 더 큰 그릇에 담긴 막걸리를 한사발 쭈욱 들이키며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았다. 우리 가족도 이에 뒤질세라 6조에 끼어 물속에서 벌이는 게임에 참여했는데, 재미가 쏠쏠했다. 그 가운데 ‘물수제비 뜨기’ 내기 때는 화물통준위 소속인 한 조합원이 던진 돌이, 서너번도 아니고,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돌이 물 위를 통통 튕기며 사라지는데 정말 신기에 가까웠다. 태어나서 이렇게 물수제비를 많이 뜨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 조합원 덕분에 우리 가족이 들어간 6조가 이겼다.


게임의 절정은 O, X 퀴즈 맞추기였다. 참가자 모두 물 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퀴즈를 푼 뒤 1, 2, 3등을 가리는 방식이었는데, 늘 TV퀴즈 프로그램만 보다 막상 해보니, 고것 참 기분이 삼삼했다.

‘정부가 처음 ‘노사관계 로드맵’ 안을 냈을 때 모두 33개였다?‘(O) 같은 문제는 한번에 맞췄지만, ’사마귀는 전염된다?‘(O), ’서비연은 2001년 11월에 만들어졌다?(O) 같은 문제는 알쏭달쏭해서 틀리고 말았다.

막판에는 가족 5명 중 1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O, X 양쪽에 분산 배치하는 얄팍한 꾀를 쓴 탓에 둘째딸이 수상권에 드는 영광을 입기도 했다(상품으로 상품권을 받는 횡재를 얻었다). 역시 아이들 성적은 부모 손에 달렸다니까…. ㅎㅎ

보물찾기를 끝으로 물놀이는 끝났고, 큰 마당으로 자리를 옮겨 조별로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미리 조별로 준비한 불판, 냄비, 김치, 반찬을 포함해 행사 진행 쪽에서 미리 사놓은 감자, 양파, 가스 등을 배급 받았는데, 그 바람에 10군데 식탁에 오른 찌개는 ‘슬프게도’ 모두 카레였다. 그러나 서로 색다른 음식 맛을 즐길 기회를 놓친 아쉬움은 있었지만, 카레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조별로 오순도순 마당에 있는 탁자에 둘러앉아 먹는 밥, 카레 맛은 일품이었다.


처음으로 만든 풍등

식사가 끝난 뒤 풍등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다. 다들 촛불은 많이 들어봤지만, 풍등을 띄우는 행사는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지라 만들면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풍등은 큰 한지로 만들었는데, 안에 철사를 대 네명이 귀퉁이를 잡아 당기면 네모꼴로 퍼진다. 안의 아래쪽에는 불을 지필 심지가 붙어 있다.

마름모꼴로 납작하게 접힌 종이에다 소원을 쓰란다. ‘비정규직 철폐!’,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요!’, ‘가을에는 연애를!’ 등 다양한 소원을 적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소원을 적었다. 큰딸은 ‘우리 가족 건강하게’란 소원을 적었다. 그런데, 둘째딸이 적은 소원은 아주 기막혔다. ‘엄마, 아빠 회사 안다녔으면 좋겠어요. 쉬게.’ 순간 가슴이 찡했다. 어이구, 이 녀석이 그렇게 엄마, 아빠랑 놀고 싶었나 보다.

하나로 어우러진 대동한마당

땅거미가 어슥해질 무렵 본격적인 대동한마당이 펼쳐졌다. 소리전문가인 국립극장 예술지부장, 사무국장이 앞에 나와 ‘심봉사가 눈 뜨는 대목’을 구성지게 읊고, ‘진도아리랑’을 불러제껴 흥을 한층 돋웠다. 이어 노동문화 일꾼인 이사라 전문 사회자가 나와 해방춤 등 춤과 공동체 놀이를 가르쳐 줬는데, 다들 신이 난 모양이다. 그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고대 청소용역노동자, KTX 승무원, 화물노동자, 학습지교사 등 이날 모인 비정규 노동자들은, 투쟁 경력이 다 쟁쟁하다. 이들은 정규직과 달리 임시계약직, 파견, 용역계약직, 특수고용직 등 다양한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인데, 현재 고용안정, 부당 해고 철회, 노동3권 쟁취 등을 위해 지난한 투쟁을 하고 있기에, 맘껏 쉬어 본 적이 없다. 툭하면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 등 시비를 걸지 않나, 정부 역시 수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정규악법’을 추진하는 등 싸움을 걸어오기에 이에 대한 ‘맞짱’ 투쟁이 불가피하고, 또 고용안정과 생활임금 쟁취를 위해서도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 만큼은 집회행사에서 너무나 익숙한 연사들의 지루한 연설을 듣지 않아도, 쥐가 날 정도로 마냥 앉아 있지 않아도 좋았다. 투쟁에 대한 결의는 집회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같은 대동한마당에서 받은 감동으로도 충분히 모아진다.

또 각자 소원을 써서 하늘로 날려버린 ‘풍등’은 또 얼마나 멋있던가. 모두들 까만 밤에 별이 반짝 빛나는 하늘위로 높이 날아가는 아름다운 풍등을 보며 황홀함에 젖어 말을 잃었다. 불놀이를 끝으로 행사가 끝났어도, 방에 들어갈 줄 모르는 대부분 간부, 조합원들은 조별로 탁자에 앉아 노래와 술로 밤을 지샜다.



주봉희 지부장, 골프객과 대화

밝은 햇빛이 비추는 아침이 왔다. 7시쯤 세 아이들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떴는데, 아이들 기분도 무척 좋은 모양이다. 특히 큰애는 풍등 날리기, 불놀이 등 행사를 끝까지 다 봤기 때문에 아주 흡족한 표정이다. 둘째,셋째는 아쉽게도 일찍 곯아떨어지는 바람에 대동한마당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래서 딴에는 친절한 엄마가 되고자 어젯밤 일어난 일을 말해줬더니, 갑자기 둘째가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갈구는 것이 아닌가. “왜 나를 안 깨웠어. 나도 보고 싶은데….” 에고, 괜히 얘기해서 아이들 심사만 건드려놨네.

아침을 먹으러 나왔는데, ‘파견법 철폐’의 상징이자 시인인 주봉희 KBS 비정규지부장이 까만 밤을 지새운 그 정력을 목소리로 모아 맞은편 골프장에서 골프치는 객들에게 갑자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아니, 다같이 즐겼다. 그는 몇년전 해고돼 여의도 방송사 앞에서 노숙농성, 집회 등으로 수년간 싸운 끝에 복직한 바 있다. 노조활동을 열심히 하던 중 노조활동을 이유로 다시 얼마전 해고돼 복직투쟁을 또 벌여야 하는 기막힌 처지다. 그러니 비싼 돈 들여 한가로이 골프치는 객들이 얼마나 미웠을까. 다행히 그 객들이 쫓아오지는 않아 시비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가운데에 냇가가 있어서 포기했나 보다.


서비연, 희망의 돌탑쌓다

아침을 먹고 나니, 바로 수련원에 이웃한 수목원에 야생화를 보러가란다. 나는 야생화를 보면 환장을 한다(보름달을 보면 더 환장한다. 그렇다고 늑대아줌마는 아닌데…). 야생화 이름을 많이 꿰지는 못해도 들풀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기회 있을 때마다 야생화를 집으로 사들이곤 한다. 부랴부랴 짐 챙겨서 ‘꽃무지 풀무지 수목원’으로 소풍을 갔다. 사진도 찍고, 꽃도 감상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그런데, 때가 때인 만큼 피어 있는 꽃이 거의 없어 아쉬웠다).

다시 수련원으로 내려와서 돌탑쌓기(각자 소원을 쓴 기다란 천도 돌탑 맨 밑에 함께 묻었음. 먼 훗날 한번 꼭 가서 돌탑 허물고 봐야지…), 약식집회, 그리고 기념촬영을 한 뒤 도시락 까먹고 1박2일 ‘자연, 어울림, 그리고 희망’ 행사장을 떠났다.

오랜만에 몸도 풀고, 진득한 대화도 나눈 장이었다. 서비연이 준비한 이번 행사는 요즈음 보기 드물게 비정규노동자를 위한 대중문화제였다. 특히 간부 포함해 조합원까지 참여한 행사였기에 더욱 빛났고, 이를 계기로 서울지역내 비정규노동자의 투쟁과 단결의 구심, 그리고 비정규노동자 모두를 대변하는 서비연으로 거듭나길 조합원으로서 기대해 본다.

수고하신 서비연 김형수 의장, 이남신 사무국장을 비롯해 걸걸한 목소리로 사회와 전체 진행을 매끄럽게 이어온 오상훈 조직부장, 권순화 조직국장, 김형석 조직차장, 문문주 조직부장, 한주태희 조직부장, 허유경(이상 민주노총 서울본부), 이행재 문화부장(서울경인사무서비스), 김미영 사무국장, 안성식 교육부장(이상 서울일반노조), 이상선 대협부장(서울경인공공서비스) 등 많은 진행자들한테 감사드린다. 그들이 있었기에 대동한마당이 빛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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